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일본어 시험을 보는데 아는 문제가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일상적인 교육시간에 집중을 못하고 졸기나 하고 있었으니 아는 문제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일본어 학원을 등록해서 부족한 기초를 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초 일본어 과정 수강을 등록하고 저녁반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노력한 부분이 있기도 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일본과 일본어에 대한 관심으로 자발적인 흥미를 느껴서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역시 공부는 적절한 동기가 부여되어야 하고 흥미를 느껴야 발전을 한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1달간 일본어 기초가 얼마나 잡혔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름대로 학습을 위한 자발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나 스스로를 이해를 했다.
조금은 기특하지 않은가?
고3 시절부터 나는 운동화를 사서 신어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나한테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각각 1명씩 있는데 여동생은 2살, 1학년이 차이가 나고 남동생과는 5살, 4학년 차이가 난다. 동생들이 어릴 적부터 똑똑했는지 7살에 학교를 들어갔고 나는 8살에 초교를 입학해서 그리 되었다. 당시 나도 7살에 학교를 보내주지 그랬소? 하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럴 만한 총기는 없었나 보더라.
하여간 남동생이 중2부터 농구선수로 활약을 하면서 당시 유명 브랜드의 농구화를 신고 1-2달 연습을 하다가 새 운동화로 갈아 신었는데 아직 쓸 만한 농구화들이 집에서 나뒹굴러 다녔다.
당시 유명 브랜드는 상당한 고가였으며 지금이야 너무 흔하게 아이들이 신고 다니지만 당시에는 큰 맘을 먹고 장만하는 수준의 부담감이 있었다.
집에 중고 농구화가 쌓일 무렵 나는 고3이 되면서 고2 두발 자율화에 이은 교복자율화가 시작되었다. 고2 시절로 기억되는 태권도 선생님 댁 이사지원 활동에서 얻은 선생님의 중고 구두를 교복에 맞춰 신었으며 머리는 장발로 참으로 언발란스의 극치였으나 그래도 나름 볼 만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하루는 남동생이 안 신는 농구화를 신고 학교를 갔는데 신발이 커서 그런지 편안함이 느껴졌고 신발이 크다 보니 신발 속 내 발가락들이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다가 입사 후 구두를 신으면서 반항들을 하기 시작한다.
사이가 최대한 벌어져 있던 발가락들이 상대적으로 좁은 구두 속에서 밀집대형으로 재배열되자 발가락들의 마찰 부위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일부러 신축성이 있는 캐주얼식 정장용 구두를 샀으니 망정이지 하드 소재의 구두를 장만했더라면 불쌍한 발가락들이 얼마나 고초를 겪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죄 많은 나는 교육과정에서 부적응 교육생으로 인식되어 갔고 죄 없는 내 발가락들은 물집으로 고생하던 그 시절에 하마터면 퇴사를 할 뻔한 첫 번째 위기가 찾아온다.
그렇게 위태롭게 교육기간을 연명하던 중 교관들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상부에 보고를 했다고 한다. 이를 테면 ‘교육성적 미달과 태도 불량’의 죄명으로 보고가 되었을 것 같은데.
교육이 1달 남은 어느 날 오후에 여지없이 졸려서 꾸벅꾸벅 졸다가 담당 교관이 나에게 아예 편히 자라고 독려를 하길래 엎드려 잠을 잤었던 적도 있었다. 그날 오후도 그렇게 졸았는데 교관이 나가면서 쉬는 시간에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사무실에 갔더니 앞으로 소속 부서장으로 모시게 될 팀장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잠이 확 달아났다.
“교관들의 보고를 받아보니 교육태도가 불성실하고 교육성적도 바닥인데 혹시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고마운 충고를 해 주신다.
그렇지만 이게 웬 말인가? 나에게 보따리를 싸서 제 발로 나가 달라는 의미가 아닌가?
사태가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영락없이 자칫하면 퇴사를 해야 할 상황에 맞닥뜨려진 것이다. 나에게 내일까지 시간을 줄 테니 잘 생각해보고 답변을 달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송구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와 교육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가 없었다. 터벅터벅 들어가서 다음 수업을 듣는데 전혀 졸리지가 않았다.
옆에 있던 여 짝꿍이 나에게 “오늘은 어인 일로 졸지 않는다”며 덕담을 날린다.
그렇다. 부장님과의 면담은 그 날 오후의 심각한 상황인식과 나의 불성실한 교육태도에 레드카드를 꺼내 든 심판처럼 보였다. 나는 착시현상으로 옐로카드인지 레드카드인지 혼동이 되었다. 구두로 전달하는 내용은 옐로카드인데 그 속에 깔린 정서는 분명 레드카드였다.
오후 교육과정을 듣는 둥 마는 둥. 부장님의 엄중한 목소리만 귓가를 맴돌았다.
“심사숙고해서 내일까지 입장을 정리하여 알려 달라.”
집으로 와 보니 선배가 먼저 와 있었다.
나와의 오후 면담 결과를 아마도 부장님이 선배한테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선배가 평소 마시지 않는 술 한 잔을 하자면 맥주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직감적으로 느낌이 싸늘했다. 선배한테 볼 면목이 없었다.
선배가 맥주를 따라주는데 미안한 감정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장님 면담과는 다른 사나이들의 감정이 술을 따르며 술을 받으며 전해졌다.
“그래. 면담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할 작정이야?”
“…”
“그래서? 여기서 정말 그만 둘 거야?”
“아니에요. 선배. 미안해요. 여기서 이렇게 그만둘 수는 없어요. 내일 부장님께 다시 기회를 달라고 잘 말씀을 드릴게요.”
솔직히 이렇게 사회인의 첫 발을 불명예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부장님을 다시 찾아갔다.
“부장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회 경험이 부족하여 경솔하게 행동한 부분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물러나기에는 저 자신도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므로 남은 교육일정 동안 제가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만약 수료 시점까지도 제가 여전히 부족하거나 부적격자라고 판단하시면 저 스스로 물러나겠습니다.”
이 날부터 달라진 내 모습에 담당 교관과 선배도 놀랐겠지만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더 놀라웠다.
오후가 되어도 전혀 졸리지 않았으며 다시 집중력이 생겼고 맑은 정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마치 짙은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有一天考日语考试,知道的问题很少。
现在回想起来,当时在日常教育时间无法集中精神打瞌睡,所以当然没有知道的问题。
后来,我终于想到了应该注册日语补习班,抓住不足的基础。
注册基础日语课程后,开始上晚班,现在回想起来,也有自己努力的部分。
后来,随着年龄的增长,由于对日本和日语的关心,自发地产生了兴趣,所以学习了,果然学习要赋予适当的动机,只有产生兴趣才能发展的事实再次得到了确认。
不知道当时1个月期间日语基础打好了多少。
只是作为自己为了学习的自发性努力的一环,我自己也理解了。
不觉得有点难能可贵吗?
从高三开始,我就没买过运动鞋穿。
大家应该很好奇其原因。 我有妹妹和弟弟各1名,妹妹相差2岁和1年级,和弟弟相差5岁和4年级。 弟弟们可能从小就很聪明,7岁进了学校,我8岁上了小学。 当时我也曾对妈妈发牢骚说:"7岁就送我上学多好?"
总之,弟弟从初二开始作为篮球选手活动,当时穿着著名品牌的篮球鞋练习了1-2个月,换上了新的运动鞋,但家里还到处散落着可用的篮球鞋。
当时著名品牌的价格相当高,现在孩子们穿的太普遍了,但当时压力非常大,甚至达到了下定决心购买的程度。
家里二手篮球鞋堆积的时候,我上了高三,继高二头发自律化之后,又开始了校服自律化。 高二时期,在跆拳道老师家搬家支援活动中,老师的二手皮鞋搭配校服穿,头发是长发,虽然非常不对称,但还算值得一看。
有一天,我穿着弟弟不穿的篮球鞋去了学校,可能是因为鞋子大,感觉很舒服,鞋子大后,鞋里的脚趾都享受着自由的生活,进入公司后开始穿着皮鞋反抗。
最大限度地拉开距离的脚趾在相对狭窄的皮鞋中重新排列成密集队形后,脚趾的摩擦部位开始起水泡。 幸亏特意买了有弹性的休闲正装皮鞋,如果买了硬材质的皮鞋,可怜的脚趾头们会遭受多大的痛苦,这是显而易见的。
那么有罪的我在教育过程中被认为是不适应的教育生,无辜的我的脚趾在因水泡而受苦的那个时期差点辞职的第一个危机即将到来。
据说,在这样岌岌可危地维持教育期间,教官们向上级报告了有关我的故事。 例如,您可能被报告为"教育成绩不达标和态度不良"的罪名。
教育还剩1个月的某一天下午,因为困得点头打瞌睡,负责教官鼓励我睡得舒服,所以就趴着睡了。 那天下午也那么打瞌睡,教官出去后让我在休息时间到办公室。 我什么都没想就去了办公室,发现以后要请到所属部门担任的组长在等我。 觉一下子消失了。
"接到教官们的报告后发现,教育态度不诚实,教育成绩也很低,最好找找其他工作。"
可这又是何等闲言碎语。 不就是让我打包好东西,自己走出去的意思吗?
事态严重地发展着。 毫无疑问,稍有不慎就会面临辞职的情况。 他说到明天为止给我时间,请仔细考虑后再给我答复。
听到这个故事后,怀着愧疚的心情走出办公室,走向教育场的脚步不可能轻松。 慌慌张张地进去听下一节课,一点都不困。
旁边的女同学对我说:"今天因为什么事不打瞌睡。"
是的,和部长的面谈,看起来像是裁判,对当天下午严峻形势的认识,以及我不诚实的教育态度,亮出了红牌。 我因为错觉弄混了黄牌还是红牌。 口头传达的内容是黄牌,但其中隐藏的情绪分明是红牌。
下午的教育课程听不听。 只有部长严肃的声音在耳边回荡。
"请深思熟虑后在明天之前整理好立场告诉我。"
回家一看学长先来了。
下午和我面谈的结果部长好像跟前辈说了。
学长要喝一杯平时不喝的酒,就带我去啤酒屋。
凭直觉,感觉很冷淡。 我没脸见学长。
前辈倒啤酒时,他感到抱歉,脸上火辣辣的。
与部长面谈不同,男子汉们的感情是倒酒喝酒传达的。
"是啊,听说面谈的事了,打算怎么办?"
“…”
"所以呢?你真的要放弃了吗?"
"不是的,前辈。 对不起。 不能就此罢休。 明天我会好好跟部长说再给我一次机会的。"
说实话,我不想就这样以不光彩的方式结束社会人的第一步。
第二天又去找了部长。
"部长,是我考虑不周。 缺乏社会经验,正在反省轻率的行为。 以这个样子退出,我自己也不能原谅。 因为还有时间,所以剩下的教育日程请关注我努力的样子,如果到结业为止仍然认为我不足或不合格的话,我会主动辞职的。"
从当天开始,我的变化让负责教官和前辈也大吃一惊,但我比任何人都惊讶。
到了下午,我一点都不困,重新产生了集中力,以清醒的精神回来了。
感觉就像浓雾散去了一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