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은 독감 백신을 맞은 누군가가 죽었다는 뉴스를 연일 속보로 쏴댄다. 이 글을 쓰는 10월 22일 아침부터 정오까지 한 뉴스통신사는 경남 창원에서 80대가, 인천에서는 70대가, 전북서는 80대가, 전남 순천서는 80대가, 또 경남 창원서는 70대가, 경북 성주서는 70대가 죽었다는 뉴스를 띄웠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는 꼭 '독감 백신 맞은' '독감 백신 접종 후' 같은 말이 붙었다. 이 죽음은 독감 백신이 초래한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만 같다. 가까운 한 어르신이 묻는다. 독감 예방 접종을 하러 가도 되는 거냐고. 나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이 뉴스는 뭔가 잘못됐다.
'독감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연이어 죽었다', 이 말은 사실일까? 기사를 쓴 기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이 죽기 전에 독감 백신을 맞은 게 '팩트'니까 당연히 그렇게 쓸 수 있는 거 아냐?"라고. 그럼 '전남 순천서 80대,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이라고 기사를 쓰면 되는 걸까? 이것은 '전남 순천서 80대, 쌀밥으로 식사 후 사망'이나 '아침 용변 실패 후 사망'이라고 기사를 쓰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독감 백신 접종'은 '쌀밥으로 식사'나 '아침 용변 실패'처럼 그 사람이 죽기 전 행했던 무수한 행동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독감 백신 접종과 죽음의 인과관계는 그 정도로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까지 독감 백신 접종 후 죽었다는 사람은 대부분 70~80대 노인들이다. 60대 밑으로는 인천 10대 학생 1명이 있다. 날씨가 더위에서 추위로 바뀌어 가는 계절인 점 등을 고려하면, 솔직히 이 시기 어떤 노인의 죽음을 독감 백신 접종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는 건 상식적인 판단이다. 코로나19 확산 영향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접종 수요가 늘 것이란 건 사전에 충분히 예측됐던 바다. '더블 팬데믹(코로나19와 독감 동시 유행)'이란 말도 나왔을 정도니까. 독감 백신을 접종한 수많은 사람들 중 노인들이 연일 죽는 이 상황을 과연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어느 기사도 독감 백신 접종과 죽음과의 인과관계를 논증하지 못했다. 일부 독감 백신이 상온에 노출됐고, 그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있다는 데서 지금의 공포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죽은 사람들 중 독감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상온 노출 백신을 맞은 것도 아니다. 그냥 '백신이 상온에 노출됐다'는 데서 사람들이 느낀 공포감만 그대로 전이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원숭이가 백두산이 되는 격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갛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이런 동요를 근거로 원숭이가 곧 백두산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법이다.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이란 기사는 수많은 조건과 과정을 모두 거칠게 생략해 버린 결과물이다. '독감 백신 접종'과 '사망' 사이에 맥락이 있는 것처럼 기사를 쓴 기자들은 그 노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수많은 인자들, 그것도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인자들(나이, 날씨, 질병 등)을 모두 생략한 채 '독감 예방 접종 후'란 인자만 하나 뽑아냈다. 문제는 이 선택은 편의적일 뿐만 아니라, 악의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악의적'이라고 한 이유는 이 보도가 낳고 있는 피해 때문이다. 당장 내게 물은 어르신의 말씀이 그 예다. 죽을까봐 겁나서 독감 백신을 못 맞겠다는 거다. 어떤 언론은 "백신 포비아"를 운운한다. 해마다 무수한 사람들, 특히 노인과 아이들이 독감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독감 백신은 그 해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를 50% 정도는 예측해 예방한다는 게 통설이다. 백신을 맞지 않았다가 결국 독감에 걸려 죽는 사람들이 있다면 언론은 나중에 그 숫자도 지금처럼 하나씩 세어줄 것인가. 언론의 불성실이 만든 이 어처구니없는 독감 백신 공포증 때문에 애꿎은 피해자가 양산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 보도는 충분히 '악의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어쩌면 수많은 사실들 중 일부를 취사선택해 이를 과장할 때부터 악의는 내포돼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대중의 언론 불신을 자아낸 요인이기도 하다.
언젠가 한 취재원이 술에 얼큰하게 취해 농담으로 이런 말을 했다. "기자들 명함을 보면 앞면엔 침소봉대(바늘처럼 작은 일을 몽둥이처럼 크게 부풀림), 뒷면엔 견강부회(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끌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공함)라고 쓰여있다는데요? 껄껄". '전남 순천서 80대,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같은 뉴스를 보고 있자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원숭이를 백두산으로 부풀리고, 갖다 붙이는 행태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확한 말이 어디 있을까. 문제를 만드는 언론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언론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