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가는 둥지
첫째가 독립했다. 우리 형제들 중 최초로 말이다.
아침 일찍 타 지역으로 떠났다. 왕복하는데 6시간이나 걸리는 곳으로.
나는 누이를 보내기 위해 아침이 올 때까지 글을 쓰며 밤을 샜다.
글을 마무리할 때쯤 잠에 빠져있던 가족들이 깨어나서 서둘러 옷가지를 갖춰입었다.
어머니는 출근하셨고 첫째는 남아서 짐을 챙겼다.
나는 첫째에게 다가가 팔을 벌려 포옹을 요구했다. 평소 스킨쉽에 질색하던 첫째는, 머쓱해하면서 마주안아주었다. 우리는 조금 어색하면서도 익숙한 체온을 공유했다. 나는 첫째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우리 첫째가 언제 다 커서 이렇게 독립을 하네. 알아서 자기 진로 정해가지구, 혼자 살겠다구.
대견하다고 생각하는 건 진심이다. 사람 한명이 성장하고 살아가는데 변수가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어긋날 확률이 높지 않다지만 그래도 다른 가족들이 그 변수를 통제하기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잘했다는 건 충분히 칭찬할만한 일이다. 진로를 확정지어서 자발적으로 교육을 배우러 다니고 자격증도 따고, 취직해서 새 삶을 시작했다. 내가 작년에 진로를 찾아서 아직 훈련하는 중인 것처럼 첫째 또한 자기한테 맞는 진로를 새로 찾아 독립까지 하면서 본격적인 성인기를 열었다. 어떤 것도 아주 완벽하게 당연하지는 않다.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
누이는 약간 머쓱한듯 웃으면서 말했다.
얘 진짜 웃긴다. 아빠도 엄마도 그런 말 안했는데 누가 보면 니가 나 키운줄 알겠어.
나는 대답했다.
같이 컸으니까 같이 키운 거 맞지, 뭐. 우리 형제들 중에서 최초로 독립하는 거잖아.
너 이러다 울겠다.
아니야, 어제 저녁에 울어서 눈물 매말랐어. 울려면 눈물 충전해야 돼.
그리고 누이는 짐을 싸들고 나갔다. 내가 같이 들고 가주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더라. 3번 정도 짐을 들러 집에 돌아오는 과정에서 서로의 얼굴을 3번은 더 마주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가면서 당부를 남겼다.
좀더 자고 일어나서 꼭 밥 챙겨먹어. 앞으로도 자꾸 밥 거르지 말고.
누이가 나를 타이르며 하던 말이 있다. 넌 진짜 끼니를 잘 걸러서 걱정이야. 누가 안챙겨주면 안먹잖아. 귀찮다고 미루지 말고 배달이라도 시켜. 그러다가 건강 상한다고. 아빠도 엄마도 다 걱정하잖아. 혼자 살면 굶어죽겠다!
난… 그때마다, 나도 내 건강이 신경쓰이긴 하는데 성의가 없는 게 아니고 밥때를 까먹는 것이라 항변했다. 그리고 솔직히 앙큼하게도 가족이 굶는다고 스트레스 받아하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가족 외에 누가 내 끼니 같은 사소한 문제까지 신경 써주겠냐고. 이래서 나는 가족이 필요한데, 많이.
나는 누이가 가자마자 침대에 앉아 울었다. 눈물샘 충전해야 되니까 안 울거라고 했는데 사실 내 눈물샘은 꽤나 크고 충전도 빠르다. 그래서 반나절도 안되어 우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근데 울려고 운 건 아니었다. 내 에고님 가라사대, 울음은 참는 것이 아니라 터트리는 것이다.
사실 이게 처음은 아니다.
첫째는 예전에 1년 넘게 직장 기숙사에서 산 적 있고, 막내는 군대에 갔다. 그러나 둘다 진지하지 않았다.
첫째가 전에 다녔던 직장은 잠시 거쳐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경력에 도움 안되니 빨리 퇴사하라고 엄청 종용했었다. 어차피 금방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막내가 군대에 간 것도, 어차피 2년도 안되어 우리 품에 돌아올 거니까 괜찮았다. 어차피 갈 거 일찍 갔다오라고 엄청 종용했었다. 군대 가서 사람 되길 바라면서.
누이가 기숙사 살았을 적에는 막내가 있었고 막내가 군대를 막 갔을 때는 누이가 있었다. 지금은 둘다 떠나서 나만 남았다. 나는 항상 둥지에 남아있는 새끼였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으로 떠날 새끼고. 우리 집 실질적 막내니까.
아, 결국 우리 둥지는 점점 비었고
노년을 바라보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충분히 나이 먹은 나만 남았다.
어저께인가 그저께 쯤에 어머니께 여쭈어봤다.
이제 자식들 두 명이나 독립하고 저만 남았어요. 빈둥지 증후군 같은 거 안느껴지세요?
어머니는 언제쯤 술 마시는 날에 자식들 보고 싶다고 우실 거면서, 아무렇지 않은듯 대답했다.
너희 다 독립시키고 편하게 혼자 사는 게 꿈이야. 너도 빨리 독립해라.
3년 전에도 이 생각을 했다. 이제 우리 형제 다들 슬슬 독립할 때가 왔다고. 그래도 다행인 건 2년의 유예기간은 있었다는 점이다. 사계절이 두 번 돌아가는 동안은 함께 할 수 있었다. (형제들은 알까? 3년 전 영상편지 이벤트에서 이 얘기를 다루었다는 걸.)
이게 슬픈 이유가 뭐냐면 분명 아동기에는 우리 형제가 다 함께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애주기에 따라 다르게 살아간다. 국민안전처에서 분류한 주기는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성인기, 노년기다. 나는 우리의 삶에 따라 아동기를 멋대로 확대하고 청년기와 결합시켰다. 누이가 독립하기 전까지, 그래, 어제까지는 전기였다. 그때 우리는 부모 밑에서 보호받으며 살았다. 나름 일도 하고 학문도 열심히 배웠지만, 진짜 자기 진로는 아직 못찾은 상태였다. 아주 어릴 적 같이 자라고 같이 혼났었는데 어느새 다들 키도 훌쩍 커서 각자의 인생을 찾아간다. 첫째는 인생 중기로 떠났다. 제대로 된 커리어를 시작하는 진짜 청년기, 성인기다. 이제 우리 가족의 역사에 격동기가 온 것이다. 이 독립은 최초이자 시발점이다. 막내도 꽤 독립적인 성격이므로 아마 군대를 제대한지 얼마 안되어 자취를 시작할 것 같다. 느낌이 그래….
커리어 쌓고 믿을만한 파트너를 찾아 결혼을 하든 새로운 가족을 꾸리든 하겠지. 첫째는 우리 지역과는 느낌이 상반되는 사투리에 점점 익혀지겠지. 먼 훗날 돌이켜보면 얼마나 달라졌는지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우리 어머니 형제분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 산다. 무슨 연유로 각기 떨어져 살게 된 건지 소소하게 궁금했었는데, 이런 식이었나 보다. 시대가 시대라 일자리가 중요해서 굳이 타지역 일자리 찾으셨던걸까 싶었는데 이게… 흔한 일이구나. 일자리와 배우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거듭하다가, 사용하는 사투리까지 달라진 게. 분명 어린 시절을 공유했으면서도.
아니 빈둥지 증후군을 내가 느끼는 게 맞냐고~~ 우리 부모님 퇴근하고 돌아오면 무뚝뚝한 나 밖에 없는데 괜찮으신 거냐고?
사실 나 이거 운 거 좀 어이없는 게,
우리 어머니는 우리 다 독립시키고 혼자 편하게 사는 게 꿈이시다. 워낙 혼자 있는 거 편하게 여기신다. 내향성이 높다고 해야 하나.
나도 사실 마찬가지다. 위와 같은 생각들을 의식하니까 슬픈 거지, 막상 혼자 잘 있는다. 외로움이 뭔지 모르던 기간이 꽤 길었고 요즘은 계속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어디 소속된 것과 정줄 놓고 혼자 가끔 이상한 소리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정도. 사교욕망을 채울 때 가성비가 좋다.
그래서 아마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음, 아마도.
아니 사실, 이별을 언제나 슬퍼하긴 했다. 막상 혼자 잘 있을 거면서도 당신이 소중한걸 알기에. 당신들은 내게 거저 주어진 게 아니므로.
나는 누이에게 기대거나 눕는걸 좋아했다. 그때마다 누이는 질색했지만.
이제는 그러기 힘들겠구나. 이제 누구한테 몸을 뉘여야 하지.
자랑 좀 하자면 우리 누이는 좋은 사람이다.
내가 어떤 고민을 말하면, 감정적으로 상처주지 않으면서도 팩트폭력을 적절하게 때려서 현실을 직시하게 도움을 주었다. 오늘 아침 짐 싸느라 바쁜 와중에도 내 한탄을 잘 들어주었다. 드디어 듣고 싶은 말을 해주어서 비로소 나는 속이 시원해졌다.
약간 무심해서 때때로 내 오버띵킹을 완전히 받아주지 못하고, 엄마로부터 내향성을 진하게 물려받아 치대는 걸 귀찮아하지만(치대는 사람이 이렇게 깜찍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내가 아는 또래 사람 중에서 우리 누이가 제일 어른스럽다.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도 훨씬 우리 누이가 더 성숙하다. 공감능력도 뛰어나고 현실적인 조언도 차분하게 잘해주는 대단한 사람이다. 감정적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으면서 관계를 소중히 여길줄 안다. 지혜가 많아 스트레스에 강하므로 회복 탄력성이 높다.
(tmi. mbti는 isfp ~ isfj)
추가적으로 무던하고 둥글둥글하고 싹수 바른 성격으로 인해 사회생활 할 때 어른들에게 무난히 예쁨 받았다. 심지어 학교 성적도 좋았음.
나는 혼자 자는 걸 두려워하지만, 밤 늦게 깨어있어야할 일이 많았다. 컴퓨터나 전등을 켜놓고 있다보면 누이는 엄마 방에 자러 갔다. 새벽에 방에 가서 누이를 깨우면 엄마 방 여분의 침대를 나한테 양보해주기 때문에 컴퓨터 방에서 혼자 자지 않아도 되었지만 매번 그러기는 미안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혼자 잠들었다. 무서우니까 방문 열어놓고, 부엌이나 거실 전등을 켜서 빛이 들어오게 하고, 잔잔한 asmr도 틀어놓고, 가위 안눌리게 손가락도 자꾸 까딱해주면서.
그래서 첫째는 차라리 나를 깨우라고 말했다. 유재석도 혼자 자는 게 무서워했었다는 뉴스를 보여주며, 너 무섭잖아. 어젯밤에는 어떻게 잤어? 새벽이어도 되고 늦어도 좋으니 그냥 나를 깨워.
이제 나는 당연하게 엄마 방에 가서 자게 되었다. 컴퓨터 방에 있는 침대는 첫째도 막내도 아무도 눕지 않고 휑하니 비게 생겼다. 어릴 때는 나랑 누이가, 조금 더 커서는 나랑 막내가 함께 눕던 자리였는데. 컴퓨터 방은 10년 하고 조금 전만 해도 자매의 방이었다. 컴퓨터가 놓인 자리는 첫째가 책상을 양보한 흔적이다. 짐이 많은 내 책상만 오롯이 남았다. 나는 물건에 애착이 강해서 책상 서랍에 온갖 자료를 쑤셔박아 놓았지만, 누이는 자기 책상이 없어도 크게 개의치않았다. 어차피 밖에서 공부하고 오기 때문에.
(장녀라서 참고 티 안낸 거 아니고 진짜로 개의치않아했음, 우리 집은 서로에게 비밀스럽지 않아서 불만 있었으면 다 티나게 되어있음 책상 없는 거 어떻냐고 물어본 적도 있던 거 같은데 우리 첫째는 침대에 눕는 걸 어차피 제일 좋아함)
둥지를 갓 떠나는 젊은 새에게 가호를 주고 싶은데 아쉽게도 버프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버프 능력이 없는 (귀여운) 동생도 행복을 바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우리 연약한 누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그리고 휴가를 많이 받아서 본가에 자주 좀 와주었으면.
건강하고 몸 잘 챙기그라잉~!
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