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는 대답한다. "오, 역시 신기하네요. 그나저나 애교가 많으면 엄청 귀엽겠다. 약간 개냥이 스타일?"
2. "우리 고양이는 좀 무뚝뚝해요~"
이런 말이 오면 난 이렇게 대답한다. "역시 다 해당되는 건 아니네요. ㅋㅋㅋ 도도냥이인가봐요 도도냥이."
3. "엥? 우리 집 고양이는 아니던데! 애기 땐 깜찍했는데 그뒤로 중성화해서 그런가? ㅋㅋ"
최대한 농담으로 받아치려고 노력하면서 대답한다. "자아? 성격?도 변할 수 있다니 중성화란 무시무시하네요 ㄷㄷ ㅋㅋㅋㅋ"
1. 예전 회사에서 저런 질문을 했을 때
내 언어가 너무 무거운 탓에 분위기가 좌초되었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저 새끼 대체 무슨 소리하지? 수컷 고양이가 애교가 더 많은 게 맞는지 아닌지(포괄적이고 객관적인 진실) 어떻게 알아. 우리가 논문을 파헤친 것도 아니고. 그냥 남자(예전 회사 동기)네 고양이 얘기(개인적인 개별 사례)를 하는 건데, 또 맥락없는 소리 한다.'
모호하게 질문했다는 건 이해한다.
질문을 언뜻 봐서는 진짜인지 아닌지 판가름 해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컷 고양이는 애교가 많다던데, ㅇㅇ님네 고양이도 그런가요?"
라고 질문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그치만...
아니, 그치만이고 자시고
맥락 상으로 '통념이 저러하다는데 나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한 거고, 나의 경우가 다르면 아닌거거라 생각하겠지'로 자동으로 생각 못하나? 아니 대체 왜??
그렇기에 한편으론 억울했다.
저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관찰해보니 사람들이 매 대화마다 문장과 뜻을 그대로 연결해서 말하기만 하는 건 아니고(즉 나같은 사례는 숱하게 찾을 수 있고),
맥락 상으로는 이해되는 말인데, 왜 내 의도를 왜곡해서 받아들였을까?
이건 내 이미지가 진지한 연구자 스타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성향에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 나는 학자도 교수님도 아니다. 즉 일반인 수준인데 그런 성향이 조금 있는 정도일 뿐이다.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나 또한 스몰톡 상황에서 개개인한테 엄중하게 확실시된팩트를요구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단 말이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저들이 모를 거라는 것 쯤은 진작에 파악한다.
만약 이미지 탓이 맞다면 어디서부터 잘못 잡혔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저렇게 받아들일 경우의 수까지 계산해서
말하는 순간순간의 문장을 오해의 여지 없이 다듬어서 뱉을 정도로 화술이 뛰어나지 못하다.
결국 좌초된 분위기를 따라 내 평판도 침몰하게 되었다.
그 무리에 머물 때의 나의 평균 기분도 덩달아 꼬라박혔다.
2. 최근에 어떤 다른 무리에서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리 고양이는 애교가 많다"고.
나의 학자 같고(?), 뚱딴지 같고(?), 핀트를 벗어난(?) 질문은 비로소
스몰톡의 강에서 유유히 부유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나의 질문까지 싣고서도 순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점을 느꼈다.
구체적인 발화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우리 무리에 섞일만한 사람인지, (서열 상으로) 존중 받아 마땅한 사람인지, 평소 어떤 이미지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적절한 리액션.
사실 맞는진 모르겠다.
2번째 사례에서 발화자가 혹시라도 나랑 비슷한 사람이어서 숨은 의미를 이해했던 건지, 아님 두번째 발화자가 대화에 좀더 능숙한건지, 아님 겁나 똑똑해서 그 짧은 시간에 이상한 문장에서 진의를 파악해낸건지 뭔지...
그렇지만 확실한 건
분명 같은 질문이었는데도 어디서는 문제가 안되었다는 거다.
그렇다면
"너는 말을 이상하게 해"
"맥락이 없어"
"소통에 문제가 있어"
이런 말을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있을까?
물론, 내가 남들과 소통이 안되는 이상한 말 제조기, 헛소리 괴물인 게 맞을까봐 겁이 나긴 한다.
나랑 어울리는 사람들이 내 말을 참아주는 거였으면 어떡하지 하고.
하지만 말이지.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주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쉽게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나는 치부당한 거다.
나도 남들 말이 매번 듣기 좋고, 매번 이해가 잘되는 것만은 아닌데도 말이다.
애초에 대화 포인트나 사고방식 같은 게 달라서 그런 거 아니었을까?
침대에 대해 말하는 상황에서
"관련한 괴담이 있고 관련한 영화가 있고 어린애들이 그것을 무서워한다"고 했을 때
'침대 밑 괴물'을 설명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뚱딴지 같은소리를 한다고만 받아들인다면
그건 내 탓만은 아니지 않을까?
나는 일반적이고 유명한 침대 밑 괴물에 대해 얘기한 건데, 쟤가 말하는 거니까 유명하지 않은 어떤 신화 속 어려운 무언가를 말하는 거겠지라고 무의식적으로 편견 가지면 그게 내 탓일까?
또, 침대와 키 얘기를 하다가
'그리스로마 신화에 본인의 침대 사이즈랑 안맞으면 잔인하게 죽이는 살인마가 있다'고 언급했다는 이유로 사이코패스인줄 알았다고 하면, 그게 내 탓일까?
그냥 나는 우리 세대가 어린 시절에 흔하게 읽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만화책에서 저 얘기가 인상깊었고, 관련 얘기가 나온 김에 흘러가는 느낌으로 언급했을 뿐인데 말이다.
뜬금없다고 생각하면 몰라도 사이코패스가 된다면...
예전 회사 동기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나라면 저런 단서 가지고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판단하는 건 논리적으로 어긋나므로 당연히 안그랬을 것이다. 그냥 신화에 관심 있거나 아는 지식 얘기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 또는 키워드를 연상하는 식으로 사고하는 사람 정도로 추측했을 것이다. 동기는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면 성격이 못된 거겠지.
아무튼 그동안 내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주류의 대화방식과 다른 거겠지.
나를 '문제시'하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너랑 대화가 안통하는 내가 티키타카 잘되는 친구가 있는 이유는 뭘까? 너 외에 사람들과 성공적인 대화 경험이 있는 이유는 뭘까? 나 주제에 누군가랑 대화하면서 밤샌 적은 어떻게 있었을까? 어떻게 누군가와는 몇시간을 통화했었을까?
그건 너랑 나랑 대화 방식이 달라서야. 그리고 네가 날 좋아하지 않아서,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서, 대화할 의지가 없어서였어. 내가 표출할 수 있는 리액션의 정도가, 네가 원하는 리액션의 정도와 달랐기 때문이기도 해.
그런데 어떻게 이걸 누구만의 문제라고 단정지을 수 있어?
사실 나도 알고는 있다.
내가 모든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말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어떤 상황에선 긴장한 탓에 엉뚱한 말을 뱉기도 하고, 어떤 농담이나 말은 제대로 받아치는 법조차 모른다.
어떻게 보면 당연함... 화술이 발달한 케이스도 아니고, 내성적이고, 비슷한 애들과 유년기를 지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내 소통 역량이 정말로 문제라고 한들
사례2처럼 말을 개똥으로 해도 찰떡처럼 알아듣거나, 무슨 소리냐고 되물어주는 착한 사람과 지내면 그만이다.
더이상 사례1에 등장하는 예전 회사 동기나, 나를 괴롭히는 스토커처럼 어리석은 사람들과도 잘지내려고 애쓰지 않으리. 나같은 류를 아니꼬워 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낙인찍게 내버려두면 안된다.
이렇게 결심해놓고 또 사람의 악의를 잘 못읽어서 어떻게든 잘지내보려고 나름대로 애쓰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