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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실물보관소 Mar 06. 2023

5. 싯다르타처럼

돈을 내는데 을이다.

아버지가 타인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이 어린 시절, 안타깝고 부끄럽기도 했다.

내 두려움 중에 하나도 아이들이 부모인 나를 그렇게 보면 어쩌나... 였다.


아빠 접점을 찾아야 한다.

굽신거리지 않는 겸손함과 오만하게 보일 수 있는 당당함 사이에서.




공장에서 제품을 제작하는데, 불량이 발생했다.

양산업체에서는 금형의 문제를 지적했고,

금형을 제작한 업체에서는 양산의 문제를 지적했다.


똑같은 금형에서 이전의 생산품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 생산품은 불량이 나왔다.

때문에 양산업체의 실수 혹은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판단이었는데, 양산업체 부장님은 결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회사의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며, 중간 관리자가 그 책임을 떠안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양쪽 회사에서는 그 아무도 책임을 안 지려 했고, 손실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어르고 달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그 양쪽 회사에서 차지하는 우리 매출은 아직까지 정말로 미미한 것이었다.

그 손실을 떠안느니, 금형을 빼가시려면 빼가라는 식이었다.  


금형을 뺀다는 것은, 나의 손실을 의미한다.

금형은 양산업체의 생산설비에 맞게 제작되는 것인데, 금형을 빼서 다른 공장으로 가게 되면, 그 상황에 맞게 많은 부분을 다시 맞춰주어야 한다.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더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돈을 내는 을이 되고 말았다. 


잘못을 한쪽은 당당하게 큰 소리를 치고, 당하는 쪽인 내가 눈치를 봐야 하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양산처에서는 무조건 금형을 수정하라고 해야 했다. 금형을 수정하지 않았는데, 정상품이 생산된다면 자기들의 실수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형 수정 전에는 생산할 수 없다 못을 박았다. 금형 수정은 또 다른 지출을 의미한다.


나는 판매가 중단돼서 보는 손실과

불량품을 처리하는 손실,

금형을 수정하는 손실까지 보게 된 것이다.


억울하지만, 이것이 자연계에 있는 약육강식의 논리이기 때문에, 상황을 판단하고 어떤 것이 가장 적게 손해를 보는 것인지 계산해야 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는 그 접점을 정확하게 찾아낸다.

어떤 상인의 밑에서 일하며 거래를 하는 것을 배우는 상황이었는데...


저는 사색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는 단식할 줄 압니다.

단식은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요. 예컨대 싯다르타가 단식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오늘 당장 아무 일자리 건 얻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싯다르타는 이렇게 태연하게 기다릴 수 있으며, 초초해하지도 않고, 곤궁해하지도 않으며, 설령 굶주림에 오래 시달릴지라도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나으리, 단식이란 그런 데에 좋은 것입니다

..... 중략....


그는 결코 그 상인에게 종속당하지 않았으면, 그 상인이 부득이 자기를 동등하게 대우할 수밖에 없게끔, 아니 사실은 그 이상으로 대우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중략... 

그는 한 번도 사업에 몰두한 적이 없으며, 한 번도 사업이 그의 마음을 지배한 적이 없으며, 한 번도 실패를 두려워해 본 적이 없으며, 한 번도 손해 보는 것을 걱정한 적이 없네.



나는 싯다르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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