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엉덩이로 계단 난간 위를 타고 내려오는 장난을 많이 했었다.
일종의 난간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스릴을 즐기는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무척 위험한 행동이었으나 당시에는 무척이나 재미가 있었다. 난간을 타고 내려오다가 누군가와 부딪쳐서 다치거나 어디가 부러지기도 했을 것 같은데 그러한 불상사를 별로 본 기억이나 들은 기억도 없다.
아마도 본인들이 조심하면서 타고 내려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한 가지 조심할 것은 난간이 끝나는 굴곡점에 다른 급우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만 하면 만사 오케이. 스키장 슬로프는 저리가라 수준.
어떤 친구들은 심지어 계단에서 탁자와 의자가 붙어 있는 일체형 책상을 타고 내려오는 장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역시 별로 다쳤거나 안 좋은 부작용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역시나 아래에서 올라오는 학생들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장난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봄 소풍에서 반 별 권투 시합이 있었다.
마우스피스도 없이 경기를 하다 보니 얼굴을 제외한 얼굴 아래부터 벨트 위까지 제한적인 타격만 가능한 룰이 적용되었는데 내가 반 대표로 나간 것을 보면 다른 친구들이 지원을 안 했던지 아니면 내가 장난으로 나서서 지원을 했던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막상 권투 글러브를 끼고 상대방 선수의 상체를 가격하면 충격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방심하다가 복부를 제대로 얻어맞았다. 순간 숨이 턱 막히고 숨을 못 쉴 정도의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지면서 창자가 끊어지는듯한 통증이 수반된다.
다행이 경기는 끝났지만 ‘시합 종료를 알리는 벨 소리와 함께 카운터 펀치를 얻어맞은 복서’처럼 눈 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복서들이 경기를 앞두고 왜 농구공으로 복근을 타격하며 단련하는지 얻어맞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일단 숨을 거칠게 끊어 내쉬면서 숨을 들여 마셔야 하는데 제대로 맞은 복부에 힘이 빠져서 호흡마저 제대로 이어갈 수가 없었다.
이미 두 다리도 힘이 풀렸는지 간신히 자리에 앉아서 호흡과 정신을 정돈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아까 얻어맞은 복부 강타로 자리에 주저앉았거나 복부의 통증으로 뒹굴어 버릴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복싱이든 결투할 때 복부를 조심하라.
눈물점을 검색을 해보니 눈 아래 난 점으로 관상학적으로 눈물이 많은 것으로 나온다.
나의 중학생 시절은 당시 인기가 많았던 영화 ‘고교 얄개’의 주인공처럼 학교에서 장난이 많았던 시절이었으나 그렇지만 이상하리만큼 눈물도 많았다. 슬픈 드라마를 보거나 교생 선생님이 학교를 떠날 때나 특히 여자 교생들의 경우는 더 심하게 눈물이 나왔다.
당시 우리 중학교는 교내 천주교 성지가 있었고 전국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축구로도 유명세가 있었다.
축구선수 출신이면서 학업으로 전환한 형 같은 급우가 1명, 실제 축구선수가 2명이 같은 반에 있었고 같이 학교를 다니게 된 1년 선배도 2명 더 있었다.
형 또는 선배로 같은 반 급우가 5명이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한 반에 평균 70명이던 시절이므로 비율은 거의 10%에 육박했다. 당시 축구선수 2명은 오전에만 수업을 받았고 오후에는 축구 연습을 하러 나갔기에 평소 나이도 많았던 이유 등 같이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재수생으로 들어온 1년 선배 2명은 우리들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둘 다 키고 크고 성격도 좋았는데 그중 한 명은 샌님 같은 성격이었고 다른 한 명은 호남아 스타일이었다. 하루는 복도에서 교실로 들어가는데 앞 교탁에서 누군가 무언가를 나에게 쌘 힘으로 던졌다.
슉! 퍽!
내 얼굴에 농구볼이 정통으로 꽂혔다.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고 나는 자리에 앉아서 한동안 정신줄을 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농구공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의도적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장난인데 힘 조절이 안되었는지 너무 센 힘과 너무 빠르게 제대로 내 얼굴을 강타한 것이다. 원인제공자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아직도 얼얼한 얼굴 위로 눈물이 쏟아졌다.
그 선배는 막상 내가 자리에서 엎드려 울고 있으니 난처했을 것이고 나는 나 대로 이미 터져버린 눈물샘 때문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중학생 시절에 억울하거나 상황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말 보다 눈물부터 먼저 흘러나왔다.
결국 선배의 사과로 사태는 수습이 되었지만 내가 흘린 눈물 때문에 내가 스스로 민망할 정도였으니 어릴 적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네 눈 밑에 난 점은 눈물점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눈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것이 어디에 있어요? 눈 밑에 점이 있다고 눈물이 많으면 코 밑에 점이 있으면 콧물이 많게요?”
아무튼 당시에 눈물을 자주 흘리던 내 모습을 기억하는 급우들이 있을터인데. 특히 어떤 사람들은 눈물점의 존재만으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눈물은 사람의 분위기에 따라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눈물이 많다는 것은 주책없이 보일 때가 더 많았다.
눈 밑에 난 점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잘 살펴보라.
정말 눈물점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눈물이 더 많다.
中学时期经常用臀部从楼梯栏杆上下来开玩笑。
这是一种从栏杆斜坡上下来的刺激感,现在想想是非常危险的行为,但当时非常有趣。 沿着栏杆下来的时候,好像有人撞伤了或哪里断了,但是不记得怎么见过这样的不幸事件。
也许是因为本人小心翼翼地骑下来,但有一点需要注意的是,只要确认栏杆结束的弯曲点是否有其他同学,就万事OK。 滑雪场的斜坡相当于"走开"的水平。
有的朋友甚至从楼梯上爬下一张桌椅并排成一体的书桌来玩。
我记得也没有什么受伤或不良的副作用。 也就是说,确认是否有从下面上来的学生后,开了个玩笑。
一次春游,有一场班别拳击比赛。
在没有牙套的情况下进行比赛,所以适用了除了脸以外,从脸下面到腰带上面只能进行限制性打击的规则,但从我作为班代表参赛的情况来看,应该是其他朋友没有报名,还是我开玩笑地报名,两者之一。
如果戴上拳击手套攻击对方选手的上半身,应该不会受到太大冲击,但是一不留神,腹部就被击中了。 瞬间窒息,无法呼吸的冲击传到全身,伴随着肠子断开的疼痛。
所幸比赛结束了,但就像"随着宣布比赛结束的铃声,拳击手被对手重击"一样,眼前变得一片空白,精神恍惚。
拳击手们在比赛之前为什么用篮球击打腹肌进行锻炼,直到挨打后才理解了。
首先,应该粗犷地断气,边呼气边吸气,但是被打中的腹部没有力气,连呼吸都无法正常进行。
也许是双腿已经放松了,好不容易才坐下来调整呼吸和精神。 差点被刚才挨打的腹部强击击倒或因腹部疼痛而翻滚的惊险瞬间。
无论是拳击还是决斗,都要小心腹部。
搜索眼泪点后发现,眼睛下面的痣,从面相学上来看眼泪很多。
我的初中时期就像当时人气很高的电影《高中薄狗》的主人公一样,在学校里经常开玩笑,但奇怪的是眼泪也很多。 无论是看悲伤的电视剧,还是教师离开学校时,特别是女教师,眼泪都流得更厉害。
当时,我们中学在校内设有天主教圣地,在全国大赛中夺冠,足球也非常有名。
像足球选手出身并转为学业的哥哥一样的同学有1名,实际足球选手有2名在同一班,还有2名一起上学的1年前辈。
也就是说,哥哥或前辈有5名同班同学,因为当时一个班平均有70名,所以比率几乎接近10%。 当时2名足球选手只在上午上课,下午去练习足球,因此平时年龄也大的原因等很难相处。
但是作为复读生进来的2名1年级的前辈们会和我们亲密相处。
两人个子都很高,性格也很好,其中一人性格像书呆子,另一人性格像湖南人。 一天,从走廊走进教室,前面的讲台上有人用蛮力向我扔了什么东西。
咻!啪!
篮球正中下怀在我的脸上。 我记得我当时震惊得神魂颠倒,坐在座位上精神恍惚了一段时间. 但是那个篮球是平时关系很好的前辈故意打的,还是开玩笑的,不知道是不是因为力量调节不好,用太大的力量和太快的击中了我的脸。 确认原因提供者后坐下来,眼泪仍然涌上火辣辣的脸上。
那位前辈看到我在座位上趴着哭,一定很为难,而我却因为已经爆裂的泪腺抬不起头。 现在回想起来,初中时期委屈或情况到了无法承受的地步,比起语言,首先流出的眼泪更多。
结果,虽然因为前辈的道歉,事态得到了平息,但是因为我的眼泪,我自己都感到尴尬,所以记得小时候有人对我说过这样的话。
"你眼底下的痣是泪点,眼泪会比别的孩子多。
"哪有那样的? 眼睛下面有痣,眼泪多的话,鼻子下面有痣的话,鼻涕多吗?"
反正有些同学还记得我当时经常流泪的样子。 特别是有些人会想起因为泪点的存在而流泪的样子。 虽然有些人可能认为眼泪根据人的氛围会让人觉得很有魅力,但在现实中,眼泪多的时候会显得毫不犹豫。
眼睛下面有痣的人就好好看看。
真正有泪点的人比别人眼泪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