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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실물보관소 Aug 13. 2020

3. 그때 쓰러지지 않았담, 아직도 그 공장에 있겠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안의 느낌과 갈망을 의식하게 된 거야.

집을 짓고 난 후,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40대가 되고 나니 취직도 쉽지 않았고. 경력단절 남성이었으며, 대학을 중퇴한 고졸 딱지로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내 집을 18개월 동안 지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건설 현장에 나가는 것이었다.


신입으로 들어간 건설 현장에서, 나보다 어린 현장 소장에게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뛰어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지난 4년간의 농사와 18개월간의 집 짓기를 하는 동안, 내 허리는 많이 망가져 있었나 보다.     


119 구급차의 천정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었다.

 "울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현장에서 일하다 쓰러져서 119에 실려갔어.     


일주일 입원했다가

퇴원해서 현장은 다시 못 가겠더라.     


그래서 공장으로 갔어.

캠핑카를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현장보다 조금 더 편하지만  실내에서 온갖 유독가스와 frp의 분진가루를 아무 장비도 없이 다 견뎌내야 하더라. 너무 영세한 업체라서 천 원짜리 마스크  하나 사주기 힘들어하는 곳이었어.  (두어 달을 조르고 졸라서 제대로 된 마스크를 사서 쓸 수 있었어.)     

캠핑카(좌), 분진이 뭍은 바지(중), 두어달만에 얻어 쓰게 된 방독마스크(우)

폐기물은 하수구에 버려지거나 방치되거나 태워졌지. 이걸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도 없었어.


이곳에 일하면서 나는 좀 외로웠어. 정서적 공감대를 나눌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거든.     

난 또 119에 실려갔어. 현장에서 공장으로 바뀌었을 뿐, 일이 독한 건 매 한 가지더라...     

열흘간 입원해있다가 퇴원하고 나니, 다시 공장은 가기 싫더라.     

두 달 동안 쉬면서 매일 책을 읽고 공부하고. 운동도 열심히 했어.


어느 날 산책을 하는데.

가슴속에서 샘솟듯이

기쁨이 솟아나 오는 게 느껴졌어.

아무 이유도 없었는데 말이야.     


그때 알았어.

행복이란 게 어떤 조건이 주어질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조건이 변해버리면, 행복도 날아가버려. 그래서 행복이라는 것은 아무 이유도 없이 내 안에서 샘솟을 수 있는 게 진정한 행복이야.     

그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행복의 실마리라는 것을.     


그리고, 난 다시 취직을 했어. 운이 좋게도.

이번에 사무직으로. 연봉도 몸 일할 때보다 더  준다는 거야.

가장 좋은 건 대화를 나누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었어.     


그때 쓰러지지 않았담, 난 아직도 건설현장이나 그 캠핑카 공장에서 일하고 있겠지. 현실을 한탄하면서 말이야.  현실은 내 생각의 방향을 반영하는 것 같아.     


근데 말이야. 난 아직 부족한 사람인가 봐.

예전과 비교하면 더 나은 환경인데도, 아쉬운 점이 느껴지는 거야.

이곳에는 이곳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어.

잣은 야근과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신노동.

때론 좀 부당하게 여겨지는 상황도 비굴하지 않은 미소로 반응하는 안면근육이 필요하더라고.

이 정도야 얼마든 감내할 수 있잖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지나갔는데.     


그렇게 현실이 된 일상을 지내다가.

난 또 한 번 쓰러지고 말았어.

아침에 출근해서 밤 12시 넘어까지 일했는데, 다음날도  일찍 출근하는 일이 잦아지자... 쓰러지기 직전에 느껴지던 전기 통하는 느낌이 시작된 거야.

급하게 휴가를 내고, 며칠을 누워있다가 겨우 출근했더니, 사표를 내라고 하더라.     

사람들은 나를 위로해주는데...     


위로가 필요하지 않아. 단지, 이 일도 내게  또 하나의 축복이 될 것이라 것이 느껴져.   

  

난 다시 책을 읽고

산책하고, 호흡하고, 글을 쓸 거야.

노래를 부를 거야.

여행을 떠날 거야.     

일을 하면서  지금 흘러가고 있는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어.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아무 의미 없는 일들을 하고 있는 건

영혼을 잃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어.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무언가 더 읽고 싶었고, 지금 이 느낌을 쓰고 싶었고, 산책하면서 더 깊은 호흡을 하는 나를 갈망하고 있는 거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안의 느낌과 갈망을 의식하게 된 거야.     

그러니 시작할 수 있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때. 그때가 새로운 출발을 할 가장 적당한 시기야.     

작고 초라할지라도, 내 것이라 느껴지는 삶을 온전히 살아보고 싶어.

늦은 시작이지만, 응원해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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