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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May 28. 2017

겟아웃, 아쉬운 스릴러

간단 리뷰, 곡성과는 다르다.

* 간단한 리뷰를 위해 줄거리 설명은 생략함.

* 심각한 스포일이 포함되어 있음.



 겟아웃이 외국판 곡성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극장가에서 들렸다. 당연히 그것은 겟아웃을 기대하게 했다. 기대가 큰 탓일까. 실재는 겟아웃의 요란한 명성과 달랐다.



 첫 번째, 영화 겟아웃은 곡성과 전혀 다르다. 곡성은 시골마을에 외지인이 온 것으로부터 마을 사람의 시점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반면, 겟아웃이 취하는 사건 전개 방식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겟아웃은 시골마을에 간 외지인의 시점에서 사건이 전개된다. 이것은 흔한 스릴러물의 사건 전개 방식이다. 2010년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이끼>, 2017년 개봉한 고어 버빈스키의 <더큐어> 역시 외지인의 시점에서 사건을 전개하였다. 그런 방식에서 스릴러물은 외지인인 주인공에게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이 점에서 겟아웃은 곡성과는 전혀 다르고, 방식에 있어서도 진부한 스릴러의 방식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겟아웃은 곡성만큼의 스릴을 주지 못하였다. 겟아웃과 곡성이 관객에게 스릴을 주는 방식은 여타 스릴러물과 다를 바 없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래도 곡성은 불안감을 조성하는 시각적 요소의 삽입, 극의 말미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메시지 전달을 통해 스릴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반면, 겟아웃은 정확한 스토리라인의 종착역으로 분주히, 당연스레 달리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백인들의 사회에 하나 둘 배치되어 있는, 넋 나간 듯 보이는 흑인 2,3명은 충분히 극이 보여주려는 시골마을의 속내를 보여주고 있었다. 갈 곳이 정해진 기차는 여행자에게 어떤 두근거리는 풍경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세 번째,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하다. 주인공인 크리스가 귀에 어떻게 솜을 넣었는지, 뇌를 교체하는 듯한 백인들의 만행에서 어떻게 뇌가 바뀐 흑인이 흑인의 자아와 백인의 자아를 동시에 갖고 있는지 등 크고 작은 개연성의 단절이 스릴에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겟아웃은 그렇게 곡성에서 멀어져 간다. 차라리 외국판 곡성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더 좋은 영화라고 보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겟아웃은 그 자체로는 나쁘지는 않은 스릴러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로,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다. 주인공 크리스 역할의 다니엘 칼루유야는 진부한 스토리라인에서도 넉넉히 관객에게 내적 불안을 전달한다. 특히,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의 세계에 갇힌 사슴의 역할을 표정에서 아주 잘 드러내었다. 다른 연기자들 역시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스토리의 약점을 메울만하였다. 마지막에, 플래시에 각성한 흑인 하인의 변화된 표정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 겟아웃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스릴러, 겟아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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