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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Jun 12. 2017

<악녀>는 왜 좋은 영화인가

다시보기 영화 <악녀>, 정병길 감독 김옥빈 주연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함.


 숙희(김옥빈이 연기한)는 왜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정병길 감독의 영화 <악녀>를 보면서 꾸준히 드는 생각은 그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왜 악녀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숙희는 악녀인가.


 나쁜 여자(惡女)라는데, 어디가 나쁜지 도통 모르겠던 것이다. 애를 사랑하고, 사랑한 남자를 그리워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가. 숙희의 죄목을 찾다가, 남는 것은 살인(殺人)이었다. 그렇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누가 그랬든, 나쁜 일이다. 나쁜 일. 많이도 죽였다. 진짜 악녀 같았다 처음엔.



 영화는 숙희가 건물 전체에 무더기로 쌓여있는 덩치들을 무쌍(학살, slayed)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메라 워크는 다분히 생소해서 관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마치 서든어택에 직접 뛰어든 듯한 일인칭 액션은 차고 넘치는 덩치들을 시원하게 베어버린다. 한 백 명 정도 생을 끊어놓았을까 점점 멀미가 난다고 생각될 때쯤에도 일인칭 액션은 끝나지 않는데, 화면에 학살하는 숙희가 거울을 보는 장면을 비추면서 액션은 드디어 일인칭을 놓아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 거울에 머리를 부딪히면서 숙희는, 이제 일인칭이 아닌 1.5인칭 액션을 보여준다. 일인칭은 아니지만, 3인칭도 아닌, 그렇다고 2인칭은 아니고. 카메라를 액션 주인공이 끌어당기듯이, 앵글은 액션 주인공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 액션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다수의, 정병길 감독의 액션 연출만으로도 충분히 표값은 한다고 할만하다. 대다수의 관중이 그래도 괜찮다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액션이다.



 하지만, 액션 이외에도 영화 <악녀>의 매력은 차고 넘친다. 영화로써 그 매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할만하다. 영화의 내용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배우들의 연기가 그러하다. 김옥빈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들어본 것이라고는, '된장녀 논란'이 전부다. 그녀의 연기에 대해서는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우연히도 김옥빈 주연의 드라마나 영화를 피해 다닌 것도 있겠다. 영화 <악녀>에서 김옥빈의 연기는, 악에 받친 여성의 한(恨)을 전체 풍경으로 그리면서도 무던한 역할을 어우러지게도 표현해냈다. 옆집에 이사 온 장현수(성준이 연기한)를 경계하는 김옥빈의 무던한 연기는 방금 전까지 한에 울부짖던 숙희를 금방 잊게 할 정도이다. 김옥빈의 코맹맹이 소리에서 나오는 담담한 모습이 정말 압권이다. 성준(장현수 역할의) 역시 충분히 사랑에 빠진 남자 역할을 표현해냈다. 느끼해서 죽을 지경으로. 신하균(이중상 역할의)은 내가 언제 고지전에서 그렇게 답답한 놈이었냐는 듯이, 시원시원하게 악당 역할을 해냈다. (신하균과 김옥빈의 '답답함'으로 묶인 인연은 고지전에서 쭉 이어지는 듯하다. 이번엔 김옥빈이 답답함을 담당한다.)


고지전의 신하균과 김옥빈


 영화로 들어가서, 스토리라인은 언뜻 진부해 보이기도 한다. 애와 남자 때문에 비참해진 여성의 삶이라고 간단히 요약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간단한 요약은 사실 간단한 것이 아니라 겉만 대충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극 중 인물 사이의 갈등 관계를 눈여겨보면 오히려 그 요약은 잊히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갈등 관계는 숙희(김옥빈이 연기한), 장현수(성준이 연기한), 한 부장(김서형이 연기한) 사이의 갈등이다. 이 셋은 숙희의 전남편이었던 이중상의 제거를 앞두고 큰 갈등을 맞이하는데, 셋은 소름 돋을 정도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숙희는 전남편을 제거하라는 한 부장의 업무지시가 무언가 불합리하고, 한 부장의 지시 탓에 변한 현수의 태도로 보아 프락치라고 생각한다. 현수는 숙희를 위해 숙희의 원수를 연변에 직접 가서 암살하고 숙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부장은 국정원 내에서 의심받는 숙희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기 위해 이중상 제거를 명령하는 등 동분서주이지만, 숙희의 반대되는 행동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이처럼 액션 아니어도, 이어지는 갈등 관계는 굳이 자극적인 화면이 아니어도 충분히 머릿속에 스릴을 가져다준다. 이중상과 숙희의 레스토랑에서의 대화도 정말 인상 깊다.



사랑하는 남자를 잃은 여자는 무대로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무대에는 그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있었어요. 남자 없이 살 수 없던 여자는 이제 이 남자가 사는 세상엔 살 수가 없어요.

 도돌이표처럼, 정병길 감독의 액션은 이어진다. 그리고 그 내용도 도돌이표처럼 이어지는 듯하다. 복수를 감행하는 숙희, 복수를 받는 숙희, 복수를 감행하는 숙희. 이것의 반복. 영화의 시작을 연상시키듯 건물을 통쩨로 휩쓸어버리는 액션은 다시 등장해 극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사랑하는 애와 남자를 잃은 여자의 한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것인가 하고 사람들은 극장을 뒤로하면서 불쌍한 숙희라고 한다. 분명 영화 <악녀(惡女)>를 보았는데도, 불쌍한 숙희라고 한다. 숙희는 불쌍한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못해도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을 죽였을 텐데도. 그렇다. 영화 <악녀>는 똑같은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다른 감상을 끌어낸다. 그것이 영화 <악녀>의 매력이다.

 '사람을 저렇게 죽이다니, 악녀가 분명해.'에서 '저렇게 기구하게 살다니,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겠네. 불쌍한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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