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와중에 함께 한 노래자랑
한방병원에서 퇴원 준비하라는 얘기를 들은 다음날, 불안하고 급한 마음에 맞은 편 침대까지 보행기를 짚고 걸어보려 했다. 급한 마음과 달리 다리가 버텨주질 못했다. 제자리 걷기와 한두 걸음 옮기기 정도밖에는 아직 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을 잘 치료해줄 좋은 병원이 아니라 어찌됐던 나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이 절실한 처지였다. 아직까지 나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을 찾지 못한 ‘병원난민’ 신세가 되어 불안한 몸과 마음으로 병원 상담을 갔다. 휠체어를 탄 내 모습과 진단서 등을 살펴본 의사는 아직 걷지 못하는 상황이니 한 달 입원하는 것으로 하자, 골절의 경우 입원 기간을 오래 인정해주지 않는다, 입원해도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으니 스스로 노력해야한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나를 받아주겠다는 말에 그동안의 불안이 사라졌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입원 병원이 결정되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나니 지금 나에게 닥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병원의 의료행위를 심사하고 지원금을 결정하는 곳인 듯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화를 했다. 민원 상담을 하는 곳은 아닌 것 같았지만, 어쨌든 지금 내 상황에 대해 뭔가 설명을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다.
마땅히 물어볼 데가 없어서 검색하다 전화했다고 우선 양해를 구했다. 몸은 병원을 나갈 수 없는 상황인데, 진단서의 일수에 따라 퇴원을 해야 하는 상황임을 설명했다. 병원의 의료행위에 대한 심사기준이 진단서의 일수인지, 그렇다면 나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자신들의 평가기준이 진단일수는 아니다, 환자의 퇴원 여부는 전적으로 담당 의사의 판단이다, 의사와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 등의 답이 돌아왔다.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었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 더 답답해졌다. 목소리가 떨려서 나왔다. 끊고 나니 한참 눈물이 흘렀다. 나에게 닥친 엉터리 같은 상황에 누구도 그럴 듯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와 통화했던 직원은 ‘당신의 힘든 상황이 우리 조직 탓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튼 위로가 되는 말을 듣거나 상황이 이해가 돼서 속이 좀 풀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말하고 울면서 내 속풀이를 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세상의 무수한 모순을 보고 겪으며 나름 적응하고 살다가도, 받아들이기 힘든 답답한 순간들이 불쑥 찾아오곤 한다. 별다른 힘이 없는 우리 서민들의 경우는 일상에서 그런 순간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특권을 가능케 하는 것이 권력이라면, 말도 안 되는 억울함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일반 서민들의 삶인 듯해서 씁쓸해진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화가 나고 답답하고 불안했을 때, 나가라는 병원과 주치의에 대한 욕을 포함해서 같이 수다 떨고 흥분하고 뭐라도 도움 되는 정보들을 알아봐주려는 친구들이 있어 그래도 다행스러웠다. 그런 시간들이 충격을 줄여주는 매트리스같은 역할 그리고 이미 받은 충격을 아물게 해주는 연고같은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나가라는 통지는 받았으나 대안이 없어 불안했던 어느 날, 옆 병실에서 사람들이 와서 병원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고 얘기를 나누다가 어찌어찌 노래자랑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며칠 전 입원해서 조용하고 우울하게 계시던 할머니 환자분이 고운 목소리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병원 이름을 따서 ‘솔담노래자랑’이라 부르고, 상품으로 음료수도 돌리면서 놀았다.
노래, 수다, 웃음 등은 참 좋은 심신의 치료제인 것 같다. 치료라는 목적을 위해서도 좋지만, 노래하고 웃고 떠들며 지내는 순간은 그 자체로 빛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그랬던가? 가수 한대수는 자신을 낙천적 염세주의자라고 규정했다. 서로 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삶의 비극을 인정하되 그것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여유 같은 게 느껴진다. 내 삶의 굽이굽이, 웃음소리와 수다소리가 함께 흐른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