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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실물보관소 Aug 13. 2020

4. 돈 없이 사업할 수 있을까?

하나의 문이 닫힐 때마다, 또 다른 문이 열리는 거야.

내 호흡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일 찾기     


현장에서 쓰러지고, 공장에서 쓰러지고, 사무직에서도 쓰러지고 나서야 내가 직장생활을 감당할 수 없는 몸이 됐다는 사실을 알았어.

남의 장단에 발을 맞추는 일이 아니라, 내 호흡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어.


그래서,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어.     

근데, 수중에 돈이 없었어. (집 짓는데 모두 써버렸으니까)     

돈 없이 할 수 있는 사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가장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양봉'이라는 말을 들었어.     


로얄제리를 만들기 위해 하는이충작업, 벌이 분봉난 모습, 봉장사진

그래서 나는 인터넷을 뒤져서 이동 양봉하는 분 밑으로 들어가서 양봉을 배우며 일을 시작했어.     

급여 일부를 벌로 받아서, 키우기 시작했어.   

    

한국의 양봉 자재는 저가의 중국산이 대부분이었어.

단열이 안 되니 벌통 내부에 결로수가 차고, 물 때문에 곰팡이가 나고, 그로 인해 병이 생기고, 병이 생기니 항생제를 쓰는 악순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게다가, 초보자들이 벌의 월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야.     

벌통의 월동 포장 (벌통의 안쪽과 바깥쪽에 단열재로 포장한다. 과포장은 오히려 독이 된다. 적절한 정도를 찾아야 함)


그런데, 양봉 선진국에는 아무것도 안 해줘도, 겨울이나 여름이나 쉽게 나는 벌통이 있데.

병해가 적어 약을 쓰지 않아도 월등하게 키울 수 있는 벌통!     

그 벌통을 사고 싶었어.

하지만, 한국에서 팔리는 가격이 너무 비쌌어. 허걱~ 소리가 날 정도로...     


그냥 포기했겠어?     

그 벌통의 원 제작사를 인터넷으로 알아봤어.

핀란드에 있는 그 회사에 이메일을 보냈지. "벌통을 사고 싶어요. 최소 수출물량을 알려주세요~."

답변이 왔어. "1,000세트(2개 컨터이너 물량)가 최소 물량이라는 거야."     

이 벌통을 수입해 보기로 마음먹었어.  1,000세트나 되는 벌통을 살 돈이 없으니...

이 벌통을 저렴하게 사고 싶어 하는 양봉인들에게 공동 구매하자고 제안했어.

이 회사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번역해서 양봉인들의 카페에 올렸어.

견적서도 받은 그대로 올렸지. (한국 가격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이 견적서에 나와 있었어.)

세관 통과 절차와 창고 물류비 등을 알아봤지.


사람들은 열광적인 댓글을 남겼어. 정말 대단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돕겠습니다~ 등 등...

그렇게 시작된 공동구매가 제대로 될 줄 알았어. 주문도 받기 시작했어.     

하지만... 모든 대화를 번역해 투명하게 공개했던 것이 아킬레스건이 됐나 봐.


기존 벌통 수입 업자에게 모든 정보가 흘러들어 간 거지. 그쪽에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모르겠지만....

벌통 제조사에서 이메일이 왔어.

수출하기로 했던 것을 취소한다고....

기존 업자를 리스펙트 해보기로 결정했다는 거야.     


그동안 우리의 모든 수고로움이 날아가버리게 된 순간이야. 마음이 무너지려 했어.

하지만, "ok 너희 결정을 존중할게."라고 했어.     


하나의 문이 닫힐 때마다, 또 다른 문이 열리는 거야.

그러니 문이 닫혔다고, 그 문만 바라보고 있지 마.     


그 벌통은 장점이 크지만 단점도 많았어.

첫째, 한국 자재와 호환이 안 되고,

둘째, 부품들이 결합이 안 돼서 이동이 불편했어.

셋째, 스티로폼이라서 내구성이 떨어졌어.

그런데도 한국 가격은 너무 비싸.    

 

우린 선진국의 벌통들을 연구했어.

그리고, 직접 개발해 보기로 결심했어.

선진국 벌통의 단점을 보완한 한국식 벌통을 만들어보기로 말이야.     

돈도, 경험도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보자.


뜻이 있는 자에게 길은 열리지 않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으니까...     


먼저, 도면을 그리고.

도면대로 만들어 줄 수 있는 회사들도 알아봤어.

견적서를 받아봤는데...

먼저 금형을 만들어야 하고, 금형을 만드는데만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가더라고...     

그래서 투자자를 구해야 했어.     


이 좋은 아이템에 투자금을 대 줄 사람이 없을까?


없더라고...


진짜 아무도 돈을 내준다는 사람이 없었어.

투자를 받으려고 도면을 인터넷 동호회 카페에 노출했다가, 괜히 정보만 노출된 적이 있었어.

(그때 내가 올린 아이디어 일부로 특허를 낸 업체도 있어. 아이디어는 함부로 공개하는 게 아니야.)


이래 저래 돈이 없는 놈은 안 되는 건가...

우울할 뻔했어.     

그런데 우연히 sns에서 아이디어만 좋으면, 정부 지원금 1억까지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기술혁신형 창업기업지원사업>

대출이 아니라, 갚을 필요가 없는 지원금이래.

이 정보를 10월 5일에 알게 됐는데, 마감이 10월 15일이었어.

    

그날부터 다른 모든 일을 중단하고,

사업계획서를 쓰는데 모든 집중을 쏟기 시작했지.     

돈이 없어서 실행을 못 했던 거지, 머릿속에 들어있던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형상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어.

여기에 정확한 데이터와 근거를 추가했어.     

총 400팀을 뽑는다고 하더군.

그런데, 딱 1팀에게만 1억 원이 지원된데...     


몇십 페이지 분량의 계획서가 거의 암기될 정도로

서류를 마지막까지 고치고 고쳐서 제출했어.


합격은 확신했어. 사업계획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문제는 1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꼭.

1억은 되어야 했어. 1억 도 이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모자란 돈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서류합격을 통보받았어.     

그 후, 아내-대표-는 밤마다 대면(pt) 발표 준비를 했어. (40세 미만이라는 나이제한이 있었어)

아내는 낮엔 일을 하면서, 밤마다 준비를 해야 했어.

두 아이들을 돌보면서....

우리는 열정적으로 준비했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누가 듣고 웃든 말든

나는 스스로에게 매일 수백 번씩 "400팀 중에 1등 했다."라고  얘기했어.     

그런데...

진짜로 말한 대로 된 거야.     


우리가 1억을 지원받게 되었어.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고, 남아 있는 여정은 많지만.


나는 믿어.     

길이 막혀도, 문이 닫혀도.

곧 더 큰 문이 열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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