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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Jul 04. 2023

그곳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집

올해는 부디 모두 무사하기를

큰비가 오면 예년 이맘때쯤 신림동 반지하에서 일어난 비극을 떠올린다. 최근 언론은 반지하 침수방지장치(물막이판) 설치나 거주자의 공공임대주택 이전 현황을 많이 보도했다. 참사 이후 서울시가 발표한 대책 실행 현황을 점검한 것이다. 서울시가 분류한 대상자의 10%, 서울 내 전체 반지하 거주 가구의 1% 정도만 주거 상향을 이뤘다는 점에서 언론이 지속해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당시 유력 정치인들의 '설전' 정도로 소비하고 말았던 논쟁 한가닥을 복기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었다. 화자가 워낙 '거물'들이어서 내용보다는 구도에 관심이 더 쏠렸지만, 사실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니, 정확히는 국토부 장관의 이야기가 그랬다. 그는 그때 적어도 이 사건에 관한 한은 꽤 멀쩡한 소리를 했다.


당시 서울시장은 참사 이틀 뒤 "반지하 주택은 안전과 환경 모두에서 후진적이므로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라고 했다. 언론은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라는 말이냐"라는 반지하 거주자들의 말을 인용하며 대체로 그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사실, 서울시는 10~20년에 걸쳐 차근차근 없앨 계획이었는데, 어째 "반지하는 (당장) 사라져야 한다"로 읽혀버렸다.


국토부 장관이 이 찰나를 덥석 물어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반지하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그분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리고 주택정책의 주무장관답게 덧붙였다. "산동네, 달동네를 없애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반지하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허남설

갑자기 웬 산동네, 달동네 타령일까? 근거가 영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2011년에 서울연구원(당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진이 뉴타운 개발 지역에서 주거이전비 보상을 받고 이사한 세입자의 이주 경로를 추적했다. 그랬더니 72가구 중 반지하 거주자가 개발 전 7가구에서 개발 후 12가구로 늘었다. 뉴타운을 만든 지역은 대부분 국토부 장관이 말한 산동네, 달동네다.


조사 대상자가 적긴 한데, 사실 이렇게 이주 후 주거 형태까지 추적한 연구가 거의 없는 점을 고려하면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결과다. 재개발지역 내 거주기간 등 조건을 충족해 보상을 받는 세입자만 조사한 것이므로, 보상자에 포함되지 않아 조사 대상에 못 낀 세입자 중에서는 지하로 내려간 사람이 더 있을 수 있다.


사실, 반지하는 자연적(?)으로 점점 줄고 있다. 심상정 의원실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58만 호에서 2020년 32만 호로 줄었다. 빌라촌 주차난이 심각해 법적으로 주차면 수를 늘리도록 하면서 반지하 대신 주차장을 짓는다. 또, 다세대·다가구 주택에서 예전에는 지하층은 건물 층수를 계산할 때 빼주다가 넣도록 법을 바꿨다. 건물주로선 지상층보다 세를 적게 받는 지하층을 지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반지하가 줄어드는 대신 고시원 등 주택 이외의 거처 증가세가 심상찮다. 2005년 5만7000호인데, 2020년 46만 호다. 반지하는 줄고 고시원 등은 늘었다. 그러므로 "산동네, 달동네를 없애는 바람에 반지하가 늘었다"는 정확한 사실을 담은 말은 아니다. 다만, 반지하 등 '사람이 살기 적합하지 않은 주거'가 급속하게 늘어난 맥락만큼은 정확하게 짚었다고 볼 수 있다. 불편하기 짝이 없고 보기에도 좋지 않은 산동네, 달동네가 누군가에게는 그나마 안전하고, 그나마 집다운 거처였을지도 모른다.



해외에서 우리의 반지하를 'banjiha'라고 소개한다며, 지하 주거가 우리에게만 있는 주거 문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신림동 참사 약 1년 전인 2021년 9월, 뉴욕을 허리케인이 강타했을 때 퀸즈에서는 지하에 살던 사람들이 10명 넘게 죽었다. 어떤 사람들이 집다운 집에 살지 못하는 건 어디나 비슷하다. 올해는 부디 모두 무사하기를 기원한다.


*참고자료

장영희 외,  2011, 「뉴타운사업의 원주민 재정착률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최은영 외, 2022, 「생명권과 건강권을 위협받고 있는 지옥고 실태와 대응 방안」, 심상정 국회의원실.

최현정, 「'세계적 도시 뉴욕' 반지하 뉴요커들의 떼죽음」, 『오마이뉴스』, 2021년 9월 9일 자.

이수민, 「"엄마 문 안열려" 이게 마지막이었다…신림 반지하 비극」, 『중앙일보』, 2022년 8월 10일 자.

유엄식 외, 「반지하방 없앤다…"이 돈으로 어딜" 갈 곳 없는 20만가구」, 『머니투데이』, 2022년 8월 12일 자.

서울특별시, 「서울시, 시민 안전 위협하는 '반지하 주택' 없애 나간다」 보도자료, 2022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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