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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Mar 26. 2018

집착이 없어야 <디테일의 힘>

왕중추의 <디테일의 힘>

 디테일을 포기하고 산 지 꽤 된 것 같다. 큼지막하고 무게 있는 일을 해결하면 자잘하고 사소한 일은 알아서,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온 탓이다. 디테일이 생명이라고 여겼던 고등학생 때는, 영어 교과서에 적힌 관사 하나까지 빠짐없이 달달 외웠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대입 재수를 하면서까지 발버둥 쳐도 달라지지 않는 대학 간판을 보고는, 디테일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한 구석에 디테일을 처박아놨었다. 집착해서 실패하느니 실패하더라도 마음만은 편하자는, 뭐 그런 합리화였다. 


 이런 식으로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마음은 편안했고 하고자 하는 일도 그럭저럭 잘 풀렸다. 작은 부분까지 챙길 정도로 노력하지 않는 데에 비해 잘 풀린 편이었어도, 정말이지 마음만은 편했다. 학점도 나쁘지 않았고, 동아리도 대외활동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된통 혼난 적 있었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었다. 첫 시험에서 나는 1점 차이로  합격할 수 없었다. 처음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고 여기고 6개월을 다시 넉넉한 마음으로 공부했다. 다시 본시험에도 나는 1점 차이로 합격할 수 없었다. 그리고 6개월이라는 시간을 더 들이고나서야 시험에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궂은 시간이 걸린 데에는 아마도 굵직한 주제만 파악하면 쉽게 합격할 수 있다고 자만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디테일을 무시한 벌로 나는, 1년 반이 약간 모자라도록 같은 책을 봐야만 했었다. 


 이러한 실패의 경험들로 나는 의식할 새도 없이 디테일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왕중추의 <디테일의 힘>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이 사실을 알았다. 오랜 시간 동안을 스스로 디테일을 포기하고 마음 편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정하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영어 관사에 목메고 지문을 달달 외워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한 걸음 물러서 냉소한 태도로 팔짱 끼고 물러서고 싶었다. 그러면 남들보다 조금 덜 성취해도, 많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언가에 집착을 버리는 연습을 무던히 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켜 책을 읽으니, 집착하는 일과 디테일을 챙기는 일은 전혀 달랐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집착을 버리고 디테일을 찾아왔다는 것을. 집착과 디테일이 어떻게 다른지, 어디가 다른지 낱낱이 늘어놓기엔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집착하면서 나는 고통스러웠고, 디테일을 챙기면서는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다고 말할 수밖에.

 그러나 알면서도 모든 일을 완벽히 해낼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사실을 알고도 어떨 때는 디테일 없는 집착을 일삼고, 종국엔 성과도 없이 오로지 스트레스에 흠뻑 젖은 나를 발견하기도 하는 걸 보면.  

 세상사가 다 내 마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사에 집착 없이 디테일을 챙기고, 거기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앉은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빤히 보고 있자니, 언젠가 내 모니터에 비칠 업무들이 막연히 두렵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옆에 앉은 뒤에 앉은 선배사원들처럼 나도 잘 해낼 수 있을까, 앞선 마음에 이것저것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렇다한들 달라지는 건, 아직은 딱히 없다. 그리고 또, 디테일 없는 집착이 될까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머뭇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느리더라도 조급함 없이 집착을 덜어내고 그 위에 묵묵히 디테일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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