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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Oct 11. 2019

백수의 심심한 하루  

경영컨설턴트와 백수의 1분 1분

  알람 없이 늦은 시간에 일어난다. 눈 뜨자마자 바로 씻으러 가진 않고 침대에서 꿈지럭 대며 카톡이며, 인스타며, 페이스북이며, 네이버 화면을 읽어내려 간다. 지겨워질 때쯤이면 몸을 일으켜 밀린 손빨래를 하고, 냉동실에 얼려둔 밥 한 공기, 반찬들을 꺼내 밥을 챙겨먹고, 쇼파에 누워 티비를 본다. 티비를 보는 것이 지겨워지면 신문을 펼치고, 책을 읽다가, 집중이 되지 않는다며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 앞 까페에 나가 뜨아를 시켜놓고 신문과 책을 읽는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딱히 할 일이 없고, 심심하다.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메모장에 적어놓던 시간들이 있었다. 9:00-9:20 A 보고서 작성, 9:20-9:40 팀원 산출물 검토, 9:40-9:50 회의 준비, 10:00-12:00 회의. 오후 6시까지도 모자라 야근을 하곤 했던 그 때를 살던 나는, 도대체 어떻게, 무엇을 위해 그랬나 싶다.


2015년 뉴욕, 늘 이런 빌딩 숲에서 회색빛 하루를 보냈었지.


  24시간이 이렇게 길었나. 무려 1,440분이 나의 하루로군. 그 중 1분 1분을 꼭꼭 씹는다. 백수의 생활은 생각보다 편하거나 행복하진 않다. 멍 때리는 1분 1분을 보내며 내가 뭘 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는 생각을 가끔 한 번씩 하곤 한다.


  ‘넌 늘 바쁘잖아, 연예인 스케줄’ 지인들은 나를 놀렸었다(?). 또는 핀잔했다. 그런데 그렇게 바빴던 시절의 나는 도대체 뭘 하며 그렇게 바쁘게 살고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또 알 수가 없다. 누군가 나에게 준 일을 하기 위해, 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월급을 벌기 위해. 어쩌면, 내가 선택하기보단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일지도.


  나의 1분. 사회의 눈으로 보기엔 컨설턴트로 바빴을 때의 내 1분은 엄청나게 의미 있어 보이고, 지금의 놀고 있는 내 1분은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 같을 테지. 실제로 내가 느끼는 전과 지금의 내 모습도 마치 다른 사람 같다. 그런데, 바쁘다(?)고 1분 1분을 의미 있게 사는 것도 아니고, 할 일이 없다고 의미 있는 1분 1분을 보내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나는 매우 심심하지만, 그렇다고 아직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일은 어떤 1분 1분을 보낼까.


2019년, 회사 때려치고 다녀온 스페인 Cadiz 해변. 파랗고 심심한 시간을 보내고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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