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대통령은 내가 고1 시절 3월에 7년 단임제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같은 해 1월 레이건도 제40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그해 3월 워싱톤 힐튼 호텔 앞에서 피격을 당한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에 대통령직을 시작해서 거의 같은 시기에 임기를 마쳤다.
그런데 한 사람은 아직도 불명예스러운 삶을 살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자국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이력을 찾아보니 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박 대통령 서거 후 정식 대통령이 되기 전 기간인 1980년 9월-1981년 2월이 11대 임기가 되고 1981년 3월-1988년 2월까지 12대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 것으로 구분되며 재임기간은 7년 반이다.
육사 11기로 입교하여 5.16 혁명 이후 박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된 그해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하면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고 신군부 등장에 주도적인 역할로 대통령이 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면 박 대통령과 차 경호실장의 후원으로 승승장구하며 박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정보와 판세를 장악하면서 운명의 깃발은 전 사령관에게 기운다.
최근 전직 대통령의 사면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 사면 대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전직 대통령은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등으로 역사는 이렇게 반복되는지 안타까운 심정이다. 역사의 평가를 통하여 단죄를 받아야 하는 행동을 했으면 단죄를 받아야 마땅하고 속죄는 속죄대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디 퇴임 후 존경받는 대통령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981년 1월-89년 1월까지 재임하며 Reaganomic레이거노믹스로 경제를 활성화시켰고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를 표방했으며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과는 ‘중거리 핵전력 폐기 조약(INF Treaty)’에 서명했다. 그는 1967년 1월-1975년 1월까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했었다.
1981년 레이건이 저격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인상 깊게 본 화면은 쓰러지는 대통령 위로 2중3겹 경호원들이 인간방패가 되는 장면이었다. 그러한 화면을 본 사람들은 미국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고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미국을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로 보게 된 것이다. 경호팀들은 경호 임무에 충실하다 보니 평소 연습한 매뉴얼대로 똑같이 움직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가 경호팀이라면 어떻게 대처를 했을까?
나의 몸을 날려 누군가를 덮을 수 있었을까?
현장에서 붙잡힌 힝클리는 경찰 조사에서 여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해 정신이상 판정을 받았고 결국 무죄가 선고됐다.
이것도 당시 내 정서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대통령을 저격한 목적이 여배우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으니 말이다. 하여간 우리나라는 총소지가 불가한 나라여서 참 다행스럽다. 더군다나 인기 여배우 입장에서도 더욱 그렇다.
그럼 같은 시기에 대통령 직을 수행했던 두 사람은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 자료를 찾아보았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핵무장 프로그램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면서 레이건의 대통령 취임 후 최초로 백악관을 방문한 외국 정상이 되었고, 이후로도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한 바 있다. 레이건 역시 1983년 미국 대통령으로서 재임 시절 방한을 하는 등 찰떡같은 한미공조를 이뤄냈다.
오늘날에도 한국의 보수 우파 성향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대통령이며 당대 민주화 운동가들 입장에선 한반도 전술핵무기 배치 농산물 등 수입개방 때문에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 입장에서는 레이건은 6월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에 압력을 행사하여 군사력 투입을 막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측면이 매우 크다. 이점에서 오히려 인권 외교를 내세우면서도 5.18 민주화운동에서 전두환 등 신군부를 억제하지 못해 참극을 초래했던 지미 카터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레이건 여담들)
.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름은 로널드 레이건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호날두의 어머니가 레이건의 팬이었다고 한다.
.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 대신 캐스팅될 뻔도 했었다. 만약 캐스팅되었더라면 대통령 레이건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全斗焕总统在我高一时期的3月就任7年单任制第12届总统。
同年1月,里根就任第40届美国总统,同年3月在华盛顿希尔顿酒店前遭到袭击。
两人几乎在同一时期开始担任总统,几乎在同一时期结束任期。
但有一个人至今过着不光彩的生活,另一个人受到本国国民的尊敬。
翻看履历,发现是大韩民国第11/12任总统。
也许朴总统去世后成为正式总统之前的1980年9月-1981年2月成为第11届任期,1981年3月-1988年2月为止履行了第12届总统的职务,在任期间为7年半。
陆军士官学校第11期入校,5.16革命后被朴总统提拔,被任命为国军保安司令官的当年发生杀害总统事件,以戒严司令部联合调查本部长的身份逮捕戒严司令官郑承和,对新军部登场起到主导作用,成为总统。
从电影《南山的部长们》来看,在朴总统和车警卫室长的支持下乘胜前进,在朴总统遇害事件之后掌握了情报和局势,命运的旗帜向全司令官倾斜。
最近前任总统的赦免成为话题。
目前作为赦免对象成为争议对象的前任总统是全斗焕、李明博、朴槿惠等,历史就这样重演,令人惋惜。 我认为,如果通过历史的评价做出了应该受到定罪的行为,就应该受到定罪,赎罪应该按照赎罪来区分。
希望退任后能见到很多受人尊敬的总统。
1981年1月-1989年1月,他在任期间通过Reaganomic Reganomic激活经济,标榜以军事力量为基础的和平,并与苏联总书记戈尔巴乔夫签署了《中程核力量废弃条约》。 他曾于1967年1月-1975年1月担任加利福尼亚州州长。
1981年发生了里根遭狙击的事件。
我印象深刻的画面是,在倒下的总统上面,2重3层的警卫员们成为人盾的场面。 看到这样的画面的人们成为了重新审视美国的契机,也许他们和我有着同样的想法。 也就是说,美国被看作是系统运作的国家。 因为警卫队忠实于警卫任务,所以我想他们应该会按照平时练习的手册行动。
如果我是警卫队会怎么应对?
我能飞身盖过谁吗?
在现场被捕的辛克利在接受警方调查时陈述说,为了引起女演员乔迪福斯特的关注,犯下了这样的罪行,因此被判定为精神异常,最终被判无罪。
因为当时我的情绪不太理解,但他说狙击总统的目的就是为了得到女演员的关注。 不管怎样,我国是不能拥有枪支的国家,真是万幸。 更何况对于人气女演员来说更是如此。
那么,我们查阅了同一时期履行总统职务的两人维持了怎样的关系的资料。
全斗焕因停止朴正熙的核武装计划和导弹开发,成为里根就任总统后首位访问白宫的外国首脑,此后也曾多次访问美国。 里根1983年作为美国总统在任时期访韩等,实现了韩美合作。
据说,时至今日,韩国保守右派倾向的政治人士和媒体特别喜欢的总统、当代民主化运动家的立场上,因韩半岛部署战术核武器、农产品等进口开放问题,也受到了不好的评价。
另外,从韩国的立场来看,里根在6月抗争当时向全斗焕政权施压,阻止军事力量投入等,很有可能得到肯定的评价。 在这一点上,他反而比提出人权外交的同时,在5.18民主化运动中未能抑制全斗焕等新军部而引发惨剧的吉米·卡特得到了更好的评价。
里根的闲言碎语)
. 足球选手克里斯蒂亚诺•罗纳尔多的名字取自罗纳德•里根的名字。 据说,罗纳尔多母亲曾是里根的球迷。
. 他差点在电影《卡萨布兰卡》中代替汉弗莱·博加特出演。 大部分人认为,如果被选中,就不会有总统里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