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순 Jun 22. 2023

병원답지 않은 병원이야기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독후 두번째글

첨단기술보다는 따뜻한 돌봄이 우리 삶을 인간답게 하는 데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며, 양창모 씨의 책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본다. 

책의 앞부분에 군의관 훈련 시절 이야기가 잠깐 소개된다. 당시 그는 내무반에 할당된 작은 수납공간을 다 채우지도 못할 정도로 적은 물품을 가지고 생활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도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몸으로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시절은 작고 소박했지만, 충분하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그에게 남아있는 듯하다.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나서 그는 4년간의 전공의 생활 이후 원주의료생협에서 의사로 일하게 된다. 첫 출근 날, 냇가에 피어있는 꽃들을 보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공중보건의 시절에 알았던 꽃 이름들을 지난 4년 만에 거의 다 잊어버렸음을 알아차린다. 꽃들을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던 마음도, 그런 마음이 가능했던 소박한 삶도. 

전공의, 전문의 과정을 거치며 그는 대학병원이 환자를 대하는 방식이 처음에는 낯설고 싫었지만, 자연스럽게 닮아갔다. 필요한 약은 한 알이면 되는데 왠지 허전하고, 소화제라도 넣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수련을 받으면서 대학병원이나 파견병원 과장들에게 배워온 처방의 습관들로 인해 무언가를 더 많이 처방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했고, 환자들이 이런 간단한 처방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불안이 상승 작용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의 처방과 최대한의 상담을 진료 원칙으로 삼고 의사 생활을 하고자했다. ‘왕진의사’로 살아가기 전에 그는 원주의료생협에서 일했는데, ‘의료생협’은 지역 주민들 스스로가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만든 비영리기관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보통의 의사들이 버는 것에 비해 훨씬 적은 월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료생협에서 일한지 2년쯤 될 때 후배가 생협에서 일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1~2년 생협에서 일하고 해외 선교를 나가고 싶어 했다. 그 후배는 교회에서 생협이 하는 일을 했더라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좋아졌을 거라고 얘기했다. 전체 의사 중 의료생협에서 일하는 의사는 아마 0.1%도 안될 것이고, 생협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라고 한다. 

그가 일하는 생협에 한의사가 사흘간 아르바이트로 일하러 온 적이 있었다. 그는 한의사로 몇 년 일 해보니 돈맛을 알겠던데, 양방도 마찬가질 텐데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그는 돈맛이 아닌 다른 맛을 봐버린 게 아닐까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병원’이라는 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 그곳에서는 벌어진다. 그 병원에 다니시던 분 중 월세 5만원 방에 사시는 70대 할머니가 계셨다. 심장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할머니의 경제력으로는 불가능했다. 저자는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해도 이 세상에 대한 그분의 마지막 기억이 쓸쓸하지는 않게 해드리고 싶었다. 수술을 위해 의료생협에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보기로 했다. 할머니의 소식이 전해지자 조합원들은 십시일반 돈을 내는 것은 물론 병문안을 오고, 내복을 보내주고, 죽을 만들어오는 등 마음을 모았다. 

그렇게 수술은 잘 되었는데, 또 위장 천공으로 응급 수술을 해야 했다. 할머니는 저자에게 자신의 재산 찾는 방법을 알려주며, 죽으면 병원비에 보태라고 했다. 저자는 왕진의사가 아닐 때에도 가끔 필요에 따라 환자의 집을 방문하곤 했는데, 이 할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 냉장고에 붙어있던 손자의 엽서가 떠올랐다. 그리고, 입원 중인 할머니께 가져다드리기로 마음먹는다. 

회복되시고 나면, 할머니는 다시 그 5만원짜리 쪽방으로 돌아가서 남은 생을 보낼 것이다. 할머니는 앞으로 회복되어 이 병실을 걸어 나갈 수 있게 되면, 무언가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겠다고 하신다. 

또 다른 할머니는 손가락 관절염 증세로 병원에 오셨는데, 처방을 해드리며 찬물로 손빨래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습관대로 여전히 찬물 손빨래를 계속하셨고, 아프다며 다시 찾아오셨다. 저자는 생협 게시판에 중고 세탁기 구하는 글을 올렸고, 조합원에게 기증받아 할머니께 드렸다. 이 경우에는 소염진통제보다 세탁기 마련이 더 적절한 치료법이었다. 

어느 날은 할아버지 한 분이 병원 밖에서 퇴근 시간이 되도록 1시간을 기다리다 신문으로 싼 산나물을 저자에게 쥐어주셨다. 양이 얼마 안 돼 병원 직원들과 나눠먹으라고 줄 수가 없었다고 하시며. 그동안 진료실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손은 딱딱한 돌덩이 같았다. ‘이렇게 어렵게 나물 캐서 번 돈으로 우리 병원에 다니고 계셨구나’, ‘그 돈으로 나는 자동차를 샀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낡은 자전거를 끌고 가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밝지만도 아름답지만도 않은 우리네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그 따스함인 것 같다. 몸의 체온이 적정선을 유지해야 살 수 있듯 우리들 마음도 그런 온기 없이는 안 되나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병원이라니! 참 병원답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저는 호기롭지 못하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