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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Jun 07. 2023

가우디는 1,000 가구를 내쫓을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에 생긴 변수

1882년 3월 1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성 가정) 성당의 첫 주춧돌이 놓였다. 현재 이 성당의 건축가로 알려진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1852-1926)는 사실 이듬해 이 프로젝트를 이어받았다. 2023년 올해로 이 성당은 141년째 공사 중이다. 성 가정 성당 건축 재단은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을 완공 목표 시점으로 잡았다. 그런데, 작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성 가정 성당 정면(영광의 파사드·Glory façade)을 향하는 계단 등 기단부를 조성해야 하는데, 무려 3개 블록에 걸쳐 1,000 가구를 철거해야 한다고 한다. 이 변수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성 가정 성당의 구조를 알 필요가 있다.

ⓒYu on Unsplash

영광의 파사드는 아직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다. 성 가정 성당에는 크게 3개의 파사드(입면), 출입구가 있다. 다른 하나는 '탄생의 파사드(Nativity façade)', 또 다른 하나는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çade)'이다. 탄생의 파사드와 수난의 파사드는 각각 예수의 탄생과 죽음을 묘사한 조각이 장식하고 있다. 관광객이 출입하며 주로 사진을 찍는 장소는 이 두 파사드로, 성 가정 성당의 측면이다.


영광의 파사드 앞에는 자전거로 포함 4차선 도로(Carrer de Mallorca)가 있는데, 성 가정 성당의 바닥은 이 도로보다 약 4m 높다. 도로를 건너면 가정집과 식당이 뒤섞인 평범한 블록이 있다. 이제 지어야 하는 기단부는 이 블록에서 계단으로 완만하게 올라 도로 위를 건너 성당 입구로 연결되는 구조물이다.


철거 대상이 된 가구를 대변하는 쪽에서는 이 기단부를 가우디가 설계한 게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나중에 덧붙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 가정 성당의 도면과 모형은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당시 무정부주의자들이 파괴해 상당 부분 소실됐다. 다행히 성당은 부수지 않았다. 당시 내전에 참가해 공화파 편서 파시스트와 맞서 싸웠던 조지 오웰은 훗날 그 경험을 기록한 책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이렇게 다.


나는 바르셀로나에 온 뒤 처음으로 성당을 보러 갔다. 현대식 성당으로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건물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총안이 달린 첨탑이 네 개 있었는데, 각각이 마치 라인 와인병처럼 생겼다. 그 성당은 바르셀로나의 대부분의 교회와는 달리 혁명 기간에 피해를 보지 않았다. 사람들 이야기로는 성당의 <예술적 가치> 때문에 화를 면했다 한다. 무정부주의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건물을 파괴하지 않은 사실은 그들이 지닌 심미안의 수준을 보여준다. 물론 그들은 첨탑 사이로 검붉은 기를 내걸기는 했다.


현재 건축은 가우디의 동료와 제자들이 발굴, 재구성한 자료에 의존한다. 설계안의 어떤 부분은 근거가 약할 가능성도 있다.


단, 기단부에 관한 자료는 존재한다. 성 가정 성당이 제공하는 영광의 파사드 관련 안내 자료를 보면, 기단부가 그려진 1916년 스케치가 나온다.  가우디와 함께 일한 건축가들이 쓴 가우디 전기 「가우디 1928」에는 비슷한 자료가 하나 더 수록되어 있다. 전기에 따르면, 가우디는 성 가정 성당 주변으로 열린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근처 블록 계획안을 수립해 시청에 제안했다고 한다.

성 가정 성당의 기단부를 설명한 자료. ⓒsagradafamilia.org

하지만, 이제 와서 멀쩡히 살아있는 1,000 가구를 철거하면서까지 죽은 가우디의 건축물을 완성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관광지도 관광객을 위해 존재하기 이전에 누군가 살아가는 터전이다. 가수 이승윤은 곡  「관광지 사람들」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이 주인이지.' 무엇보다 구원과 박애의 신의 공간을 지으면서 그 신의 피조물을 내쫓는 일을 옹호할 수 있을까. 가우디는 성 가정 성당 안에서 상주하며 정말 신심으로 성당 건축에 매진했다. 외출하다 성당 앞에서 전차에 치여 죽는 날까지 말이다. 가우디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참고자료

성 가정 성당 홈페이지 https://sagradafamilia.org/en/home

주셉 프란세스크 라폴스·프란세스크 폴게라, 2015, 「가우디 1928」, 이병기 역, 서울: 아키트윈스

조지 오웰, 2009, 「카탈로니아 찬가」, 정영목 역, 서울: 민음사

「Barcelona residents face eviction as Sagrada Familia Basilica completion approaches」, 『Euronews Culture』, 2023년 5월 21일 자.


*이 글은 SBS라디오 「고현준의 뉴스브리핑」코너 '건축학개론' 2023년 5월 26일 방송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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