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집> 리뷰, 윤가은 감독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음
우리집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하던 말의 대부분은 "우리 집에는 ~"이라고 시작하는 말들이었던 것 같다. 물론 아닐 수도 있는데,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집>을 본 탓에 그런 생각이 든 모양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 모습이 아기자기하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그들의 속까진 그렇지 않아 보였다. 마치 어른들과 다를 바 없이, 집 걱정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우리 집 때문에 걱정이다."라는 말을 서로 하기도 한다.
살아보면서 느끼건대,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을 거라고 아니면 적어도 어른으로 변해가면서 다 잊을 거라고 그렇게 편하게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어른들은 그렇게 행동해선 안된다. 극 중에서 유미, 유진의 부모는 아이들의 생각이야 입장이야 어떻든 상관없이, 두 아이만 남겨둔 채 돈을 벌러 멀리 떠나 산다. 10살도 안 된 여자아이, 이 단 둘이 살아가다니. 나로서는 유미, 유진의 부모의 행동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언니인 유미에게 '우리 집은 걱정'이다. 걱정.
이에 비하면, 하나는 나은 편이려나. 하나는 냉랭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사뭇 책임감을 느낀다. 밤마다 큰소리로 싸우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무관심한 오빠 틈에서 막내인 자신의 역할을 아는 것이다. 으레 이것은 분명한 고민인지라 학교에서 연필조차 잡히지 않는데, 잠 못 이루는 밤에 하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이혼.'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에게 이혼은 어떤 의미일까. 드라마나 영화 탓인지 아니면 좁은 표본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대부분의 부부가 살아내는 가정생활은 모름지기 다 이렇지 않은가. '가족이라는 짐을 잔뜩 둘러매고 아슬아슬한 빙판을 걷는 꼴'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혼도 별거 아니다. 그러나 10살짜리 아이에겐 종말이다. 오직 엄마, 아빠, 오빠로만 이루어진 '나'의 세계가 산산이 흩어져 사라지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역시 하나에게도 '우리 집은 걱정'이다. 걱정.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우리 집도 역시 걱정이었다. 쪼그만 한 게 뭘 아냐고 할지 몰라도, 어렸을 적부터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의 이성과 감성을 지녔었다. 그러나 엄마가 아니라고 극구 부정하는 걸 보면, 이성과 지성은 아니고 인식 정도였나 보다. 그래, 지금의 인식을 그때에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탓인지, 부당함과 합당함이 갈라지는 순간마다 알지 못할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했었다. '그때에는' 알지 못했던 부끄러움. 어려서, 작아서, 힘이 없어서 등등의 적은 나이가 만들어낸 핑계들로 침묵하고 있어야만 했던 부끄러움. 당시의 어른들은 몰랐겠지만 그러나, 그때의 적은 나이였어도 나는 다 알고 있었다. 부당하고 합당함의 차이와 또 그들의 부정(不正)을.
영화 <우리집>의 하나는 역시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유미와 유진도 그러하다.
지금도 우리 집은 걱정이다. 그러나 더 이상 나는 부끄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