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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실물보관소 Aug 13. 2020

1. 소설은 쓸 줄 몰라서 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직장을 그만뒀는데, 아내는 임신을 했다.

가난


유년 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는 허름한 집으로 이사 가는 것으로 시작됐다.

서울에서 월세로 살던, 반지하와 옥탑방이 아직도 기억에 뚜렷하다.

좁디좁은 반 지하집에서 짐을 한편에 쌓아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사를 갈 때쯤에야 발견했다.

곰팡이가 잔뜩 핀 앨범     

그 속에서 구해낸 몇 장

우리 가족의 추억들은 반 지하집에서 모두 망가져버렸다.          

그다음 이사 간 곳은 볕이 잘 드는 옥탑방이었다.

개운한 바람은 퀴퀴했던 나를 살균시킨 듯 들뜨게 했지만,

계절은 바뀌고 상쾌했던 바람은 겨울의 칼바람으로 바뀌었다.          


내게 가난이란...

퀴퀴하고

추울 때 더 춥고,

더울 때 더 더우며.

추억을 망가뜨리고.

부모님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경기도 변두리 빌라로 이사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서 부모님과 한 개뿐인 통장에 돈을 같이 모았다. 그리고.... 그래서...

결혼할 무렵에서야, 우리 집은 원래 살던 서울의 중심가로 복귀할 수 있었다.   


 남자의 흔한 착각  -‘시’ 어머니는 다른 집 얘기인 줄 알았어.


이사 간 서울 집에서 부모님을 모시며 사는 것으로, 우리 부부의 신혼생활은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아내를 예뻐해 주시지 않으셨다.

난, 우리 어머니는 천사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결혼 후에야, '우리 어머니도 시어머니구나...'라는 것을 깨우쳤다.

무엇보다, 버릇처럼 매일 부부싸움을 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아내는 그때부터 아팠다.

어머니는 주부습진이 대수냐며 내게 면박을 주시고, 보려 하지도 않으셨다.

아내의 손가락 마디마디 피가 터졌는데 피가 터진 그 손으로 매일 아침 5시부터 일어나 요리를 하고 설거지도 했다.      


나는 어머니께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내의 손을 한번 보기나 하시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     

어머니는 그다음 날 아침에야 아내를 불러, 손을 보시고 우셨다.      

안아주시고 미안하다 하셨다.     

본인도 그렇게 상황이 심각한지 모르셨던 것이다.    


나도 숨어 울었다.                

다음 달, 우리는 분가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전 이 아이와 사는 게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제가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며느리 이뻐해 주세요.”     

그 말 한마디에 어머니는 정말로 변해주셨다.


그날 이후, 어머니가 아내를 대하는 모습에서 진심 어린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아내와 어머니가 살갑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한번 상처 받은 사람은 그 생각을 안 할 수는 있어도, 그 기억을 지울 수는 없다.   

   

아내를 2007년 공항에서 첨 만났다.

나는 아내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언성을 높인 일이 없다.

유독 부부싸움이 많은 집에서 자라나, 결혼하면 절대로 싸우지 않겠다는 결심은 일상이 되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 부부는 분가했다.

꿈에 그리던 우리 둘만의 신혼생활은 허름한 빌라에서 시작됐고.

그 허름한 빌라를 우리는 직접 수리해서 들어갔다.  

        

결혼도 했고, 분가도 했으니까. 지금이야말로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아보겠어.


5년간 다니던 출판사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그 봄

4월 1일에, 아내는 “오빠, 여기 봐 두줄이야.”라고 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4월 1일에 하냐? 만우절이잖아.”    

 

살고 싶은 삶을 살아보고자 직장을 그만뒀는데, 아내가 임신을 했다.

일단, 서울에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살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는 직업학교를 다녔다.

남는 시간에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고, 볕을 맞으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장을 보고,

같이 모든 걸 같이...


그때가 우리에게 가장 따듯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따스한 계절을 아름답게 보내고. 아내는 12월에 출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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