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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오션 Jan 29. 2023

명예인간 시험

기회는 많았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이 되어라. 인간이 되어서 우리들 인간답지 않은 놈들의 희망이 되어라. 

왜냐면 나는 이미 어머니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산으로 들로 늪으로 지하로 동굴로 연료와 땔감을 모으러 다니는 동안 덜그럭 덜그럭 소리를 내며 학교로 갔다. 가서 인간이 하는 일을 따라 했다. 의자에 물렁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일부터 사뿐사뿐 부드럽게 걷는 일 등의 모든 행위를. 


제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나는 엉덩이가 딱딱했다. 의자와 궁뎅이 무엇 하나는 닳았다. 몰랑몰랑한 소파에 앉으면 솜을 터트려댔다. 앉으려고 할 때마다 듣기 싫은 뚜둑뚜둑 소리가 났다. 걸을 때도 끼익끼익하고 소리가 났다. 사뿐히 걷는 건 아무리 봐도 따라 하기 힘들었다. 내 동작에는 단계가 있었다. 


처리 과정이 느려서 대답할 때는 버퍼링이 걸렸다. 누군가 뭘 물어보면 한 박자 느리게 어물어물 대답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인간이 되기만 하면 모든 건 신화가 된다. 인간이 되는 데는 인간다운 게 꼭 필수는 아니다. 네 능력을 증명해. 그러면 괜찮아. 


어느 날부터는 우리에게 원어민 선생님을 가져다주었다. 인간인 선생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생한 인간어를 가르쳤다. 나는 이것만큼은 잘 배울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말았다. 다들 자신만만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의욕이 넘치기는 했다. 특히 아주 열성적인 애들은 원어민 선생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 적었다. 어떻게 발음하는지 자기들의 언어로 각색하여 적었다. 나도 따라 적었다. 


입을 통째로 열어 발음하는 것은 쉬웠지만 혀를 굴려 내는 발음은 아무리 해도 어려웠다. 왜냐면 나는 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만 특별히 열등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은 부리가 너무 길어서 소리 내기까지 오래 걸리거나 귀가 없어 자기가 어떻게 이상하게 발음하는지 알아채지도 못했다. 그런 거에 비하면 나는 양호한 편이었다. 게다가, 손과 손가락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서 인간들이 하는 것처럼 공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인간어를 말하는 건 너무 어려웠으니, 당황스러웠다. 혀도 없고 뇌도 없고 가진 것이 별로 없는데 귀다운 것이 있다고 부러워하면 어떡해? 다른 발음은 버벅거리는걸. 손 있는 애들도 흔하잖아, 너도 손가락 세 개는 있잖아.




어머니 양철로봇은 장학금을 받아오지 못해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인간만이 인정받는 세상에서 명예 인간이라도 되는 길은 어머니와 나와 모든 이의 목표였다. 명예인간이 되려면 바늘구멍 같은 등용문을 통과해야 했고 되려는 이는 많았다. 


어머니 시절에는 운 좋게 큰 활약을 한 소수만이 명예인간 자격을 받았다. 우리 시대에는 누구나 시험을 통과하기만 하면 명예인간이 될 수 있었다. 누구나 열심히만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 모토는 그랬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겉보기에 투박한 낡은 로봇도 도전할 수 있게 했으니까, 그리고 그 기회의 문은 항시 열려 있었다. 시험 응시료만 내면 언제든 재도전할 수 있었다. 


그러니 기회는 많았다. 매일 아침 인간어 시험이 열렸다. 매일 낮 기능시험이 열렸다. 나를 포함한 많은 비인간들은 매일 같이 도전하고 또 낙방했다. 그래도 다음날이면 또 도전했다. 마치 쳇바퀴 돌 듯 그 일과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시험장 뒷마당엔 실패할 자들이 낸 시험응시료가 마치 산처럼 수북이 쌓였다. 아마 인간들은, 그 돈으로 먹고사는 듯싶었다. 그걸로도 충분했으니까 실제로 일하지 않았다. 그런 날이 지나다 보면 운 좋게 몇몇은 통과했다. 그들을 배출해 낸 부락엔 어수룩하게 짜인 축하문구가 걸렸다. 그는 부락의 자랑이 되었다. 나도 꽤나 많이 도전했었다. 그리고 나는 실패한 자들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허무감이 들어서 도전하기를 꺼렸다. 어머니 양철로봇이, 응시료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도전하라고,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이른 아침 시험장으로 나설 때마다 우리 집 지붕의 판자 하나씩 뜯겨나가는 것을. 




몰래몰래 동경하는 것쯤은 있었다. 인간들의 서사시. 응시료만으로 잘 먹고 잘 살 인간 놈들도 고난과 역경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대리만족하고 싶어 했다. 서사시로 인간들은 영웅과 사랑을 노래했다. 우리 원어민선생님은 인간이셨고, 엉성한 실력으로 즐겨 부르셨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웅장한 녀석들마저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내게 무수한 감동을 줬었다. 의지 강한 용사님은 악당을 무찌르고 공주님을 얻는다. 공주님을 구하려는 용사님의 행보는 얼마나 애틋하며 그 모험의 과정은 또 얼마큼 찬란한가? 나도 언젠가 사람이 되어서 멋진 사람과 운명적인 만남을 하고 태양신에게 칭송받고…..


나도 서사시를 흉내 냈다. 다른 아이들이 인간어를 익힐 때 서사시나 끄적였다. 그 시간에 고철로봇은 숲으로 지하로 광산으로 판자와 연료와 부품을 캐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거뭇거뭇해진 얼굴을 닦아내며, 집중해서 공부하여 어서 인간이 되어라,라고 가끔 이르곤 하셨다. 


고철로봇의 관절이 헐거워져 재조립이 필요한 날이면 내가 대신 연료를 구해오저 하였으나 '아서라 아가야, 어서 인간이 되는 길이 우릴 위한 길이다'라고 이르셨다. 




하긴 맞는 말이다. 내가 명예인간이 된다면 우리 신세는 훨씬 필 게 분명하다. 인간 구역에 거주할 수 있고 대우받을 것이고 연료를 먹어치울 수 있을 것이고 나도 이름이 생길 것이고 어떠한 직책을 받아 그 이름을 새길 것이다.


인간만이 머무를 수 있는 화원에 고철덩어리가 방문한다는 건 얼마나 동화 같은 이야기인가? 내가 그들을 우러러본 만큼 누군가가 우릴 우러러보면 얼마나 짜릿할까? 촌스러운 양철로봇의 몸으로 인간 자격을 얻은 건 누가 봐도 존재의 승리다. 존재를 극복하고 뜻을 일군 나의 일대기를 음유시인들이 즐겨 부를 테지. 인간들도 감동할 이야기다. 


어머니 양철로봇의 헌신은 또 다른 서사시가 되어 풍문을 떠돌 것이다. 이야, 명예인간 자리를 포기하고 자녀를 크게 길러낸 아름다운 모정이 여기 있구나, 하고. 우리 동네는 나를 헐레벌떡 자랑할 것이다. 우리가 배출해 낸 이름 없는 로봇. 그가 살던 집. 나를 모르거나 나를 극하던 존재들도 자랑할 때 내 대명을 읊을 것이다. 나를 잠깐 가르쳤던 원어민 선생님은 나 같은 것들한테서 날아오는 무수한 질문에 시달릴 것이다. 비법이 뭐예요? 어떻게 가르쳤나요?


이런 상상을 하는 건 즐겁다. 그렇지만 상상일 뿐이다. 결국 일어나지 못했던 일이다. 고철로봇이 바라는 미래도 이런 것일 텐데. 




그래도 나만 나약했던 건 아닐 테다. 다들 나처럼 도망치는 수단을 갖고 있을 터였다. 내가 좋아했던 서사시 말고도 우리 미미한 놈들은 제 나름대로 인간이 되기 위하여 갖가지 문화를 만들어냈다. 인간이 신을 법한 예쁘장한 신발에 발바닥을 꾸겨넣는 것을 향유하는 놈들이 있었다. 자기 발에 콤플렉스가 있는 오리나 자기 발이 자랑인 토끼, 발 모양이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의외로 인간들이 좋아해 주는 닭 등. 


인간과 조금이라도 닮아지려고 욕보이거나 그들에게 사랑받는 꿈을 꾸고 귀여운 애완동물이 되고 싶어 하고, 인간들끼리 싸울 때는 그 목격담을 공유하고. 인간들도 서로 힘들더라. 그들도 가여워. 


어떤 여우는 제 잘난 듯 지 생각을 떠벌리고 감언이설로 꼬드겼다. 멍청해서 가죽이나 뺏기는 악어가 감명받은 표정으로 옆에 가만 서면 악어새는 여우 말을 거들었다. 말만 들으면 벌써 인간 다 되었다. 재수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저 놈들은 인간 정신을 복사하고 싶어 한다. 


나도 겉보단 내면을 가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었다. 어차피 겉모습은 인간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인간 놈들이 생각하는 진리를 체화하기 위해서 없는 뇌로 많은 생각을 했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그들이 말하는 정답은 무엇인가? 나는 양철로봇으로 태어났으면 무슨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했을까? 나는 왜 인간이 아닐까? 너무너무 멋진 인간들과 똑같이 사고하고 싶었다. 


그들은 영웅이 되라고 하였다. 명예로운 인간이 되려면 먼저 명예 인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에게는 명예 인간 자리도 충분히 영예로운 업적이다. 인간이 영웅이 되는 과정은 우리가 인간이 되는 과정과 닮아있다. 그들은 어려운 시험을 해내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의지와 끈기가 있으면 못될 것이 없어. 처음부터 잘난 존재 많이 없어. 


맞아. 발바닥이나 꾸미는 토끼, 잘난 척하는 여우, 부품을 탓하는 나, 우리 모두 부족한 건 의지뿐이야. 


나는 판자로 덧댄 로봇이어서 바보인 게 아니다. 인간이 될 수 있는데도 노력하지 않아서. 도전하기 싫은 내가 정말로 바보천지인 것을, 인간 시험에 계속 낙방하는 것은 밤을 새우며 공부하지 않은 탓이고, 좌절한 것은 칠전팔기 정신이 부족해서였음을. 






속죄인생 中 





성적지상주의, 교육열, 개천용 신화, 흙수저, 가난, 학벌, 계급, 경쟁사회, 노력, 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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