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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May 30. 2017

나에게 안고수비[眼高手卑]

영화 <노무현입니다>

* 전혀 정치적 내용을 함의하지 않음.


안고수비 [眼高手卑]
눈은 높고 마음은 크나 재주가 따르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이르는 말


 국밥집에서 아닌 와중에 티브이가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화면엔 노란 물결이 가득했다. 감자탕에 있던 뼈를 뜯다가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수험생에게 이게 무슨 뉴스인가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외람된 말이지만 세상의 모든 사건이, 시험만을 마음속에 담고 있는 내게, 당시엔 하찮아 보였다.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자살이란다. 그날은 비가 왔었던 것 같다. 감자뼈를 억지로 비틀고 갈라놓고 헤집어놓은 식탁을 뒤로하고, 우산을 폈었던 것 같다. 비가 참으로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경제를 살린다는 사람도 있었고, 예전의 향수를 자극하던 사람도 있었고 그랬다. 나에겐 조금은 먼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삶이 당장에 곤궁해서, 특별히 바뀌는 것은 항상 없어서. 언제나 삶은 내가 참을 수 있는 한계치보다 조금씩 덜 지루했고, 한계치보다 조금씩 덜 힘겨웠다. 그냥저냥 그렇게 사는 내 삶이 특별히 바뀐 적도 없었고, 바뀌리라 기대한 적도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 가는 게 삶인 것 같아 순응하는 게 속 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았다. 비가 많이 오던 날, 많은 사람들이 애도했던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였다. 정치적인 취향은 차치(且置)하고, 감자뼈가 악착같이 손에 매달려있던, 비 오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영화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다루었다. 주로 대통령이 되기 전의 과정을 다루었고, 부차적으로 대통령 임기 중과 임기 후를 짧게 다루었다. 결과만 비춰보았을 때,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일국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단상 위의 빛나는 모습에 가려, 그의 노력은 내 머릿속엔 전혀 그려지질 않았다. 알고 보니 그는, 딱히 기반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할 부모의 그늘도 없었고, 좋은 학벌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변호사라는 라이센스 하나뿐이었다.

 영화에서 표현하기로, 그런 그를 그곳까지 끌고 간 것은 진심과 뚝심이었다. 진정 자신이 바라는 것을 향해 끝까지 밀고 나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노무현이 변호사 시절, 변호해준 부림사건의 피해자가 했던 말이었다.


그냥 그 정도 능력으로, 적당한 양심 지키면서 살면
적당히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분인데.

 어렸을 적에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했다.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께 물어보면 부모님이 줄줄 늘어놓으셨던 것 전부가 직업이었다. 과학자, 의사, 변호사, 판사 등등. 당시 유치원 선생님이 어떤 친구에게 커서 무엇을 하고 싶니 했을 때 그 친구는 파워레인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비웃었던 그 대답이 지금의 내 대답이고 싶다. 꿈이라는 이름표에 직업만 갈아 끼우면서 살아온 게 지금의 나니깐 말이다. 처음엔, 부모님이 대통령이 되라고 하셨다.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내 꿈은 대통령이었고,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가고 졸업하고 하다가 이름표에 적힌 직업을 여러 번 바꿨다. 지금의 나는 대충 대기업 사원 정도라는 꿈을 갖고 있는 것도 같다. 내가 가지려고 한 꿈이 아니기에 '갖고 있는 것도 같다'라고 대충 얼버무리는 게 맞다. '적당한 꿈'을 꾸는 내게, 영화는 다소 가혹했다. '적당한 양심, 적당한 삶.' 그게 지금의 내가 바라는 바였다. 날 때부터 '적당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젠 그렇게 되어버렸다.


 노량진 바닥 어디서 감자뼈를 억지 덕지 분리하던 그날의 나는, '적당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음습한 노량진 바닥 한가운데서 츄리닝을 끌고 뼈해장국 집을 기웃거리고 책상에 앉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비 오는 티브이 화면에 비친 전 대통령의 마지막을 보았었다. 눈 앞에서 그 사람의 화려한 영광이 비 오는 그날의 풍경부터 거꾸로 흘러갔다. 대통령 임기를 떠올리다가, 당선되기 전의 그를 떠올렸다. 그때의 내 머릿속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내 머릿속을 지배했던 것은 나 스스로 '적당하지 않은 사람 되기' 뿐이었지, 다른 건 없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감자탕 국물과 뼛가루를 대충 닦고 나오면서, 당선 전의 그를 상상해보았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적당하지 않은 사람.'


 수년이 흐르고 다시 그 비 오는 날의 그 장면을 영화로 다시 보았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감자탕 국물이나 뼛가루를 손가락에 묻히지 않는다. 가볍게 <노무현입니다>라는 영화를 보고는 주변에 맛있어 보이는 양식집에 들어가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시키고, 포크질을 하다가 집에 돌아간다. 그리고는 아무 영화나 틀어놓고는 찝찝한 기분을 잊으려 한다.


 '적당한 양심, 적당한 삶.'

 '적당한 양심, 적당한 삶.'

 '적당한 양심, 적당한 삶.'


 나는 지금 대충 적당히 살고 있다. 적당히. 그냥 적당히만. 안고수비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남들이 내게 돌 던지며 했던 말을, 이제 내가 나를 위해 쓰고 있는 것이다. 안고수비. 안고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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