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의 병원생활을 마무리하다
지난 해 7월 중순 경, 나를 받아준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재활병원에서의 입원 생활을 시작했다. 총 4개월의 입원 중 한 달 정도를 이 병원에서 보냈다. 진작부터 한방병원보다는 재활병원에 왔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한다는 광고를 보고 한방병원을 선택하긴 했지만, 나처럼 큰 사고를 당한 경우에 적절한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초기에는 한약과 침의 덕도 보았고, 숲속의 좋은 환경과 시설 등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굳고 약해지는 몸의 재활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재활병원에서는 회진 때마다 의사가 땀 흘리며 환자들의 몸을 만지며 풀어주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굳어있던 데가 많이 풀렸는지 걷는 것이 달라졌다. 한방병원에서는 그림의 떡이었던 재활용 자전거도 이곳에 온지 이틀 만에 타기 시작했고, 잔뜩 긴장해서 있는 힘껏 부여잡던 보행기도 꽤 여유롭게 밀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병원의 시설은 많이 낡고 불결했다. 누런 박스 테잎들이 붙여져 있는 침대는 세우려면 손으로 한참을 돌려야 하는 수동침대였다. 남녀가 줄서서 같이 써야 하는 욕실의 샤워기에서는 물이 셌고, 벽의 타일들은 없어진 지 오래된 듯했다. 이전 병원의 시설과는 비교가 안됐다.
불결과 불편을 의료진들에 대한 믿음과 창 너머 보이는 바다 풍경으로 극복하는 시간이었다. 창가에 서면 바로 앞 넓고 푸른 바다가 마음을 만져주었다.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니 완전 휴양지라며 감탄했다.
그동안 만지지 못하던 왼쪽 발가락을 만지게 된 것, 오른쪽 발톱을 낑낑대며 스스로 깎은 것, 아침저녁으로 건물 밖 주차장으로 나가서 보행기로 걷기 시작한 것, 병실 내에서 보행기 없이 독립보행을 시작한 것 등이 재활병원에서의 한 달 간 겪은 변화들이었다.
그렇게 일신우일신의 나날을 보내다보니 처음에 의사가 대략 제안했던 입원기간인 한 달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른 병원을 또 알아봐야 할지 퇴원해서 집으로 가도 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처음엔 병원 바깥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생각할수록 집으로 가고 싶다는 바램과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다. 결국 귀가를 택했다. 침대를 임대하고, 청소와 빨래를 해주는 가사도우미 단체 연락처를 알아놓는 등 퇴원에 필요한 준비들도 해나갔다.
담당의와 상의하면서 퇴원일을 정했고, 거의 넉 달 동안 함께 했던 간병사님과도 퇴원 일주일 전쯤 헤어졌다. 이별을 앞두고 같은 방에 계셨던 환자분이 자리물회, 양념갈비 등을 사주시기도 했다. 간병사님이 안 계신 빈 자리는 같은 방 간병사님이 많이 채워 주셨다. 빨래를 해서 널어주고 걷어주고, 떠나는 날 짐도 1층까지 옮겨주셨다.
이렇게 넉 달에 걸친, 나에게는 결코 짧지만은 않았던 병원생활이 드디어 끝났다. 그런데 재활병원에 있으면서 이미 몇 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는 신경 손상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힘들게 걷기 연습을 하면서도 항상 밝은 모습의 한 청년은 퇴원을 앞둔 나에게 부럽다고 했다. 그것도 밝게 웃는 얼굴로. 병원 입원 7년쯤 됐다 했던 것 같다. 주변에선 다들 걸을 수 없을 거라고 했는데, 같이 병원생활을 하던 환자 한 분이 할 수 있다며 계속 응원과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그 분은 불편한 몸으로 매일 아침저녁 병원에 찾아와서 청년의 운동을 도왔다. 환자로 살면서 몸에 대해 전문가가 됐나보다. 운동할 때는 온갖 욕까지 섞어가며 강행군을 시켰다.
내가 살아보니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니 한 발짝 걷는 것이 인생 최대의 일인 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병원에서의 삶도 삶이었다. 건강해도 아파도, 젊어도 늙어도 살아있다는 것에서는 다르지 않다. 죽기 전까지 우리 모두는 살아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이유라는 생각을 하며 4개월간의 병원생활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