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골절상을 앓으며 지나온 1년

삶의 굽이굽이, 웃음으로 빛나길

by 이진순

예전에는 4월하면 떠오르는 날이 4·19 혁명이었다. 교과서에서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 그날의 사건들을 국사 선생님이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웬만한 수업시간에는 거의 집중하지 못했었는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자연스럽게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9년 전 4·16 세월호 참사가 기억에 남는 날에 추가되었다. 또 작년 4월 14일 나의 교통사고가 다음을 잇게 되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던 시인의 말이 왜 이렇게 들어맞지 싶다. 여튼 나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을 살아낸 덕에 이렇게 새로운 봄을 맞는다.

골절되었던 골반 뼈는 완전히 붙었음을 1월에 확인했다. 자연스럽게 쪼그려 앉는 게 아직은 안 되고, 이곳저곳의 통증들이 사고의 흔적으로 몸에 남아있다. 물리치료, 침 치료 등을 받으면서 ‘드디어’와 ‘아직도’를 넘나드는 조금은 지루한 재활과정이 이어지는 중이다. 짚고 다니던 지팡이도 놓았고, 버스를 오르내리는 것도 가능해져서 움직임이 많이 자유로워졌다.

청소, 요리 등 살림살이가 부담스러워서 도우미의 도움을 받던 차에 일산 사는 친구가 잘 안 쓰는 로봇 청소기를 주겠다며, 무겁게 챙겨들고 비행기를 탔다. 나에게 준다는 말을 들은 친구 남편은 깨끗이 닦고 꼼꼼히 부속품들을 챙겨주었다. 혼자 돌아다니는 신문물을 본 어머니는 “아오게~(‘어머나’ 정도에 해당되는 제주 감탄사라고 하면 될 듯하다)”라며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20221130_로봇청소기.jpg 어머니가 신기한 신문물을 집중해서 지켜보면서 다리를 들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전셋집 계약 만료에 맞춰 리모델링한 어머니 집으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이 은퇴 후 살아오셨던 집은 30년이 다 돼가는 오래된 조립식 주택이라 바람이 거세면 불안했고, 겨울엔 추위를 참으며 지내야 했다. 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리모델링을 끝낼 계획으로, 4월 초에 리모델링 일을 하는 고향 오빠와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며칠 후 사고가 나는 바람에 계획은 무산되었다.

병원에서 몸을 움직일만한 상태가 되어가면서 다시 리모델링 계획을 다시 잡아갔다. 꼼꼼하게 자신의 일처럼 맡아서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고 감사했다. 가장 더운 8~9월에 공사를 하게 돼서 일하는 분들이 고생이 많았다. 덕분에 나와 어머니는 지금 심신이 편안하게 내집살이를 하고 있다.

몸도 조금씩 나아가고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일상을 살아가다보니 마치 마음이 골절상을 입은 듯 움직이기 힘든 시간들이 찾아왔다. 병원에 있으면서 그토록 꿈꿨던 이 축복 같은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의무 없이 온전히 내 스스로 하루하루를 꾸려가야 한다는 자유로움이 숨이 막히기도 했다. 책상정리 등 작은 것들에 마음을 쏟으려 애쓰며 삶을 챙기려 했다. 조금은 뿌듯하고 기분 좋은 작은 시간들이 모여 꽤 괜찮은 삶이 되리라 믿어본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서 다행히도 몸과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다.

사고 후 1년이라는, 예상에 없던 시간을 보내고 보니 우리의 계획이라는 것이 대부분은 ‘별일없음’을 전제로 해서 세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별일’이라는 게 대부분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당연한 것이기도 할 거다. 그렇게 무방비로 ‘별일’들을 겪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겠다는 생각도 한다. ‘다사다난’이라는 말은 이런 삶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인 것 같다.

나에게는 이번 해가 ‘제주 정착의 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제주에 내려와서 지난 2년 동안 예기치 않은 사고를 겪었지만 꾸준히 회복 중이고, 전세살이에서 내집살이로 삶의 터전도 옮겼다. 식물도 자리를 옮기면 몸살을 앓듯이 그동안 이런저런 몸살을 겪으며 제주살이를 준비해온 시간이려니 싶다. 여전히 삶은 다사다난하겠지만, 그 속에서 조금 더 깊이,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가끔씩 신나게 웃으면서 살면 좋겠다. 예전 교사시절에 아이들과 EBS 지식채널을 간간이 봤었다. 그중 웃음에 대한 영상이 있었는데, 6살 아이는 하루 300번, 성인은 17번 정도 웃는다고 한다. 세월이 우리에게서 자꾸만 웃음을 빼앗아 가나보다. 웃음이 많다는 얘기를 듣는 편인데도, 생각해보니 하루에 17번이나 웃을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웃음은 개인의 심신 건강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으로는 관계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는데, 그만큼 중요해서인지 1일 권장량도 있다. 아주 크게, 한번에 10초 이상, 하루 10회 이상 웃을 것을 권하고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루 300번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의 능력에 비해 애써 노력해야 몇 십번 웃을까 말까 한 어른들의 능력이 참 보잘것없다. 보석처럼 ‘반짝’하고 터트리는 웃음이 내 삶의 굽이굽이에서 빛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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