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탄생과 성장 9

by 제이킴

외숙모


외가에 삼촌들이 세 분 계신다.

모두 외할아버지 체형을 닮아서 그런지 훤칠하고 잘 생긴 호남아들 이시다.

하기야 할머니도 키가 큰 편에 속하셨으니 유전적인 도움을 잘 받으신 셈이다.

위로 두 분의 누나 중 장녀가 우리 엄마이고 차녀인 이모가 계시는데 두 분은 강한 개성과 함께 여전히 유쾌하며 심신이 매우 건강하시다.

초등학교 때 큰 외삼촌 결혼식에 참가하러 상경한 이야기는 ‘초교 이야기 19편’을 참고하시라.


큰 외숙모

외숙모가 결혼식을 마치고 아마도 신혼여행도 마치고 외가로 들어왔다면서 엄마가 나에게 외가에 가서 숙모에게 인사를 하고 오란다. 하기야 내가 외가에서는 첫 손주이니 나부터 신고식을 해야하는 것은 맞는 말씀이다.

그렇지만 사실 내가 6학년 이전까지는 숫기가 없던 아이여서 낯이 설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었다. 그래도 외가는 나의 정서적 요람인데 외숙모와 서먹하면 외가 출입이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득하여라. 그래서 내가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게 맞겠다 싶었고 바로 그 날 실천에 옮겼다.

외가를 갔는데 할머니는 하필 외출을 하셨는지 안 계시고 숙모가 혼자 고운 색동 한복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서울 아가씨가 시집을 왔으니 외가 입장에서는 경사였고 할아버지나 할머니 입장에서도 좋은 규수로 간택을 하셨을 것이다. 예전에 다니던 학교 여 선생님도 후보군에 있었다고 알고 있었으나 아마도 인연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그 시절에는 선 자리도 많았을 것이다.

고운 한 복이 눈에 선한 서울 아가씨는 그렇게 색동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나를 보고 귀엽다고 하시는데 쑥스러워서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게 아닌데 당시 서울 말투에는 특유의 억양이 있었다. 지방 아이들이 듣기에는 무척 세련되게 들렸고 일부러 서울 말씨로 흉내를 내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숙모의 여동생이 같이 와 있었던 것 같은데 나한테는 큰 누나뻘로 안경을 썼던 귀여운 아가씨 인상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손이 자주 터서 숙모가 만져주는 손길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아! 이런 느낌이 서울 아가씨들의 손길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외숙모가 된 서울 아가씨는 2남 1녀를 낳아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며느리 사랑을 듬뿍 받으셨고 외가의 중심으로 우뚝 서서 큰 살림지기가 되셨다.

이 조카들을 내가 참 많이 업어 주고 많이 귀여워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삼촌과 숙모가 주셨던 사랑을 조카들에게 다시 골고루 나누어진 느낌이다.

결국은 내리사랑이 아니겠는가?

훈훈한 사랑은 선순환을 만들어 후손이 또 다른 후손들에게 곱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당시 이 결혼을 주선한 중매쟁이는 술을 석 잔 얻어 마셨을 것이다.


둘째 외숙모

미국에서 유학 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오랫동안 교수님으로 후학을 양성하신 둘째 외삼촌.

둘째 외숙모의 첫인상은 연한 물방울무늬의 원피스를 입었던 봄처녀 모습으로 기억된다.

두 분의 연애사를 신혼 때 숙모한테서 들었는데 아마도 숙모나 삼촌 입장에서 결혼 전 밀당을 통하여 서로 애정의 수위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했다.

밀당을 통한 애정 수위 조절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스릴이 존재한다.

그 후 2녀 2남을 순서대로 두셨으니 다복한 두 분이 되시겠다.

이 조카들도 내가 많이 귀여워했었다. 회사 초년병 시절에 마포 삼촌집에 같이 살던 여동생도 볼 겸 방문하여 밥도 얻어먹고 한때는 막내 삼촌도 같이 살아서 한 집에 세 식구를 볼 수 있었던 시기도 있었다.

이른바 ‘한 지붕 세 가족’인데 당시 인기 많던 주말 아침 드라마가 생각난다.

최근 이 집 장남인 셋째의 결혼식에서 오래간만에 모인 식구들과 사위를 볼 수 있었다.

한결 같이 훈남에 매력적인 여인들의 집합체였고 주위가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두 분은 나이가 가름이 안될 정도로 동안이며 삼촌은 흰머리가 거의 예술 수준이었고 숙모는 별로 늙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타고난 피부 미인임에 틀림없다.

막내는 미국에서 유학 중 이어서 코로나의 험로를 뚫고 숙모와 함께 다시 미국행을 했다는데 부디 건강한 학업과 왕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세월은 흘러서 나도 잘 익어가고 있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 내가 늙었음을 안다더니 내가 그 짝이 되었다.

기쁘면서도 서글퍼질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들었음을 알게 된다.


미국 바이든(1942년 11월생)이 한국 나이로 80살인 내년부터 미국 대통령 4년 임기를 시작한다.

80살이면 정말 대단한 것 아닌가? 나도 지금부터 꿈을 갖고 노력해서 80살이 되기 전에 작은 성취라도 이루리라.

시작이 반이다. 바이든도 했는데 나라고 못 할 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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