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탄생과 성장 10

by 제이킴


2녀3남 중 장녀. 영아/유아 시기에 조기 사망한 동생들까지 포함하면 4녀4남 중 장녀.

초/중학교는 면 단위 학교를 졸업 후 할아버지와 함께 도시로 나왔다.

당시 할아버지는 농사도 지셨고 면 서기의 경험으로 도청 공무원 활동을 시작하면서 엄마는 가톨릭 여고에 입학을 했다.

나중에 내가 같은 카톨릭 재단의 남중을 다녔으니 넓은 의미의 카톨릭 인연을 공유한 분이 되시겠다.

할아버지가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 엄마는 고교생 신분으로 두 분의 도심 살림을 맡아 꾸려 나갔다. 그렇게 생각하면 씩씩한 안주인 역할을 하면서 할아버지도 건사를 했다는 이야기인데 역시나 그때도 여장부 스타일이 있었구나 싶었다.

중학교 시절에 공부를 어떠셨냐고 물었더니 중간 정도라고 하신다.

중학교는 남녀공학으로 학년 당 한 반이 있었다고 하니 공부를 그리 못한 것 같지는 않다.

어릴 적 엄마와 고스톱을 같이 해 보면 빠른 점수 계산과 상대방의 작전 전개의 흐름을 꿰뚫고 있었으니 상당한 총기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공무원인 할아버지와 함께 외가의 화려한 비상의 출발점부터 지켜본 생생한 삶의 증인이자 중심에 어머니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자면 당시에는 흔하지도 않고 흔할 수도 없었던 꿈 많은 여고생은 아버지와 함께 수많은 역사와 추억을 만들어 간다.

고교 입학을 위하여 시험을 봤던 첫 번째 학교는 떨어지고 두 번째 학교는 합격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고교지만 시험을 보던 시절이라서 시험성적이 모자라면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을 못했다는 이야기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입학시험을 보러 다닐 정도의 실력은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 원하던 고교에 입학을 했더라면 우리 송 여사님의 인생에 어떤 변화가 기다리고 있었을까?

어차피 역사나 인생은 '그때 그랬더라면 어땠을까'하는 미련을 갖기 마련이지 않은가.


6.25 때 시골로 피난을 온 친척들을 건사하셨다던 할아버지는 내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근면하셨고 유쾌하게 흡연과 음주를 즐기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할아버지에게는 흡연용 파이프가 있었다.

갈색 목재의 파이프도 기억이 나고 나중에 대만에서 유학 중인 막내 아들이 선물한 우유 빛깔 상아 파이프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막내가 선물한 상아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실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특히 할아버지는 자식들 교육에 적극적 이셨던 것 같다.

어머니를 졸라서 억지로 소환한 어머니 추억 속에서 고교 시절에 불어가 아닌 독일어를 선택해서 대학교에 가려고 도전을 한 모양인데 그 당시 어려운 시절 속에서 고교생 장녀의 꿈을 키워줄 수 있었던 할아버지의 감성과 능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결국 서울로 대학교 입학은 성적이 부족했고 고교 졸업 후 시집 준비로 삶의 방향이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여기서도 만일의 상황을 가정하자면 서울 소재 여대 입학의 꿈이 실현되었더라면 우리 송 여사님의 삶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상상만으로도 흥미진진해진다.


엄마 고3 때 이모가 고1로 입학을 하면서 三父女의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후 나머지 가족들도 뒤따라서 이사를 하게 되고 도심 한 자락에 집 터를 구해서 정착을 했으니 할머니와 나머지 가족들도 삶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모가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당시 우리 고교 이사장님도 외가와 같은 동향인 것을 보면

그쪽 터가 수학과 관계된 명당이 아닌지 강한 의심이 생긴다.

삼촌 3명 중 2명이 미국과 대만에서 유학을 했으니 외가의 자식 교육에 대한 투자는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할머니와의 추억은 앞선 ‘탄생과 성장’ 편에서 여러 번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라.

언젠가 할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기억이 난다.

“돈은 훔쳐 갈 수 있지만 머리에 든 것은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 없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결론이지 않은가? 학업에 대한 분명한 동기를 부여하는 명언이다.


오랫동안 농부와 공무원으로 또는 사업가로 할아버지 인생의 변곡점과 성공담 안에 우리 엄마의 헌신과 추억이 함께 있음을 자랑스럽고 흐뭇하게 생각한다.


“송 여사님이 뿌린 씨앗들이 지금은 이렇게 잘 자라서 좋은 재목이 되어 갑니다.”


할아버지가 제재소로 큰 부를 이루셨기에 그 시절의 기쁨이었고 우리들 성장과정에서도 좋은 추억과 양질의 자양분이 되었음을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아직도 할머니의 귀여운 ‘내 강아지’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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