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미숙해
친구가 “우울해서 빵 샀어”라고 했을 때,
대박, 무슨 빵 샀어?라고 물으면, 천하에 냉랭 냉정 공감능력 제로인 대문자 T라고 했더랬다.
진정 친구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빵, 보다는 우울, 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고, 같이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왜 우울해? 괜찮아?” 하고 말해야. 만. 한. 다.
누군가 상대방이 우울하다는 감정을 표시하면, 그 감정에 응당 반응해 주는 것이 리액션의 정석이라고, 그리 복잡하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가끔 무언가 엄청나게 우울한 날이 올 때가 있다. 우울한 일이 겨우 지나갔는데, 또 우울한 일이 오기도 해서, 아, 진짜 뭐 같네, 요즘 나 왜 이러나, 싶기도 한다. 우울감이 또 다른 우울감으로 이어지고, 또다시 새로운 버전의 우울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반복되면, 이젠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력함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그래, 답 없는 속상한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그라들고, 익숙해져 가는 거지. 그렇게 순간을 극복해 가고, 이겨내 가면서 사는 거니깐...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어릴 땐 무슨 이벤트라도 생기면 마치 그 일이 전부인 것처럼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나이가 먹어 그렇게 순간을 전부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어떤 순간에 괴로운 상황이 오더라도, 그걸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그 일들과 감정들은 다 지나간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나이가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여도 그런 일이 생기면 온몸으로 우울해하고 괴로워하는 나이다.
우울한 그 순간을 버티다 보면, 엄청나게 맵고 기름진 음식을 시켜 먹거나, 술을 퍼먹어보거나, 이때다 하고 고칼로리 살찌는 달달한 빵과 디저트를 마구마구 먹기도 한다. 핵 맛있다고 했는데 비싸서 굳이 안 먹었던 음식을 사 먹기도 하고, 갖고는 싶었는데 굳이 사야 할까 했던, 장바구니에 담아둔 옷을 상하의 세트로 지르기도 한다. (내가 어제 오늘 이걸 다 했다는건 안비밀)
그러니, 우울해서 ‘빵’을 샀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면서 결국엔 ‘빵’을 산 것이기 때문에, 그의 ‘빵’보다는 ‘우울’에 주목해 주는 것이 맞다.
얼마나 우울했으면 빵을 샀을까,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것이다.
내가 비록 대문자 T라 미숙하지만, 이제는 (학습된 것이 아닌) 진심으로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왜 우울해? 괜찮아? 하고.
(feat. F들은 정말 감정 천재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