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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순 Jun 17. 2023

저는 호기롭지 못하겠습니다

'방류'를 전제하지 않은 '순수한' 연구가 필요한 때

지난해 4월, ‘내년, 방사능 오염수가 온다고요?’라는 글을 썼었다. 톳장아찌, 파래무침, 전복밥 등 제주스럽고 바다스러운 밥상을 맛있게 즐기면서도 한편의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해 초, 제주스럽고 바다스러운 밥상을 차리고, 만족스러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소박한 밥상의 큰 행복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전 인류, 더 나아가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의 공유재산이자 미래 세대들에게 물려주어야할 바다에 이 위험한 핵폐기물을 버리는 것이 최선일까? 일본 정부는 계획대로 원전의 핵연료를 꺼내어 폐로 작업을 진행하려면, 지금 원전 부지의 탱크에 보관되어 있는 오염수를 바다로 버려야 한다고 한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에서 약 20년 간 동물의 방사능 피폭과 유전자 영향을 연구해온 세계적인 생물학자 무쏘 교수는 삼중수소가 인체 안에 들어오게 되면 몸 안에 있는 세포나 DNA와 직접적인 접촉이 발생해 심각한 손상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정자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다음 세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도 했다. 따라서 오염수 방류 전에 도쿄전력이 아니라 독립적인 과학자들에 의해 더욱 폭넓고 엄밀한 과학적 연구가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오염수 1리터를 마시는 것은 바나나 8개를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제발 그랬으면,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80% 넘는 우리 국민들의 걱정이 그저 무지에서 비롯된 공포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엄격하고 독립적이고 투명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해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자신은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고 여기저기서 호기롭게 나서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는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를 원치 않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호기로움’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호기로움’보다는 ‘걱정스러움’이 앞선다. 또 그들 중 정직하고 용감한 누군가가 오염수를 실제로 마신다 해도, ‘해양 투기’를 전제로 하지 않은 ‘순수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나의 판단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방류’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그것에 맞춰 근거들을 만들어나가는 듯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그리고 우리 정부의 입장을 믿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정직성도, 성실성도, 실력도.  

지난 도쿄 올림픽 때 우리나라는 선수들을 위해 자체적으로 급식센터를 운영했고, 후쿠시마산 재료들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의 이미지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맹비난하였다. 불안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이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비난하는 상황이라니!! ‘일본 부흥 올림픽’을 기획했던 일본으로서는 위험에 대한 한국의 정당방위가 심각한 업무 방해 행위로 보였나보다. 

나는 사고가 아니더라도 현재의 원자력 발전이라는 기술 자체가 정말 무책임한 첨단 기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으로 전기를 펑펑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는 사용후 핵연료를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아직까지는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직접 노출될 경우 거의 하루 만에 사람이 죽을 정도로 강한 독성 물질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세계에서 영구 핵폐기장을 만든 나라는 현재 핀란드가 유일하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은 원전 부지 등에 임시 저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핀란드는 핵폐기장 건설을 위해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한 끝에 지하수도 거의 없고 20억년동안 암반의 변동이 없었던 안전한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450미터의 지하에 10만년 동안 영구 보관할 수 있는 영구 핵폐기장을 만들었다. 방사능 수치가 자연 상태로 떨어지는 기간이 약 10만년이다.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 인류와 지상의 생태계에 핵폐기물이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고 한다. 아마 돈도,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똑같이 원전을 가동하더라도 그 기술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너무나 다르다. 그래서 많이 부러웠다. 

해양 투기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이라 말하는 일본 정부는 이제 해양 투기를 위한 시운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초대형 탱크에 장기 보관하거나 고체화하는 방법 등 일본 내에서 시간을 두고 더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안들이 없지 않음을 여러 전문가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해양 투기가 다른 방안들보다 10~100배 정도 싸다고 한다. 

후쿠시마는 이렇게 불안하고 값싸고 효율적인 해결의 길을 닦아가는 중이다. 인류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하는 효율은 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한국의 동쪽으로는 일본이, 서쪽으로는 중국이, 그리고 한국 자체가 원전을 밀집 가동하고 있다. 사고가 나면 피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곳이 한국이다.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원전사고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비가 되어 있을까? ‘지금까지 큰일 없었는데, 설마 그럴 리가’라는 확률적 위안? 재앙으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재앙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후쿠시마 재난 이후 일본 정부는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기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에너지난을 극복하고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원전의 비중을 올리는 것으로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후쿠시마 이후 주춤했던 전 세계의 원전 사업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난이 생기자 다시금 기지개를 피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독일은 지난 4월 15일 모든 원전을 멈추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매우 궁금하다. 

지난 13일에는 제주 최대의 방류 반대 집회가 열렸다. 단지 어민들에 대해 보조금을 줄지 말지, 얼마를 언제 줄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WTO가 그 정당성을 인정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한다. 지금도 오염수 방류에 대해 우리 정부가 국제해양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방류 계획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때이다. 서둘러 과거를 덮고 부흥의 깃발을 들고 싶은 일본의 조급증에 동조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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