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낯선 현대미술, 문턱 낮추고 들어가기

by 와이아트


일주일 안에 친해지는 현대미술



요즘 전시장에 가면,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머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난해한 작품 앞에서도 이리저리 살펴보며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진지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 시선에는 호기심만큼이나 당혹감도 함께 깃들어 있다. 무엇을 표현하려는지, 혹은 애써 알아볼 수 없게 한 것은 아닌지 선뜻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낯섦이 우리를 물러서게 만들지만, 동시에 더 깊이 들여다보도록 자극한다.


불친절해 보이는 현대미술 작품들, 사실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다만 그 언어가 낯설어 당혹감이 먼저 찾아올 뿐이다. 그러나 그 불안은 곧 새로운 시선을 여는 열쇠가 된다.




현대미술이 낯선 이유


현대미술이 낯선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 먼저 현대미술은 ‘미술’보다 ‘철학’에 가깝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미술’은 풍경화나 초상화처럼 눈앞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옮겨놓은 그림으로 다가온다. 그저 귀로 듣고 느끼면 되는 ‘음악’처럼, ‘미술’ 또한 아름다움을 음미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이 틀을 깨고 ‘사유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무게를 둔다. 즉, ‘보는 미술’이 아니라, ‘생각하는 미술’이 된 것이다. 이처럼 현대미술이 눈으로 보고 곧장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어도 당혹감을 줄일 수 있다.


미술이 ‘철학’에 가까워진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이어지는 시대 구분에서 근대 시기까지의 미술은 재현(representation) 행위에 가까웠다. 재현은 눈앞에 보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을 말한다. 형체를 알아볼 수 있고, 주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작품들을 상상하면 된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미술은 철학적이고 추상적으로 변화기 시작한다. 이는 ‘사진’의 등장과도 연관된다. 사진은 세계를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이제 회화는 끝났다”는 급진적인 진단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 위기는 곧 전환점이 되었다. 회화는 단순 재현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과 존재의 의미, 그리고 추상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미술은 단순한 ‘보기의 기술’을 넘어 ‘사유의 실험실’이 된 것이다.


현대미술이 낯설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정치·경제·사회 분야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일반적인 영역에서는 이상적인 체계나 사상, 법, 기준 등이 먼저 마련되고, 그것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형태로 굴러간다. 가령 자본주의라는 체제와 이념이 있고, 그 틀 안에서 다양한 제도가 의견수렴을 거쳐 정착되는 식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는 예술가가 중심이 되어, 세계에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왔던 것들을 꺼내 우리 앞에 내놓는다. 작품 속 이미지들은 너무 낯설어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비평가나 이론가들의 해석을 거치면서 점차 이해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밟기는 하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는 충격을 주게 된다. 즉, 사회 영역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점점 더 명확히 보여준다면,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불현듯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현대미술을 낯설게 느낄 수밖에 없다.




낯섦이 주는 의미


낯섦이 주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낯섦은 먼저 사회적 변화의 촉매가 된다. 사회는 익숙한 제도와 관습 속에서 굴러가지만, 그러한 익숙함만으로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지 않는다. 수십 년 전 SF에 나온 장면이 지금은 현실화된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미술 작품 중에서도 미래를 예견하고 새로운 장면을 제시해주는 경우가 많다. 현대미술이 던지는 낯선 이미지와 실험적 형식은 사회가 놓치고 있던 감각과 문제를 가시화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연시되던 가치와 제도에 균열을 발견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재편할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 즉, 현대미술의 낯섦은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낯섦은 단순히 사회적 규범을 흔드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현대를 살아가며 종종 방향 상실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철학적 성찰의 빈자리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미술은 눈앞의 사물과 현상을 낯설게 만들어 ‘보는 행위’ 그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즉, 그것은 감각의 자동성을 깨뜨리고,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인식론적 실험이다. 이 지점에서 현대미술은 단순히 사회나 개인을 자극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 인식의 구조 자체를 흔드는 철학적 힘을 갖는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현대미술의 낯섦은 자기 성찰의 기회로 작용한다. 작품 앞에서의 낯선 경험은 불안과 당혹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바로 그 순간 자기 인식이 확장된다. 작품 앞에서 “왜 나는 이 이미지를 불편하게 느끼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감상자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마주한다. 현대미술은 감상자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림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해석하며 세계와 마주하게 만드는 구조를 지닌다. 따라서 낯섦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내적 성장을 이끄는 문이 된다.




일주일 안에 풀어보는 현대미술의 수수께끼


현대미술이 낯선 이유는 단순히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각의 틀을 깨뜨리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대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낯섦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안내한다.


《일주일 안에 친해지는 현대미술》은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한 꼭지씩 현대미술에 다가갈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먼저 월요일에는 ‘현대미술은 언제 시작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진의 등장 이후 미술이 어떻게 변화해갔는지를 추적하다 보면 현대미술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다. 화요일에는 ‘이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추상미술’의 진짜 의미를 다시 들여다본다. 이 챕터를 읽고 나면 어느샌가 구상미술보다 추상미술에 빠져드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수요일에는 작품보다 작가가 더 앞에 서게 된 시대, 스타 작가가 탄생한 비밀을 추적한다. 꼭 알아야 할 현대미술가들을 살펴보면서 왜 이들이 현대미술을 대표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사회적·문화적 조건 속에서 ‘예술가’라는 존재가 작품보다 더 큰 힘을 얻게 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목요일에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전환을 따라가며, 예술이 어떻게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어왔는지를 탐구한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용어지만, 막상 설명하려면 쉽지 않다. 이 장에서는 그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의 구체적 사례들을 살펴본다. 금요일에는 ‘현대미술’과 ‘동시대미술’의 차이를 구분하며, 왜 지금 이 구분이 중요한지 확인한다. 이 챕터를 읽고 나면 동시대미술에 나타나는 특성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토요일에는 작품을 이해하기에 앞서, 먼저 몸이 반응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는 ‘정동(Affect)’의 차원에서 동시대미술을 읽는 방법이다. 정동은 감정과 유사하지만, 신체의 감각과 연결된 무의식적인 반응을 뜻한다. 일요일에는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현대미술로 시선을 돌려, 한국 작가들이 왜 국제무대에서 각광받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부록에서는 “이 그림은 왜 비쌀까?”라는 질문을 통해 미술시장의 비밀을 파헤친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말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제는 나도 현대미술을 아는 사람이다”라는 자신감과 함께, 미술을 통해 세상을 읽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미술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술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감각을 길러주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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