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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자로그

매일 기사를 쓰는데 좋은 기사가 나올 리가 없지

어제와 오늘이 다른 '하루살이 저널리즘'

by 허남설

"너, 기사를 매일 써?"


기자가 된 이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다. 글을 쓰는 일 자체가 엄청 힘든데, 그 글을 매일 쓰는 건 얼마나 힘들겠냐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응, 매일 쓰지" 같은 답을 할 때 상대방은 다소 놀라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난 생각만큼 일하는 게 힘들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내 노고를 치하해주니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역시 남들보다 글 쓰는 일에 탁월한가 보다, 란 생각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으쓱'했던 건 기사를 얼마나 쉽게 쓰는지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사감을 찾아 밤낮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보고서도 읽고, 하다못해 인터넷 서핑이라도 하지만 사실 그날그날 대부분 기사의 원천은 출입처가 제공하는 보도자료나 브리핑일 때가 많았다. 말하자면 '받아쓰기'다. 보도자료 그대로 기사로 옮기지는 않지만 사실 고등 국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금방 익힐 수 있는 단순 노동이다.


기사를 매일 쓰냐고? 사실 지금 기자들은 보통 기사를 하루에 3~4개씩 쓰고, 어떤 기자들은 20~30개씩 쓰기도 한다. 사람들이 대부분 일간신문으로 기사를 보던 시절엔 기자 1명당 1일에 1개만 써도 괜찮았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실시간으로 온라인에서 기사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기사 호흡은 더욱 짧아졌다.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하면 기사 하나 분량은 최소 4~5장, 많으면 10장 이상 된다. 소설이나 논문이라면 이 정도 글을 쓰는 건 굉장한 체력 소모와 두뇌 회전을 요구하는 일이다. 하지만 기사는 그렇지 않다. 보도자료나 브리핑에 의존하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기자들이 오늘도 그렇게 기사를 찍어내는 기계처럼 일한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많은 기자들이 보도자료나 브리핑에 의존해 하루에 적게는 몇 개, 많게는 십몇개의 기사를 생산하고 '오늘 할 일은 다 했다'며 일터를 떠난다. 국토교통부가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다면, 보도자료를 사실상 Ctrl C, Ctrl V 하다시피 온라인 속보 기사로 내보내고, 이 보도자료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 현장 브리핑을 듣고, 브리핑 내용을 바탕으로 앞서 내보낸 온라인 기사를 조금 다듬거나 새로운 부가 기사를 써서 전송하고,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평소 그 성향(정부 부동산 정책 방향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을 잘 아는 교수님께 전화해 판단을 묻거나 부동산 카페 게시글을 좀 뒤적거려 보고, 그 내용을 첨가해 기사를 새로 써 다음날 일간신문 지면에 나갈 기사를 준비하거나 밤 8~9시 방송 메인뉴스에 내보낼 리포트를 준비하는 식이다. 대부분 언론사는 이 이상의 일을 주문하지도 않고, 이 이상의 일을 감당할 인력도 갖추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깊이 있는 비평이나 분석 기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 폭넓은 취재가 아닌 어설픈 직관에 기대는 경우가 숱하다. 비평을 한대도 그날그날 얕은 비평에 그친다. 혼자 심층 기사를 쓰겠다고 나서는 건 동료 기자들의 업무를 과중하게 만드는 '민폐' 행위일 뿐만 아니라, 그런 기사를 써봤자 포털에 쏟아지는 수천개 기사 틈바구니 속에서 대중에게 도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언론사 입장에서 포털은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게 적절한 전략이 되는 공간이다. 기사 재료가 된 취재원들의 서로 다른 입장을 충실하게 담아내기보다는 정파적으로 재단하거나 노랗게 덧칠해 선정적, 자극적으로 만드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팩트체크는 네이버 검색으로 갈음하면 그만인 수준이다. '펑크'가 나면 안되는 지면이나 방송 분량이 매일 정해져 있으니 없는 사실이라도 쥐어짜서 기사를 써야 할 판이다. 사실관계가 부실하고 일방적인 진술도 일단 받아쓰고 봐야 밥벌이를 하는 구조다.


심사숙고는 사라지고 임기응변만 남다 보니 그날의 기조를 다음날 뒤집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라임' 김봉현이 여권에 로비를 했다고 하자 '폭로'라며 신빙성 있게 다루다가, 나중에 야권이나 검찰에도 로비를 했다고 하자 갑자기 '사기꾼의 말'이라며 헛소리 취급한 어느 언론처럼 말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있었던 '성완종 리스트'든, 문재인 정부에서 터진 '옵티머스·라임 사태'든 똑같이 돈 로비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면 언론은 그 돈이 어디로 갔든 상관없이 같은 무게로 다뤄야 한다.


기사가 갖춰야 할 균형과 형평은 갈수록 찬밥 취급이 당연시되고 있다. A가 B를 통해 C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주장한다면 A의 말은 믿을만한 정황이 있는지, B가 실제로 그 돈을 전달했는지, C는 B를 과연 돈을 받을만한 장소에서 만났는지 등 다방면 취재가 따라야 하는데, 기자들은 일단 아침 10시에 "A가 B를 통해 C에게 돈을 전달했다"라고 기사를 쓰고 본다. C가 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C가 그 기사를 보고 해명할 일이다. C는 오후 2시쯤 해명을 할 테고, 기자들은 "A가 B를 통해 C에게 돈을 전달했다는데, C는 안 받았다고 한다"라고 기사를 고친다. 며칠이나 하루 간격도 아니고 몇 시간 만에 기사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내용을 담는다. 말 그대로 '조변석개'다. 다만, 누군가의 말을 검증 없이 '받아썼다'는 점은 똑같다.


이런 언론 현실을 기자 개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신문이나 방송 뉴스는 고사하고, 언론사 홈페이지조차 방문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포털에서 소비한다. 언론 종사자들은 포털에서 많이 읽히도록 선택받기 위해선 물량 공세와 속도전에 더해 기사를 눈에 띄게 만드는 '양념'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포털에서 소위 '진지 빠는' 기사가 주목을 끄는 사례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의 언론 환경은 마라톤은 고사하고 400m 장거리 달리기도 아닌 100m 달리기만 남는 운동장으로 좁혀지고 있다. 심층적인 분석 기사나 한 사건을 장기간 추적하는 탐사보도는 설 땅이 없다.


모든 언론이 포털이란 담장 안에서 널뛰기를 펄쩍펄쩍 뛰어대며 담장 밖에 잠깐 얼굴이라도 드러내 보이려 애쓰는 사이, 대중은 언론을 믿지 않게 됐고 이제는 그 존재마저 잊어가는 중이다. 아침과 점심, 저녁이 각각 다른 기사를 보고도 언론을 믿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오늘 읽고 잊으면 그만인 기사인데, 그 기사를 쓴 기자나 매체가 누구인지, 어디인지는 관심을 둘 일이 아닌 게 당연하다. 언론의 '브랜드'를 찾는 사람은 이제 나이 든 사람 아니면 정치적 정파의식이 뚜렷한 사람 정도다. 최근엔 심지어 그마저도 잃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태극기 어르신이 유튜브만 보고, 대통령 지지자들이 <뉴스공장>만 듣듯 말이다.


오늘날 '레거시 미디어'는 하루살이 기사만 생산하며 연명하다가 이제는 결국 그 존재 자체가 오늘내일하는 처지가 됐다. '디지털 퍼스트'든, '통합 뉴스룸'이든 구호와 외관, 조직만 바꾸는 개혁으로는 레거시 미디어가 살아남기 힘든 게 자명해 보인다. 보다 본질적인 변화, 바로 기사 그 자체에 변화가 필요하다. 관점이 분명하고 분석이 다각도로 깊으며 호흡이 긴 기사를 찾는 독자는 분명히 있다. 가령 천관율 기자의 기사를 찾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지금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기사 생산 관성을 유지해서는 길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바가지를 바꿔도 썩은 물은 그대로인 법이다. 언론이야말로 물갈이가 절실하다.


Photo by Mario Calv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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