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탄생과 성장 7

by 제이킴

외가


집에서 학교와 다른 삼각형 꼭짓점 부근에 외갓집이 있었고 당시 제재소를 운영하셨는데 장녀인 우리 엄마 밑으로 이모 1명, 삼촌 3명과 할아버지, 할머니 등 7명의 식구였다.

물론 어릴 적 사망한 몇 분이 더 있었나 본데 그 시절의 유아 사망률은 매우 높아서 다산의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더 대가족인데 형제가 10남매 중 쌍둥이 형인 아버지가 9번째, 쌍둥이 동생인 작은 아버지가 10번째로 막내가 되신다.

친가의 막둥이 아버지와 외가의 장녀인 엄마의 결혼은 대가족 간의 결합이었고 지역사회의 큰 관심과 화제를 몰고 왔다고 한다.

외할아버지 입장에서 우리 아버지가 큰 사위였으니 얼마나 듬직하셨겠는지 짐작이 된다.

아버지는 장인 장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셨다고 하셨다. 특히나 외할머니가 큰 사위를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집안의 어려움이 있을 때 큰 사위가 여러모로 위안이 되셨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의 성품상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어린 처남들이 성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외가의 큰 기둥의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된다.

외가의 제재소는 70-80년대 성업 당시에 할아버지, 아버지, 이모부 외 기타 직원이 2-3명이 있었다. 나름 규모가 있었고 제재소 특성상 원목을 보관하는 장소와 목재를 절단하는 설비들이 있어서 나 같은 어린아이에게는 전체 공간이 놀이공원이었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고 어린 동생들과 숨바꼭질도 참 많이 했었다.

무엇이 어디에 있고 어디에 숨으면 동생들이 찾을 수 없는지 도처가 아지트였다.

아지트의 어원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뜻밖에도 러시아어.

첫째는 어떤 사람들이 자주 어울려 모이는 장소.

둘째는 아마도 레닌 시절 합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활동을 비밀리에 지도하는 본부의 명칭으로 공산당 용어라고 나온다. 시대가 살벌했다면 아지트 용어를 잘못 사용했다가 곤욕을 치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외가는 어릴 적 내 성장의 아지트였다.



큰 큰아버지


학생이 귀했던 시절.

할아버지에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아서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마치고 도시에서 근무하던 큰 큰아버지 집에서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큰 아버지가 거느린 식솔만 당신의 자녀 8명에 쌍둥이 동생 2명, 처가 쪽 학생 2명, 가사 도우미 2명 도합 15-16명이 한 집에서 살았고 하루에 도시락이 많을 때는 20개 정도였고 한 달에 쌀 두 가마를 해치우는 먹성을 자랑했다고 하는데 당시는 식사량이 많아서 쌀 소비량도 많았는데 밥그릇도 지금의 2배 정도로 컸다.

큰 아버지가 낳은 첫째가 아버지보다 나이가 2-3살 많았다고 하니 삼촌들과 조카들이 함께 크면서 많은 상황과 이야깃거리가 있었음은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큰아버지께서 동생들과 자식들 사이에 있을 수도 모를 서열 충돌을 확실하게 정리를 하셨다고 하는데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삼촌들과 조카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면 그건 콩가루 집안이 아니겠는가?

어릴 적 명절에 아버지가 우리들을 데리고 큰 큰아버지 댁을 방문하면 아버지 또래의 어른들이 아버지한테 반가움과 공손함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나의 아버지가 자신들의 아버지의 형제이니 당시 60대 나이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우리 아버지에게 투영되어 우리 아버지한테서 당신들의 예전 아버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큰 아버지는 병무청에서 근무하셨는데 명절이 되면 여기저기서 선물이 들어와 다락에 산처럼 쌓였다고 한다. 당시 오래된 가옥에는 다락이라는 특수창고가 있었다. 일종의 귀중품이나 생필품을 보관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살인의 추억’에서 배우 박노식이 식당 안방 다락에 숨어 있다가 뛰쳐나오는 바람에 방에서 식사하고 있던 수사반장과 형사들이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다락의 위치와 공간 설정이 잘 된 화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살인의 추억의 소재로 쓰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살인의 추억을 되살려 자신이 진범이라고 진술하면서 사회적인 파장이 있었다.

명작에는 잘 숨겨진 사연들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사람의 인생에도 참 많은 사연과 추억들이 버물려져 있을 것이다.

나나 당신이나 다들 우리 인생의 명작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연초제조창


초 1/2/3학년 1학기까지 집에서 국민학교(지금 초등학교)에 가려면 연초제조창(전매청)을 지나서 가야 한다.

학교가 시내 쪽 방향이고 우리 집은 시내에서 외곽으로 가는 방향에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제조창을 지나면 구수한 담뱃잎 향이 물씬하게 풍기곤 했다.

화학적인 성분이라기 보다는 담뱃잎 훈증과 건조과정에서 발생하는 향기로 추정된다.

그때는 구수했던 담배 훈증 향기가 흡연의 동기나 금연의 방해 요소가 되지는 않았을지 궁금하다.

연초제조창이 있는 도시 인구의 흡연율과 타 도시의 흡연율과 비교조사를 하면 어떤 일정한 결과의 수치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환경오염의 실상을 파헤쳐서 질병으로 신음하는 지역주민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걸어 승리하는 소재의 영화들이 많이 있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영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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