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괜찮지 않은 날도 있다.
퇴사하고 한 달 유럽여행
DAY 05. 스페인(마드리드)
#혼자 여행 체질인가
혼자 여행을 다니면 가끔 "어떻게 혼자 오실 생각을 하셨어요? 대단해요" 같은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대단할 건 없다. 같이 올 사람이 없었을 뿐. 대학생 때는 친구와 함께했던 유럽여행이지만, 20대 후반이 되니 같이 시간을 맞춰갈 친구가 없었다. 혼자 여행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혼자 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느끼고 싶었다.
퇴사를 하고 오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혼자 생각할 만한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고, 여러모로 혼자 오길 잘했어!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 아침에 천~천히 화장하고 나가고 싶은 시간에 나갈 때.
- 조용히 앉아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멍하니 경치를 감상할 때.
- 일정 중간에 내 맘대로 가고 싶은 곳을 바꿀 때.
- 모르는 사람들(외국인 포함)을 만나서 소통할 때.
#나 혼자 다 먹는다
매 번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할 수는 없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꼭 혼밥을 하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밥 먹는 시간대를 애매하게 놓쳐서, 점저(점심&저녁)를 먹게 되었다. 동행에게 추천받은 Mas Al Sur라는 곳에 가서 메뉴 2개와 상그리아를 한 잔 시켰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을 것 같았지만, '다른 것도 먹어볼걸..' 하는 아쉬움을 갖고 싶지 않았다. 상그리아가 먼저 나왔다. 음료 위의 색색의 과일들이 내 시선을 빼앗았다. 홀짝홀짝 한 잔을 금방 비워냈다.
식사 메뉴로 대구 요리와 감바스(하프 사이즈)가 나왔다. 예상한 대로 혼자 먹기엔 꽤 많았지만, 음식을 남겨서 손해 본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먹방 유투버처럼 오물오물 거리며 한 입 두 입 음식을 해치워 나갔다. 혼자 음식에 대한 리액션도 했다.
'음~! 오! 맛있는데~? 대박이네'
결국 시킨 메뉴를 거의 다 먹고 배가 빵빵해져서 가게를 나왔다. 과식으로 배가 당기는 와중에도 '혼자서도 엄청 잘 먹었지!' 싶어서 괜히 뿌듯했다.
#왜 나만 혼자야
배를 가득 채운 뒤, 전날 신청했던 야경 투어를 들으러 왔다. 모이는 시간에 맞춰 솔 광장에 도착했더니, 이게 웬걸. 나만 혼자 온 사람이었다. 지난번 미술관 투어에서는 혼자 온 사람들이 그래도 꽤 됐는데, 이렇게 나만 혼자라니. 내가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다들 끼리끼리 돌아다니고, 이미 무리가 형성되어 있어 그런지 끼기가 쉽지 않았다.
가이드님은 애꿎게 자꾸 자유시간을 주셨다. 자유시간 20분이 왜 이렇게 긴지.. 최대한 천천히 돌아봤는데도 시간이 자꾸 남았다.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대고 포켓몬 고를 켜서 게임에 열중하기도 했다.
여태껏 혼자 다니면서 느껴본 적 없던 '소외감'과 '외로움'이 들었다. 점심까지만 해도 씩씩하게 다니면서 자유로움을 만끽했는데.. 여러 무리들 중에 혼자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속으로 비교하고 약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내 마음을 숨기려고 투어 내내 쿨한척하고 가이드 님께 자꾸 말도 걸고, 물어보고 사진도 찍어달라고 했다.
약한 나는 싫었기 때문에, '혼자가 좋은 씩씩한 여행자'가 되길 선택했다.
#혼자라도 괜찮아
친화력이 넘쳐서 자연스럽게 무리에 녹아들고, 친구를 척척 만들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 용기를 내서 시도를 했는데도 뭔가 잘 이어지지 않으면 더 슬퍼진다. 내 마음이 단단하지 않아서 외로움을 느끼는 걸까? 아직 고수 여행자의 길은 멀었다. 더 단련해서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숙소에 돌아가서 야경 투어에서 찍은 멋있는 독사진으로 카카오톡 프로필을 바꿨다.
기 억 에 남 는 순 간.
팁.
* 마드리드 타파스 음식점 Mas Al Sur
- https://goo.gl/maps/MRmkJjiQwS72
- 한국인 꽤 있는 편, 직원분 친절함.
- 상그리아 데코레이션이 예쁘고 맛있음. 감바스에 나오는 새우가 탱글탱글하고 맛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