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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Jun 05. 2023

명품거리에 있는 1920년대 아파트

오모테산도 힐즈와 반포 주공아파트

도쿄 오모테산도에 있는 쇼핑몰 오모테산도 힐즈(表参道ヒルズ·Omotesando Hills)는 안도 타다오(安藤忠雄·Tadao Ando)의 2006년 작품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1920년대 지은 도쥰카이 아오야마라는 저층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관동 대지진 피해를 복구하면서 당대 기술력을 총동원해 튼튼하게 올린 건축물이다.


안도 타다오는 이 아파트를 복합시설로 바꾸는 재건축 프로젝트를 맡았으면서도, 일본의 근대 생활상을 반영한 이 아파트를 어떻게든 보존하고 싶어 했다. 안 그래도 안도 타다오를 '유행에 뒤처진 건축가'로 보고 있던 토지주들을 분개하게 만들고도 남을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아파트는 너무 낡아 위험하다고 판명되어 모두 허물어야 했는데, 안도 타다오는 오모테산도 힐즈 한편에 도쥰카이 아파트 외관을 재현해 덧붙이고, 오모테산도 힐즈의 전체 높이를 거기에 맞춰버렸다. 안도 타다오의 고집 혹은 철학도 무척 야무지지만, 어쨌든 개발업자와 토지주는 이걸 짓도록 수용했다.

근대 아파트를 재현한 오모테산도 힐즈의 도쥰관. ⓒ구글 맵 스트리트 뷰(https://goo.gl/maps/qbYF2hB8iAqB1GDm8)


서울시는 예전에 이런 걸 했었다. 반포주공, 개포주공, 잠실주공 등 1970년대 지은 초기 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할 때 한두동씩 남기게 했다. 초기 아파트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도 연탄으로 난방하던 시절 아궁이 같은 흔적이 남아있거나, 층간소음의 원흉이 된 벽식 구조가 아니라 기둥식 구조인 아파트도 있거나, 집안일을 해서 돈을 벌던 여성들이 숙식까지 하던 한두 평짜리 일명 '식모방'이 남은 경우도 있다.


이걸 '정비사업 흔적남기기'라고 불렀는데, 언론은 그냥 옛날 5층짜리 주공아파트를 덩그러니 남기는 것처럼 보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 리모델링을 하든 어쩌든 해서 단지 내 상가나 커뮤니티 시설로 쓰도록 유도했다.


최근 흔적남기기 사업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개포주공처럼 재건축 공사 내내 한 동을 남겼는데, 뒤늦게 부순 경우도 있다. 재건축조합은 원래 하기 싫었는데, 서울시가 강요하다시피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 것처럼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이들이 용적률 +5% 인센티브를 받는 조건에 한 동 남기기, 흔적남기기도 포함했다. 그래서 재건축조합이 뒤늦게 흔적남기기를 취소해 달라고 할 때 이걸 수용해도 되는지 서울시 내부에서도 해석이 분분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용적률 먹튀' 행위다.


흔적남기기를 특정 시장의 사업이라고 보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지는 않다. 재건축 아파트에 대거 적용한 건 그때가 맞지만, 흔적남기기 자체는 원래 서울시가 오랫동안 해온 사업이다. 청계천 고가도로를 걷어내면서 이를 떠받치던 교각 3개를 '근대화의 상징'이라고 해서 남겼고, 신설동 쪽 청계천에 가면 지금도 볼 수 있다. 2009년 세운상가를 부수고 공원을 만들려고 할 때도 흔적남기기 방안을 논의했다.


이건 시장이 누구냐를 가리지 않고 다 하는 거고, 해야 맞는 거다. 도쥰카이 아파트처럼 부순 건축물을 재현하기도 하는데, 남은 걸 재생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닌가. 특히 반포주공 같은 아파트는 흔적 남기기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역사가 아니라 한반도 역사를 통틀어 봐도 3000~4000 가구나 되는 공동주택의 등장은 분명 특이점이 된다.

서울 반포주공아파트 전경. ⓒ서울역사박물관

주공아파트 이전에는 조선영단주택이란 공동주택 단지가 있었다. 일제가 세운 조선영단은 한국토지주택공사, 즉 LH와 주공의 전신이다. 지금 영단주택 중 그나마 온전한 건 인천 부평구 산곡동에 있는데 여기도 철거를 앞두고 있다. 문지기 역할을 제대로 하는 지자체가 없다.


*참고자료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홈페이지 https://data.si.re.kr/architrdb/04-오모테산도힐즈

「The view from the Hills: Minoru Mori defends the Omotesando Hills development and reveals big plans for Tokyo」, 『Metropolis』, 2006년 2월 3일

서울특별시, 「"재건축 현장에 덩그러니 두 동만...흉물인가? 유산인가?" 관련」설명자료, 2019년 6월 8일 자.

「"반포 1단지도 철회'… 재건축 시 '한 동 남기기' 사업 없던 일로」, 조선비즈, 2023년 5월 18일 자.

「미쓰비시 줄사택 '보존', 영단주택 '철거'... 엇갈린 운명」, 경인일보, 2023년 5월 15일 자.


*이 글은 SBS라디오 「고현준의 뉴스브리핑」코너 '건축학개론' 2023년 6월 2일 방송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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