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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순 Jun 27. 2023

'쓰잘데기없음'의 힘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독후 세번째 글

저자는 2020년부터 강원도에서 왕진의사로 살아가고 있다. 10년째 춘천에서 의사 생활을 하다 보니 더 이상 진료실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처음 만나는 환자들에 대한 반가움이 점점 줄어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마침 그 때, 수몰된 농촌 지역에 왕진하는 일을 제안 받고 기꺼이 그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의료생협에서 일할 때 가끔 왕진을 다니면서 좋았던 기억도 있었다.  

꼬불거리는 산길을 차로 한 시간 걸려서 가고, 할머니가 내주신 식혜를 마시는 ‘쓸데없는 과정’을 거치며 그는 깨닫는다. 그동안 자신이 환자들에게서 점점 멀어졌던 것은 너무 손쉽게 만났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속도가 돈이 되는 진료실 안에서는 가급적 빨리 간단하게 만나야 하는데, 바로 그 효율성이 자신을 외롭게 만들었음을. 

관계의 최고 형태는 ‘쓰잘데기없음’이라고, 의미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의미없음’이 주는 넉넉함이라고 그는 말한다. 힘들게 왕진을 가서 그 ‘쓰잘데기없음’을 즐기다보면, 자연스럽게 과잉 진료나 3분 진료는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저자는 수술의 힘에 매력을 느낀 적도 있었으나, 만성질환을 가진 분들과의 지지부진하고 쓸데없는 관계들이 좋아 가정의학과를 선택했다.

왕진을 가서 할머니에게 통증 주사를 놓다보면, “여기 옆집 송씨도 허리가 아파서 애를 쓰잖아. 허리 아프다면서 일을 할 건 다해.”라며 한 번 돌아봐달라는 마음을 전한다. 어느 마을에서는 연극인 공동체가 폐교에서 생활하면서 매주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을 한다. 그곳 할머니들은 무척 생기 있고 빛난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어르신 한 분을 건강하게 지키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러나, ‘발전’이라는 속도전의 과정에서 마을은 파괴되었다. 그리고 마을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과 노인들도 사라져간다. 

자식 손녀 등 가족들과 사는 할머니의 집에 들어선다. 자신들을 보자마자 환하게 밝아지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1~2초 만에 사람 표정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이 놀랍다.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라는 책 제목은 이런 눈맞춤의 순간들을 표현한 것일까 싶기도 하다. 할머니는 3년 동안 굳어진 무릎 관절 때문에 골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중이다. 방에서는 지린내가 난다. 요즘 소변을 너무 자주 봐서 힘들다고 하신다. 

방에 참숯이 놓여 있길래 “어, 어머니. 이 참숯 어디서 나셨어요?”라고 물었더니 “아 그거? 방에서 지린내 난다고 우리 애들이 갖다 놨어.”라고 하신다. “그래요... 숯 갖다 놓으면 좋아요. 습기랑 안 좋은 것도 빨아들여 준대요.”라고 답하며,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행여 할머니는 정작 자식들이 피하고 싶은 것은 그 방의 지린내가 아니라 그 지린내를 내는 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라고. 

축축하게 다 떨어져가는 벽지, 솜덩어리를 대충 싸놓은 베개, 수신 불량 티비,... “이제는 죽어야 하는데 죽지도 않아” 아흔이 다 된 할머니는 노쇠한 육체 때문이 아니라 그 노쇠한 육체에 대한 사람들의 대접 때문에 죽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중풍으로 반신마비가 되신 할아버지가 설사에 걸려서 방문을 했다. 기저귀의 똥을 보고 상태를 파악한다. 사타구니와 고환 밑에는 피부염이 생겼는데, 똥 묻은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깨끗이 닦아드리고 말린 다음 스테로이드 로션을 발라드렸다. 같이 왕진을 다니는 간호사 최선생님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화장실로 모시고 가서 똥 기저귀를 능숙하게 갈아드린다. 당부를 하고 떠나려는데, 할아버지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신다. 아마도 고맙다는 무언의 말씀이신 것 같다. 그 말 없는 말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리면서도 따뜻해진다. 

최선생님은 20여 년간 방문간호 일을 해온 간호사인데, 어르신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인 분이다. 그러나 방송, 신문 등에서 인터뷰를 요청할 때는 경력이 짧은 저자가 의사라는 이유로 중심인물이 된다고 한다. ‘유퀴즈’에도 저자가 나온 적이 있던데, 이 때도 그런 경우였을까? 대부분의 의사들은 경력과 무관하게 간호사보다 자신이 당연히 윗사람(?) 또는 중요인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왕진을 다니는 집들 중에는 20여년을 동거하시는 80대 노부부의 집도 있다. 할아버지는 기저귀를 하지만, 옷에 오줌을 지리는지 만졌던 손에선 지린내가 나고 바지에서도 심한 냄새가 났다. 젊었을 적부터 담배를 피우신 할머니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계신다. 이틀 전 입원했다가 할아버지 수발 걱정에 억지로 퇴원을 하고, 기관지 확장제를 쓰신다. 넷이나 되는 자식들 중 하나도 찾아오지 않는 삶이지만, 서로를 마음으로 몸으로 챙기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며 저자는 따뜻한 통증을 느낀다. 

어떤 집에 들어서면 할머니가 이집에서 제일 어른이구나라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들기도 한다.  저자는 할머니가 직접 키운 장미꽃다발 선물을 받았다. 편찮으시지만 할머니의 삶은 여유롭고 편안하다. 

어느 날은 소양호가 내려다보이는 깊은 골짜기의 할머니 댁에 왕진을 갔다.    

“할머니, 옆집에 사시는 분 있어요?” 

“응, 애가 하나 살아.”

“이야, 이 산골에도 애가 있어요? 몇 살인데요?” 

“응, 아마 일흔 정도 됐을 걸?” 할머니의 연세는 아흔 셋이었다. 

왕진을 가는 시간 대부분은 슬픈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세상의 중심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삶은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웃음을 안겨주기도 하고, 따스한 사랑의 손길을 만나게도 한다. 그 덕에 우리는 살아가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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