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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Jun 04. 2018

목매기, 어쩔 수 없음에

최진기의 <최진기의 지금당장 경제학>

 제목을 보고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책의 이름에 내가 잊고 살았던 것들이 가득 들어차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경제학'과는 반갑기도 하지만 무언가 서먹한 사이이다. 첫 만남은 강렬했다. 칠판을 엑스자로 쪼개버리는 듯한 수요와 공급 곡선의 직관적이고 저돌적인 모습에 중학생 때부터 나는 이끌렸다. 그 계기로 경제학을, 고등학생 때는 입시 과목 중 하나로 선택했고 대학에 가서는 전공으로 골랐다. 이제 와서 내게 남은 경제학은 무엇인가 떠올리려 안간힘을 써보면 크게 기억나는 장면은 딱히 없다. 대학교 축제 때, 제육볶음과 소주 안주 세트가 파레토 효율이라고 광고하던 경제학과 주점의 메뉴판과 도서관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짝사랑했던 거시경제학 노르스름판 책 표지 말고는.

 그리고 두 번째로, 최진기 씨는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 지긋지긋하게 보았던 선생님이다. 고등학교 사회문화와 경제학을 그에게서 배웠었다. 당시엔 너무나 유명하고 하지만 무언가 앞뒤가 어긋난 모습의 그가 얄밉기도 하였다. 사회문화 시간엔 일류대학교 사회학 전공의 이력을 자랑하였고, 경제 시간엔 증권사 출신 경제학도라고 자찬하였다. 거짓으로 자랑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다른 수업마다 다른 칭찬으로 일색하는 모습이 무언가 의뭉스러워 보였고 그리고 의자와 책상 사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우울한 고등학생인 나에게 그냥 뜬 구름에서 약 올리는 일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어느덧 그러기가 십 년이 지났고 최진기 씨도 나도 각자의 인생을 잘 겪어낸 듯도 하다. 최진기 씨는 아프로 파마머리를 종종 하던 시절과 다르게 유명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말끔한 모습과 진중한 표정으로 좋은 말씀을 나누고, 음울한 표정의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느덧 대학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 회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회사원 수습과정의 마지막 주에 그 사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최진기의 지금 당장 경제학>. 익숙한 사람, 익숙한 학문 탓인지 어떤 새로운 내용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경제사로 시작해서 환율로 끝나는 이 책은 그런대로 괜찮은 경제학 입문서였지만 내게는  어렸을 때 인터넷 강의로 배운 그 내용이었고, 조금 더 커서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듣던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나 잊힌 나를 상기하기에는, 익숙하지만 잊힌 이 책의 내용은 내게 충분하였다. 왜 경제학을 좋아했고, 왜 지금은 그때와 같지 않은지. 또 왜 더 이상 그럴 수 없는지.

 어렸을 때엔, 두꺼워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던 경제학 전공책을 보면서도 복잡다단한 사회를 한 가닥이라도 더 이해했다는 뿌듯함에 벅찼는데. 이제는 그때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일단 그럴 필요를 모르겠거니와, 당장의 월세에 그리고 취업한 친구랍시고 으쓱이는 한 턱 또 두 턱 세 턱에 몸 둘 바를 찾지 못하였다. 어쩔 수 없음이 아니고서야 다른 필요를 느낄 수 없게된 지금, 턱 끝까지 차지 않으면 절대 허우적거릴리 없는 지금, 언제 다시 책을 넘기며 가슴 벅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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