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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니니 Mar 04. 2019

꼼꼼한 여행 일정? 그냥 놀아보자

하루라도. 계획 없이. 자유롭게.

퇴사하고 한 달 유럽여행

DAY 06. 스페인(마드리드)


#한 달 자유여행 일정 짜기. 꽉 채우는 건 불가능 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설렘을 갖고 일정을 짜곤 한다. 어디를 가볼지, 무엇을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나도 핸드폰으로 '마드리드 맛집' '마드리드' 등을 틈날 때마다 검색하면서 내가 꼭 하고 싶은 것들을 한 두 개씩 챙겼다. 그리고 구글 맵으로 위치를 찍어놨다가, 비슷 위치에 있는 것들끼리 모아서 하루를 묶었다.


투어처럼 시간대별로 세세하게 하진 못하더라도, 언제/어디서/어디로 넘어가는지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정리를 해서 여행 중간마다 핸드폰으로 확인을 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기간이 길어서, 도저히! 모든 도시에 대한 정보를 전부 알아갈 수는 없었다. 첫 3일 정도는 세부 일정에 1개 이상은 '~하기'가 있었는데, 4일 차 정도부터는 군데군데 비어있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일정이 없는 날은 전날에 뭘 할지 찾아보고, 정하곤 했다.

여행 일정표. 세부일정은 여행을 다니면서 구글 앱으로 실시간으로 추가/수정했다.



#오늘은 뭘 할까?

언제나 여행 일정에는 변수가 있고,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오늘의 일정은 원래 근교 도시를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동행은 구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혼자 가기로 했다. 그런데 흠칫! 하면서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땐, 늦잠을 자버린 뒤였다. 


심지어 오늘, 1월 6일은 스페인의 명절 주현절이다. 거의 대부분의 마트나 상점 그리고 관광지가 주현절에는 문을 닫는다. 마드리드에 있는 기간을 생각보다 많이 잡아서 (보통 사람들은 마드리드를 1~최대 3일 정도 머무르는 것 같다.) 웬만한 관광지는 거의 간 터였다.


일단 뭘 할진 모르지만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동행을 구하는 카페에서 시내 동행을 구한다는 글을 보게 됐다. '에잇 그냥 사람이나 만나서 놀아야지' 싶은 심정으로, 동행 요청을 했고, 연락을 한 지 30분 뒤에 바로 만나기로 했다.



#이젠 또 뭘 한담!!

급작스럽게 약속을 하고 만난 동행은 남자 1명, 여자 1명이었다. 난 투어도 듣고 가까운 곳은 이미 다 가봐서, 가이드처럼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마요르 광장이라는 덴데, 마요르가 뜻이 major래요. 광장을 에워싼 건물들에는 주로 사무실이나 여행 관련 업체들이 들어와 있는데, 그게 여기가 시끄러워서 사람이 살기는 힘들어서 그렇다나 봐요.

어쩌고 저쩌고...."


투 머치 토커가 돼서 가이드처럼 3시간 주절대며 시내를 구경한 뒤, 점심을 먹게 됐을 때 사건이 발생했다. 같이 동행했던 언니분이 상그리아를 드시고 취한 것.. 식당의 상그리아가 와인 비율이 많아서 좀 독하긴 했지만, 문제는 언니의 주량이었다. 소주 한 잔.. 언니가 마신 상그리아도 소주잔 기준 한 잔..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땐 이미 언니가 발끝까지 두근거린다고 한 뒤였다.


(나는 이다음부터 동행들과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게 될 때는 주량을 꼭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대로 밖에 다니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같은 숙소인 두 분을 귀가 조치시켰다. 일행과 헤어지고 숙소로 다시 되돌아오니, 아침에 했던 고민이 '또다시' 시작됐다. 이젠 또 뭘 한담!!! 뭘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또다시 네이버를 뒤져야 하는 건가. 그냥 잠이나 자버릴까.. 저녁은 뭘 먹어야 할까..



#오늘은 또 뭘 할까?

'또다시' 카페에서 동행을 구하는 게시판을 훑기 시작했다.

그중 선셋을 보면서 맥주를 마실 사람을 구하는 글을 발견했다. 오후 4시까지 기다린다고 했는데, 내가 발견한 시점은 3시 55분쯤. 후다닥 댓글을 달았고, 연락이 닿았다!


다행히 서로 근처에 있어, 지하철을 타고 Parque del Cerro del Tío Pío에서 보기로 했다.



#언덕에 앉아서 맥주 마시면서 선셋 보기

만나기로 한 장소의 이름은 생소했지만, 위치가 어디서 본 것 같다 싶었다. 생각해보니 호스텔에서 체크인할 때 호스트가 지도에 표시해준 곳이었다. 선셋을 보러 가기 좋은 곳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곳이라고.


오늘의 두 번째 동행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면서 텔레토비 동산 같은 곳을 올라가다 보니,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 돗자리를 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대부분으로 보였고, 무엇보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어서 정말 유럽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유럽여행'이라고 생각했을 때 내가 원했던 느낌은 '여유로움 그리고 자유로움'이다. Parque del Cerro del Tío Pío는 그런 분위기에 가까웠던 공원이었다. 날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가롭게 앉아 시간을 흘려보냈다.


같이 간 동행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선셋을 보면서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늘 돗자리를 들고 다닌다고 했다. 그 사람만의 개성이 있어서 멋있구나 싶었다. 나만의 여행 콘셉트가 있으면 더 특별한 여행이 될 거다. 음.. 난 쿠킹클래스 이려나?


돗자리에 앉아서, 캔맥주를 마시면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대부분 현지인이었는데, 그들이 사진 찍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고, 수채화 색 같은 분홍색과 하늘색 그라데이션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봤다.


노란색 동그라미 해가 들어갈 듯 말듯할 때는 시간이 천천히 가다가, 사라질 때는 너무 빠르게 쏙 들어가 버려서 아쉬웠다.



#여행 계획, 없어도 좋다.

함께한 동행분이 알고 보니 나와 같은 호스텔이었다. 숙소에서 한 번도 한국인을 못 본 것 같았는데, 이런 우연이 있다니.


곧 저녁 먹을 시간이 됐고, 숙소에 가서 동행분의 삼겹살과 샐러드를 먹기로 했다. 원래 양파도 있었는데, 누군가가 훔쳐서 다른 먹을 게 있나 찾아보던 중에 Free Food 칸에서 신라면 2개와 김치 통조림 1개를 찾았다. 만세!


저녁을 한식으로 엄청 맛있게 먹고 호스텔 근처 바도 갔다.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려서 돌아다닌 하루였다. 아침엔 가려던 근교 여행도 못 가고, 계획이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여러모로 잘 안 풀릴 것 같았지만, 다행히 재미있는 사람들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여행을 오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 욕심으로 일정을 가득 채우게 되곤 한다. 물론 그렇게 꽉 찬 여행이 재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쉬러 온 여행이라면, 하루 정도는 비워보면 어떨까.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정을 그때그때 채워나가는, 계획이 없고 불완전한 일정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됐다. 


참, 그러고 보니 정신없어서 그랬는지,

어제 느꼈던 혼자라는 소외감은 온데간데없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

점심으로 먹은 버섯 돈까스.
해질 무렵에 간 Parque del Cerro del Tío Pío(티오피오 공원)
일러스트 같은 하늘 그리고 건물들.엽서로 꼭 만들어야지.
핑크빛 하늘 노을이 노랗게 물드는 걸 보며 산미구엘 맥주 Cheers!
숙소로 돌아와서 먹은 첫 한식.



소소한 팁.

* Parque del Cerro del Tío Pío

  - 위치 : https://goo.gl/maps/cMJecSrQTmF2

  - 자유롭고 한적한 분위기에서 선셋 보기 좋은 곳. 중심지(솔 광장)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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