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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Mar 16. 2018

카네기의 꾸며진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


 인간관계라는 문제를 머리 부여잡고 고민하기 시작했던 때는 대학에 막 발을 들이던 쯤이었다. 이전까지는 수능이라는 큰 산을 앞둔 탓에 오로지 학원과 학교에 매달려있었으므로 도무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인간관계와 동떨어진 채 들어간 대학에는 서먹한 사람들 천지였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이 되었어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어색했었다. 언제는 존경하는 교수님으로부터 원래 그렇게 말이 없었냐고 핀잔을 듣기도 하였다. 그때는 교수님께 많이 서운했었다. 나도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싶고 그리고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나는 그 핀잔에 대답으로 초면에는 낯을 좀 가린다고 어쭙잖게 둘러대었다. 그 대답을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우습기도 하다. 교수님도 그런 내 대답이 시원치 않은 모양이셨는지 누구나 초면엔 낯을 가린다고, 더 노력하라고 내게 한 번 더 민망을 주셨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대학생활 동안 줄곧 고민했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훌륭한 어떤 지점에 닿겠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건 아니었지만, 그때 이후로 사람을 마주할 때면 평소처럼 살갗에 닿는 공기도 어딘가 이질적으로 느낄 정도로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카네기 인간관계론>. 사서 꽂아놓은 사람이 누군진 몰라도, 내 책장에 꽂혀있는 그 책 속이 그래서 그때엔 정말 궁금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뜻 꺼내서 펼치지 못했고 지금에 와서야 독서경영대학이라는 명목으로 미지에 쌓여왔던 책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이 책을 왜 그동안 읽지 못해 피해왔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읽는 내내 책장을 넘기면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엔 그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다가 결국엔 책에 적힌 한 문장으로 불쾌함의 이유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어라'라는 문장이었다.


 인간관계를 왜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 고민해보면 나는 나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하고 싶다. 나와 사는 사람, 일하는 사람, 일했던 사람, 학교 다녔던 사람. 더 멀리로는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까지 나는 나와 가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어도 나로 인해 불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나아가서는 그들이 행복하다면 나 또한 행복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의 행복이 나로 인한 것이라면 더욱. 그래서 누군가가 추운 겨울날에 팔리지 않을 물건을 들고 길거리에 앉아 손을 호호 불며 떨지 않았으면 좋겠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궂은일로 늦게까지 사무실 불을 외롭게 밝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왜 카네기는 '자신을 버리고'라고 말해야만 했을까. 내 눈에 카네기가 말하는 헌신은 사람에 대한 진심이 아니었다. 책에 적혀있는 대로 누군가에게 호의를 표하고, 경청하고,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하고. 이 모든 행동이 '자신을 버린' 결과이지만, 그 목적은 인간 자체도 사람 자체도 아니라 결국 인간'관계'이므로. 카네기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서 사람은 없고 관계라는 복잡한 의무만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을 만났다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물론 어떻게 이 세상 모든 이를 진심으로 대하고 그들이 행복하길 바랄까 싶지만, 내 앞에 앉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믿어보고 싶다. 어떤 사람이든 밝은 면을, 사랑스러운 면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믿는다. 그것을 찾아내어 나는 그곳에서 애정을 느끼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짓는 미소에서 나는 행복을 느끼고 싶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호의를 표하고, 경청하고, 상대방이 미소 지을 만한 이야기를 나는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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