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행사 사장이 점심시간에 같이 보자고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식당에 갔더니 영화배우 같은 남성 한 분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 3명의 만남은 훗날에도 이어지는 상징적인 자리가 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연길로 나보다 1년 반 앞서 왔다고 하는데 실제 나이도 큰 형님 뻘이었고 여러모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연길에 오는 과정이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도 잘하고 유쾌한 성격이었다.
여행사 사장 덕분에 좋은 분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에도 개인적이든 업무적이든 연길에서 큰 보살핌을 받았기에 그 고마운 인연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특히 형수님은 남편 동료나 후배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낮이든 밤이든 늦게까지 술 먹어, 밥 먹어 거의 매주 새벽까지 고스톱이나 카드놀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웃는 낯으로 대해 주셨고 명절이 되면 타국에서 고생한다고 불러서 준비한 음식으로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해 주신 누나 같은 분이다.
이러한 고마운 인연은 훗날 다시 한국에서 만남으로 이어진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 여행사 사장도 코로나 영향으로 한국에서 장기 체류를 하다가 3인이 다시 서울에서 만나 연길에서의 첫 만남을 회상했는데 참으로 인연은 오묘한 것이다.
이 국장은 외모를 보자면 손지창을 꽤나 닮았고 체형이 늘씬하고 양복 핏이 좋은 멋쟁이.
유 회장님이 미국에서 알던 지인인데 연길에 먼저 온 회장님의 초청으로 연길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유 회장님과 이 국장은 연길 생활을 관통하는 동지처럼 형제처럼 지내게 된다. 친구를 따라서 강남에 간다더니 회장님을 따라 연길에 온 인연이 참으로 아름답다.
IT밸리 김 대표는 상남자 스타일의 첫인상이지만 속내는 섬세한 연길의 대표 기린아.
한중 교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향후 남한/북한/중국 등 동북지역에서 3국 또는 러시아가 포함된 4국의 경제협력 교류가 활발해지면 더 큰 역할이 기대된다.
그룹 계열사 총괄 매니저로 봇짱이 잘 맞던 ‘양 선수’가 있었다.
판단이 명석하고 ROTC 장교다운 절도와 빠른 판단력이 돋보였던 시스템 전문가 이기도 하다.
관할 지역이 연길 근처 도문에 있었다고 일명 ‘도문이’도 함께 연길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어 냈다. 음주, 골프, 당구, 카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푸근한 친구이다.
보통 토요일 점심에 만나서 골프하고 샤워 후 가벼운 음주로 마무리가 되면 그다음 회장님 집이나 이 국장 집으로 무대를 옮겨서 고스톱이나 카드를 즐긴다.
무거운 음주가 있었다면 회장님이 경영하는 샌프란시스코 바에서 한 잔을 더 하던지 아니면 음주 고스톱이나 음주 카드를 즐겼는데 이것도 참 재미가 있었다.
어떤 날은 일상의 피곤함을 달래려고 소금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도 했는데 소금의 짠맛도 가끔은 필요하다.
음주가무나 여흥이 많은 우리들이라서 과음에 대한 가족들의 걱정만 안심을 시킬 수 있다면 다른 일들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당시에는 이 조합들로 뭘 해도, 뭘 하자고 해도 즐거움이 가득했고 상상 그 이상으로 호흡이 잘 맞았으니 어디에서든 거침없는 질주가 가능했다.
훌륭한 멤버가 어우러진 내 인생의 드림팀이었다.
큰 집 사촌 형이 연길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길에 사업 계획이 있으니 얼굴을 보자고 하신다.
며칠 후 정말 연길에 오셨는데 연길에 식당을 계획하고 오신 것이었고 나는 형의 결정을 지켜보며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름 연구를 했다.
맛이 좋다면 손님들과 자주 들려서 식사를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약 한 달 후에 개업을 했을 때 나는 협력 대리점 사장과 직원들을 초청하여 지점 사은행사를 식당에서 진행했다. 약 40-50명 정도가 왔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점차 주변인들에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콩나물국밥 맛이 기가 막혔다.
연길 술 꾼들 사이에서 맛 집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회사 손님들이나 지인들과 점심 먹으러 많이 들렸던 추억의 식당이다.
훗날 고교 동창회 임원단들이 연길에 연수팀을 구성하여 오고 갈 때도 식당에서 전주 음식으로 만찬을 즐기며 입 맛을 찾아준 적이 있었고 친구들이 놀러 오면 필수코스로 들리던 연길 내 한국식당 맛 집 아지트였다.
주방장 형님은 사촌 형과 동창이며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음식 솜씨가 좋았던 분이다.
지금도 가끔 식당에서 먹던 맛깔스러운 지역 음식들이 생각난다.
특히 콩나물국밥이 그립다.
刚上任没多久,旅行社老板说午饭时间一起看。
怀着感激的心情去了餐厅,发现和一位像电影演员一样的男性一起等着我。
当天3人的会面成为了日后延续的象征性场合。
据说在美国加利福尼亚演技比我早一年半,但实际年龄也是大哥辈,在很多方面都相通。 听着一起吃饭的故事,觉得从韩国再次来到美国延吉的过程像一部电影。 酒量也很好,性格很愉快。
我觉得多亏了旅行社的社长,我结识了好人,之后无论是个人还是业务上,在演技上都得到了很大的照顾,所以再次感谢这份感激的缘分。
特别是,每当丈夫同事或后辈们来到家里,无论白天还是晚上,都会喝酒,吃饭,几乎每周凌晨都会玩纸牌或纸牌游戏,但嫂子总是笑脸相迎,每到过节的时候,都会叫她在异国他乡辛苦,用准备的食物来感受温暖,像姐姐一样的人。
这种值得感谢的缘分日后会在韩国再次见面。
更神奇的是,那家旅行社的社长也受新型冠状病毒的影响,在韩国长期滞留,三人再次在首尔见面,回忆起在延吉的初次见面,缘分真是奥妙。
李局长从外貌上看很像孙志昌,体型修长,西服版型好的帅哥。
刘会长是在美国认识的熟人,应先来到延吉的会长的邀请,在延吉安营扎寨。 此后,刘会长和李局长将像贯通延吉生活的同志一样像兄弟一样相处。 听说跟着朋友去江南,跟着会长来延吉的缘分真美。
IT谷的金代表虽然是纯爷们风格的第一印象,但是内心却很细腻,是延吉的代表长颈鹿。
担任韩中交流的一个轴心,今后在韩国/北韩/中国等东北地区,包括三国或俄罗斯在内的4国的经济合作交流活跃起来,期待发挥更大的作用。
作为集团子公司的总管经纪人,有一位"梁选手"很合得来。
他也是判断清晰,ROTC军官的盗窃和快速判断力突出的系统专家。
管辖地区在延吉附近的道门,又名"道门"也一起在延吉制造了很多回忆。 在饮酒、高尔夫、台球、信用卡等多个领域也能一起合作的温暖的朋友。
一般在周六中午见面打高尔夫球,洗澡后喝点小酒,然后去会长家或李局长家玩牌。
如果说有沉重的饮酒,那么在会长经营的旧金山酒吧再喝一杯,或者享受饮酒Go-stop或饮酒卡,这也很有意思。
有的时候为了缓解日常的疲劳,去做了盐按摩,盐的咸味有时也需要。
我们有很多饮酒歌舞和娱乐,只要能让家人放心饮酒过量,其他事情就不会有问题。
当时,无论用这些组合做什么,做什么,都充满了快乐,而且配合得比想象中还要默契,无论在哪里,都可以毫无顾忌地奔跑。
这是一支由优秀成员组成的我人生的梦之队。
接到长房的表哥要来延吉的通知。
听说延吉有工作计划,要见面。
几天后真的来到了延吉,在延吉计划了餐厅,我看着哥哥的决定,研究我能帮上什么忙。
如果味道好,就经常和客人一起去吃饭吧。
实际上,大约一个月后开业时,我邀请合作代理商老板和员工在餐厅举办分行的答谢活动。 估计约有40-50人来过。
逐渐在周围人口口相传,最重要的是黄豆芽汤饭的味道绝了。
延吉酒徒之间还传出了美食店的消息。
这里是经常与公司客人或熟人一起吃午饭的回忆中的餐厅。
后来,高中同学会干部团在延吉组成研修组来来往往时,也曾在餐厅享受全州美食,寻找过口味,是朋友们来玩时必去的延吉韩国餐厅的基地。
厨师长哥哥和表哥是同学,也是厨艺多种多样的人。
现在偶尔也会想起在餐厅里吃过的美味的地区食物。
尤其想念黄豆芽汤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