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대학 이야기 6

by 제이킴

호프집 탈주사건


기말고사가 끝나갈 무렵 어느 무더운 여름 오후.

과 동기가 번개를 제안하며 자기 한 턱을 쏠 테니 따라오라는 것이다.

시험도 막바지고 하니까 통닭과 생맥주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당시 통닭은 학생들에게 나름 귀한 안주의 상징이었고 생맥주도 같은 범주에 속했다.

지금이야 먹거리가 흔해서 통닭을 한 마리씩 먹기도 하는데 당시의 정서로 돌이켜 보자면 그리 쉽게 한 통닭씩 하기에는 시대의 여건이 많이 달랐다.

하여간 우리들 몇 명이 덕분에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며 즐거움으로 따라나섰다.

교정을 가로질러 학교 앞 근처 골목에 통닭을 잘하는 생맥주 집이 있다고 누군가 앞장을 섰고 우리는 곧 마시게 될 시원한 생맥주와 노랗게 잘 튀겨질 후라이드 치킨을 상상하며 뒤따라 호프집에 들어섰다.

이른 오후라 손님은 우리들 밖에 없었다. 두 테이블을 나란하게 붙여 놓고 통닭과 생맥주를 씩씩하게 시키고 생맥주가 상징하는 특유의 젊음 문화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통닭이라는 것이 잘 튀겨지면 향기로 반은 접어두고 들어간다. 일단 술과 닭이 있으면 잔치스럽다.

손님도 우리 밖에 없었으니 주인아주머니도 여유롭게 닭을 정성껏 튀겨냈을 것이고 우리도 이미 곧 준비될 통닭을 기대하며 맘껏 생맥주를 즐겼다. 적당한 시점으로 한 잔이 비워질 때 올라온 황금빛 통닭 두 마리가 엉거주춤한 양반다리 자세를 풀고 접시 위에서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한희작 만화가의 극화를 보면 접시 위에 놓인 통닭은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되기도 했었다.


시원한 생맥주 한 모금과 야들야들한 통닭은 참으로 잘 어울리는 궁합이었다. 나게 마셨고 맛나게 먹었다.

통닭 나오기 전에 한 잔 그리고 통닭이 나왔다고 한 잔을 더 마신 것 같다.

상대적으로 음주에 소극적인 친구들의 잔량을 자신들의 호프 잔으로 재고 이동을 시키면서 잔술이 없도록 말끔하게 정리를 하기 시작하자 과 동기가 우리에게 먼저 나가 있으면 자신이 처리하고 가겠다고 한다.

우리는 가뜩이나 번개 제안에 고마움을 느끼며 덕분에 맛난 통닭과 생맥주를 즐겼으니 같이 나가자고 카운터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과 동기는 현금이 부족했는지 카운터 아주머니에게 내일 와서 계산을 하겠다며 학생증을 내밀었다. 당시 학교 주변의 술집은 학생증으로 외상이 가능했고 어떤 경우에는 시계를 맡기는 경우가 흔한 시절이었다. 나름 학교 부근에서는 학생증이 신용보증 후불카드 역할을 해내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주인아주머니가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현금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우리대로 과 동기는 과 동기대로 난감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과 동기의 제안으로 맥주와 통닭을 잘 먹기는 했으나 사실 다 같은 학생 처지에 홀로 부담하기에는 과중한 수준일 수도 있겠다며 자발적인 ‘붐빠이(분할 부담)’에 동참할 수 있었던 열린 마음으로 아주머니에게 다시 다가가서 제안을 했다.

“아주머니. 우리들이 학생증을 몇 개 더 맡길 테니 안심하세요.”

“안돼요. 학생. 우리 가게는 외상 술 안돼.”

학생증을 주섬주섬 꺼내어 카운터에 올려놓고 아주머니 처분을 기다리는데 별로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입구 쪽 칸막이가 쳐진 카운터 안으로 계산하러 들어간 아주머니는 외상거래의 불가함을 재차 강조한 상황이므로 답답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다시 제안하기를 그럼 시계를 맡기자고 하면서 하나 둘 시계를 풀어서 카운터 위에 펼쳐 놓았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우리들의 제안에 응할 마음을 보이지 않았다.

학생증과 시계를 각각 걷어서 우리들의 히든카드를 이미 다 보여 드렸으니 마지막 확인 패를 쥔 아주머니가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더 이상 협상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공감한 우리는 카운터 놓인 학생증과 시계를 걷어 들였고 개인별 회수가 완료된 그 찰나의 순간에 묘한 눈빛이 서로 교환되더니 입구 쪽 친구가 먼저 쏜살같이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엉겁결에 카운터에 삥 둘러서 있던 친구들도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순식간에 밖으로 뛰어나갔다. 정말 다 들 대단한 속도로 호프집을 빠져나갔다.

뒤통수에 멀어지는 아주머니의 당황스러운 외침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학생. 시계라도 놓고 가. 학생들. 시계라도..."


아주머니가 카운터 안을 돌아 나와 우리들을 잡으러 뛰어나온다고 해도 우리가 잡힐 확률은 제로였지만 이미 탈주의 선을 넘은 우리는 전력을 다해서 학교 교정으로 달아났고 누가 어디로 갔는지 확인할 여유도 없이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럼 우리는 어떤 느낌으로 도망쳤을까?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융통성으로 학생증을 거두었다면 탈주극은 처음부터 발생할 가능성이 없었다.

주인의 강경한 현금 요구로 우리들이 제시한 이상적인 조건들이 일시에 함몰되는 순간 우리는 현실적인 탈주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각자도생을 위하여 도망쳐 나온 후 다시 교정에 모인 우리들은 거친 숨을 눌러가며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생맥주와 통닭으로 행복했던 그 여름날 탈주극은 두고두고 전설이 되었고 우리들의 입과 가슴에 매년 그 여름이 돌아오면 다시 생맥주와 통닭을 찾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알았다. 치맥이 훗날 젊은 날의 대세로 떠 오를 것이라고.



啤酒屋逃逸案


期末考试快结束时,一个炎热的夏天的午后。

也就是说,动机提议闪电,并发射自己的请客,请跟我来。

考试也接近尾声,所以说一起去吃整鸡和扎啤。

当时整鸡是学生们比较珍贵的下酒菜的象征,生啤也属于同一范畴。

现在因为小吃很常见,所以偶尔会吃一只整鸡,回顾当时的情绪,时代条件非常不同。

反正我们几个高兴地说:"托你的福,享受到了好事。"

有人带头穿过校园,在学校前面附近的胡同里有一家擅长整鸡的生啤店,我们想象着即将喝的凉爽的生啤和炸得黄澄澄的原味炸鸡,跟着进入了啤酒屋。

因为是下午,所以客人只有我们。 两桌并排在一起,让整鸡和扎啤更加有活力,开始沉迷于扎啤所象征的特有的年轻文化。

炸好的话,整鸡会折半到香味进去。 一旦有酒有鸡,就大喜了。

客人也只有我们,店主阿姨也会悠闲地精心炸鸡,我们也已经尽情享受了生啤,期待着即将准备好的整鸡。 在适当的时候,当一杯被喝光时,两只金黄色的整鸡放松了蹲着的盘腿姿势,在盘子上展示了美丽的姿态。 从当时流行的韩熙作漫画家的戏剧化来看,盘子上的整鸡被解释为另一种意思。

一口爽口的生啤和鲜嫩的整鸡真是天作之合。 喝得开心,吃得津津有味。

在整鸡出来之前,好像又喝了一杯,因为整鸡出来了,所以又喝了一杯。

将相对对饮酒持消极态度的朋友们的余量测量到自己的啤酒杯中,开始整理得干干净净,没有酒杯,如果果动机先在我们身上,自己就会处理完再走。

我们本来就对闪电提议感到感激,因此享受了美味的整鸡和扎啤,所以就在柜台入口等待一起出去。 果东琪可能是现金不够,向柜台阿姨出示了学生证,说"明天再来结账"。 当时学校周边的酒吧可以用学生证赊账,在某些情况下,寄存手表的情况很常见。 在学校附近,学生证起到了信用保证后付卡的作用。

但是出现了问题。 老板娘说不能那样做,要求现金。

我们按照自己的想法和动机,正在发生尴尬的情况。

在科同期的提议下,虽然喜欢喝啤酒和整鸡,但事实上,在同样的学生处境下,独自承担可能有些过重,以能够自发参与"分割负担"的开放心态,再次走近阿姨,提出了提案。

"大婶。 我们会多寄存几个学生证的,请放心。"

"不行,学生。 我们店不能赊账。"

把学生证一一拿出来放在柜台等待阿姨的处理,但反应并不理想。 进入入口处设有隔板的柜台前结账的大婶再次强调了赊账交易不可行,因此我们也同样感到郁闷。

有人又提议,把手表交给他,一个个解开,摊在柜台上。 尽管如此,大婶还是没有表示接受我们的提议。

因为已经把学生证和手表分别收起来,把我们的王牌都拿出来了,所以如果手握最后确认牌的大婶接受了提案,就可以防止接下来的惨案发生。

我们深有同感,收起了柜台上的学生证和手表,在个人回收结束的那一刹那,微妙的眼神互相交换,入口处的朋友开始飞快地跑出去。 不知不觉间,围在柜台边的朋友们也不约而同地瞬间跑出去了。 大家都以惊人的速度离开了啤酒屋。

再也听不到远离后脑勺的大婶慌张的喊声。

"学生,至少把表放下就走。 学生们,哪怕是手表也好..."

即使阿姨从柜台里出来抓我们,我们被抓的概率也是零,但是已经越过逃跑线的我们竭尽全力逃到了学校校园,连确认谁去了哪里的时间都没有,就这样像烟雾一样消失了。

那我们是以什么感觉逃跑的呢? 一开始就没想逃跑。 如果主人阿姨通过变通手段取得了学生证,那么从一开始就不可能发生逃逸事件。

由于主人强硬的现金要求,我们提出的理想条件瞬间被攻陷的瞬间,我们加入了现实的逃亡行列。 为了各自逃生而逃出来后,我们再次聚集在校园里,屏住粗重的呼吸,不管是谁,都捧腹大笑。

在因生啤和整鸡而幸福的那个夏天,逃亡剧一直成为传说,每年夏天回到我们的嘴和胸口,都会再次寻找生啤和整鸡。

那时我就知道了。 炸鸡啤酒日后会成为年轻的大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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