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延吉 故事 5

by 제이킴

드림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행사 사장이 점심시간에 같이 보자고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식당에 갔더니 영화배우 같은 남성 한 분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 3명의 만남은 훗날에도 이어지는 상징적인 자리가 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연길로 나보다 1년 반 앞서 왔다고 하는데 실제 나이도 큰 형님 뻘이었고 여러모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연길에 오는 과정이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도 잘하고 유쾌한 성격이었다.

여행사 사장 덕분에 좋은 분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에도 개인적이든 업무적이든 연길에서 큰 보살핌을 받았기에 그 고마운 인연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특히 형수님은 남편 동료나 후배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낮이든 밤이든 늦게까지 술 먹어, 밥 먹어 거의 매주 새벽까지 고스톱이나 카드놀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웃는 낯으로 대해 주셨고 명절이 되면 타국에서 고생한다고 불러서 준비한 음식으로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해 주신 누나 같은 분이다.

이러한 고마운 인연은 훗날 다시 한국에서 만남으로 이어진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 여행사 사장도 코로나 영향으로 한국에서 장기 체류를 하다가 3인이 다시 서울에서 만나 연길에서의 첫 만남을 회상했는데 참으로 인연은 오묘한 것이다.



이 국장은 외모를 보자면 손지창을 꽤나 닮았고 체형이 늘씬하고 양복 핏이 좋은 멋쟁이.

유 회장님이 미국에서 알던 지인인데 연길에 먼저 온 회장님의 초청으로 연길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유 회장님과 이 국장은 연길 생활을 관통하는 동지처럼 형제처럼 지내게 된다. 친구를 따라서 강남에 간다더니 회장님을 따라 연길에 온 인연이 참으로 아름답다.


IT밸리 김 대표는 상남자 스타일의 첫인상이지만 속내는 섬세한 연길의 대표 기린아.

한중 교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향후 남한/북한/중국 등 동북지역에서 3국 또는 러시아가 포함된 4국의 경제협력 교류가 활발해지면 더 큰 역할이 기대된다.


그룹 계열사 총괄 매니저로 봇짱이 잘 맞던 ‘양 선수’가 있었다.

판단이 명석하고 ROTC 장교다운 절도와 빠른 판단력이 돋보였던 시스템 전문가 이기도 하다.


관할 지역이 연길 근처 도문에 있었다고 일명 ‘도문이’도 함께 연길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어 냈다. 음주, 골프, 당구, 카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푸근한 친구이다.


보통 토요일 점심에 만나서 골프하고 샤워 후 가벼운 음주로 마무리가 되면 그다음 회장님 집이나 이 국장 집으로 무대를 옮겨서 고스톱이나 카드를 즐긴다.

무거운 음주가 있었다면 회장님이 경영하는 샌프란시스코 바에서 한 잔을 더 하던지 아니면 음주 고스톱이나 음주 카드를 즐겼는데 이것도 참 재미가 있었다.

어떤 날은 일상의 피곤함을 달래려고 소금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도 했는데 소금의 짠맛도 가끔은 필요하다.

음주가무나 여흥이 많은 우리들이라서 과음에 대한 가족들의 걱정만 안심을 시킬 수 있다면 다른 일들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당시에는 이 조합들로 뭘 해도, 뭘 하자고 해도 즐거움이 가득했고 상상 그 이상으로 호흡이 잘 맞았으니 어디에서든 거침없는 질주가 가능했다.

훌륭한 멤버가 어우러진 내 인생의 드림팀이었다.


전주식당


큰 집 사촌 형이 연길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길에 사업 계획이 있으니 얼굴을 보자고 하신다.

며칠 후 정말 연길에 오셨는데 연길에 식당을 계획하고 오신 것이었고 나는 형의 결정을 지켜보며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름 연구를 했다.

맛이 좋다면 손님들과 자주 들려서 식사를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약 한 달 후에 개업을 했을 때 나는 협력 대리점 사장과 직원들을 초청하여 지점 사은행사를 식당에서 진행했다. 약 40-50명 정도가 왔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점차 주변인들에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콩나물국밥 맛이 기가 막혔다.

연길 술 꾼들 사이에서 맛 집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회사 손님들이나 지인들과 점심 먹으러 많이 들렸던 추억의 식당이다.

훗날 고교 동창회 임원단들이 연길에 연수팀을 구성하여 오고 갈 때도 식당에서 전주 음식으로 만찬을 즐기며 입 맛을 찾아준 적이 있었고 친구들이 놀러 오면 필수코스로 들리던 연길 내 한국식당 맛 집 아지트였다.

주방장 형님은 사촌 형과 동창이며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음식 솜씨가 좋았던 분이다.

지금도 가끔 식당에서 먹던 맛깔스러운 지역 음식들이 생각난다.

특히 콩나물국밥이 그립다.



梦之队


刚上任没多久,旅行社老板说午饭时间一起看。

怀着感激的心情去了餐厅,发现和一位像电影演员一样的男性一起等着我。

当天3人的会面成为了日后延续的象征性场合。

据说在美国加利福尼亚演技比我早一年半,但实际年龄也是大哥辈,在很多方面都相通。 听着一起吃饭的故事,觉得从韩国再次来到美国延吉的过程像一部电影。 酒量也很好,性格很愉快。

我觉得多亏了旅行社的社长,我结识了好人,之后无论是个人还是业务上,在演技上都得到了很大的照顾,所以再次感谢这份感激的缘分。

特别是,每当丈夫同事或后辈们来到家里,无论白天还是晚上,都会喝酒,吃饭,几乎每周凌晨都会玩纸牌或纸牌游戏,但嫂子总是笑脸相迎,每到过节的时候,都会叫她在异国他乡辛苦,用准备的食物来感受温暖,像姐姐一样的人。

这种值得感谢的缘分日后会在韩国再次见面。

更神奇的是,那家旅行社的社长也受新型冠状病毒的影响,在韩国长期滞留,三人再次在首尔见面,回忆起在延吉的初次见面,缘分真是奥妙。

李局长从外貌上看很像孙志昌,体型修长,西服版型好的帅哥。

刘会长是在美国认识的熟人,应先来到延吉的会长的邀请,在延吉安营扎寨。 此后,刘会长和李局长将像贯通延吉生活的同志一样像兄弟一样相处。 听说跟着朋友去江南,跟着会长来延吉的缘分真美。

IT谷的金代表虽然是纯爷们风格的第一印象,但是内心却很细腻,是延吉的代表长颈鹿。

担任韩中交流的一个轴心,今后在韩国/北韩/中国等东北地区,包括三国或俄罗斯在内的4国的经济合作交流活跃起来,期待发挥更大的作用。

作为集团子公司的总管经纪人,有一位"梁选手"很合得来。

他也是判断清晰,ROTC军官的盗窃和快速判断力突出的系统专家。

管辖地区在延吉附近的道门,又名"道门"也一起在延吉制造了很多回忆。 在饮酒、高尔夫、台球、信用卡等多个领域也能一起合作的温暖的朋友。

一般在周六中午见面打高尔夫球,洗澡后喝点小酒,然后去会长家或李局长家玩牌。

如果说有沉重的饮酒,那么在会长经营的旧金山酒吧再喝一杯,或者享受饮酒Go-stop或饮酒卡,这也很有意思。

有的时候为了缓解日常的疲劳,去做了盐按摩,盐的咸味有时也需要。

我们有很多饮酒歌舞和娱乐,只要能让家人放心饮酒过量,其他事情就不会有问题。

当时,无论用这些组合做什么,做什么,都充满了快乐,而且配合得比想象中还要默契,无论在哪里,都可以毫无顾忌地奔跑。

这是一支由优秀成员组成的我人生的梦之队。


全州食堂


接到长房的表哥要来延吉的通知。

听说延吉有工作计划,要见面。

几天后真的来到了延吉,在延吉计划了餐厅,我看着哥哥的决定,研究我能帮上什么忙。

如果味道好,就经常和客人一起去吃饭吧。

实际上,大约一个月后开业时,我邀请合作代理商老板和员工在餐厅举办分行的答谢活动。 估计约有40-50人来过。

逐渐在周围人口口相传,最重要的是黄豆芽汤饭的味道绝了。

延吉酒徒之间还传出了美食店的消息。

这里是经常与公司客人或熟人一起吃午饭的回忆中的餐厅。

后来,高中同学会干部团在延吉组成研修组来来往往时,也曾在餐厅享受全州美食,寻找过口味,是朋友们来玩时必去的延吉韩国餐厅的基地。

厨师长哥哥和表哥是同学,也是厨艺多种多样的人。

现在偶尔也会想起在餐厅里吃过的美味的地区食物。

尤其想念黄豆芽汤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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