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탄생과 성장 11

by 제이킴

母의 추억 1


어머니께 지난 세월에 대하여 추억을 소환해 달라고 요청을 드리자 제일 먼저 등장한 식물이다.


無花果 무화과 fig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꽃이 없는 열매’다.

잘 익은 무화과 열매는 당도가 월등하게 높아서 자체가 잼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하고 다른 과일과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다.

작명의 연유를 검색해보니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전달되어야 하는데 무화과 열매라고 부르는 초록색깔 열매가 바로 무화과 꽃이다. 꽃이 필 때 꽃받침과 꽃자루가 길쭉한 주머니처럼 비대해지면서 수많은 작은 꽃들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려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꽃도 없이 어느 날 열매만 익기 때문에 그만 꽃 없는 과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제철은 여름과 가을이며 항암성분이 가득한 과일의 귀족으로 임금님의 수라상에도 오를 만큼 귀한 과일로 클레오파트라도 즐겨 먹었다고 하니 귀인의 열매라 할 수 있다.


무화과는 성경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재배한 식물로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벗은 몸을 가린 것이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무화과 잎은 남녀 성기를 가릴 정도로 크기가 되므로 나름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로 판단된다.

내가 어렸을 때 수도가에서 목욕을 한 후 무화과 잎으로 작은 성기를 가려본 적이 있는데 나보다 훨씬 큰 성인의 물건도 충분히 가릴 수 있을 만큼 풍성한 크기라는 것을 경험상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러한 내 경험을 다른 아이들은 할 수 없었을 것으로 최소한 아담과 나만 아는 추억이 되시겠다.


우리나라에서 무화과를 처음 본 사람은 연암 박지원으로 열하일기에 ‘잎은 동백 같고 열매는 십자 비슷하다. 이름을 물은 즉 무화과라 한다. 열매가 모두 두 개씩 나란히, 꼭지는 잇대어 달리었고, 꽃 없이 열매를 맺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사행길에서 무화과를 본 느낌을 열하일기에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으로 아마도 박지원이 살고 있었던 조선시대 후기 이후에 우리나라로 전래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무화과 열매는 여름에 초록색의 딱딱한 형태로 익기 시작해서 가을이 되면 갈색의 물렁함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 물렁거림이 기분 좋은 단 향과 맛깔스러운 단 즙을 만들어 내는데 과육의 물렁거리는 특성상 잘 익은 무화과 열매는 한 입 크기에 적당하고 껍질을 벗겨내고 먹어도 되지만 같이 먹어도 별 탈은 없다.


열매나 잎을 따면 우유 같은 액체가 나오는데 무화과를 고대 로마에서 다산의 상징으로 여겼던 이유 중에 하얀 액체를 정액과 같은 색감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실제로 무화과의 점성이 있는 하얀 액체를 당시 로마 처녀가 만져 봤다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얀 액체에 피신ficin 성분이 있다고 하는데 치즈 만들 때 우유의 응고에 무화과류의 조粗 유액을 사용하는 것은 이 효소의 작용을 이용한 것이다.

무화과의 효능을 찾아보았더니 고혈압 예방, 피로 회복, 혈관 건강, 시력 개선, 노화 예방, 소화 촉진, 골밀도 증가, 피부 미용, 다이어트, 심장 질환, 혈당 개선의 효과가 있으며 특히 클레오파트라가 무화과를 즐겨 먹었다고 하므로 아마 당시 이집트에서도 인기 있는 과일로 쳐주었을 것이다.

당나라 양귀비는 ‘荔枝리쯔’를 좋아했고 이집트 클레오파트라는 ‘무화과’를 즐겨 먹어서 더욱

아름다운 미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니 혹시 이 과일들을 먹을 기회가 있다면 동서양 역사 속의 절세가인들과 같이 아름다운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는 즐거운 상상과 함께 먹어볼 일이다.



父의 추억 1


아버지께 지난 세월에 대하여 추억을 소환해 달라고 요청을 드리자 제일 먼저 등장한 물건이다.


가마니 叺 straw bag


막내가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는다며 걱정하시던 아버지는 결단을 내리시더니 광에서 가마니를 꺼내어 오셨다. 가족들은 가마니 위에 무릎을 꿇고 막내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수차례 막내의 늦은 귀가에 대한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훈계가 효과가 없음을 깨닫고 온 가족이 반성하는 의미로 눈을 맞으며 막내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마도 겨울바람 속에서 한 10분 정도를 기다린 것 같은데 그동안 눈치 없는 함박눈은 속절없이 많이도 쌓였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리더니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오던 막내는 가족들이 마당에서 가마니 위에 무릎을 꿇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많이 쌓인 눈처럼 온통 새하얗게 충격을 받는다.

당시 기억이 가물거리며 희미한 것을 보면 아마도 내가 초교 저학년 시절의 이야기 인 듯하다.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는 막내를 보고 포옹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마치 돌아온 탕아를 연상시키는 극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와 두 살 터울 여동생과 세 살 터울 남동생 등 2남 1녀를 두셨고 당시 출생아동의 성향을 보자면 매우 적당한 조합이었는데 두 동생이 7살에 학교를 들어가면서 학년은 나와 여동생은 1년, 나와 남동생은 4년의 차가 있었다.

내가 초교 저학년이었으니 여동생도 같은 저학년으로 추정되고 막내는 취학 전이었을 것이다.

그 후 막내는 조기 귀가로 본인의 늦은 귀가를 반성하였고 부모님과 여동생도 다음 날의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그 예전 일들은 서서히 잊혀진 채 살아가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첫 추억의 질문에 소환된 ‘하얀 눈 위의 가마니’ 사건은 이렇게 회상되어 아버지와 나는 당시의 감회에 빠졌다.

아버지 입장에서 자식들의 훈계를 위한 엄동설한의 교육은 본인에게도 잊지 못할 아픈 추억으로 기억 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을 것이고 자식의 뜬금없는 질문에 주저함 없이 나왔을 것이다.

괜스레 엉뚱한 추억을 건드리지는 않았는지 내 가슴이 먹먹함으로 채워졌다.


“아버지. 이런 이야기를 제 추억의 일기에 올려도 될까요? 좀 그렇지 않나요?”

“뭘 그런 것 까지 신경을 써? 지나온 세월이고 가족들이 함께 느낀 교훈이니 올려도 무방하다.”


내가 훗날 아버지와 같은 85세가 되었을 때 내 첫째나 둘째가 나의 인생에 대한 추억을 물어본다면 나는 첫 번째로 소환할 추억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아이들의 엄마가 첫 번째 위치로 온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결국 이 아이들은 우리 두 사람의 합작품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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