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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오션 Jun 08. 2023

고장 내는 존재에게
낭비하지 마세요

"비싸다" 어쩌면 모든 것의 원인이 되었다.


처음에 부품 하나만 떼어 나를 건져내었으나

자라면서 많은 부품을 필요로 했으므로

결국에 그는 상당한 부분을 잃었다.







어머니는 우수한 양철로봇으로, 인간만이 인정받는 세상에서 명예인간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어그러진 토끼와 삐뚤어진 여우와 시키는 것 밖에 못하는 젓가락 부부와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꼭두각시 병정들, 모든 이가 그녀가 수상 받는 걸 기다리며 부러워했다.


 그런 그녀는 아무래도 투자대상을 잘못 고른 거 같다. 그는 능력만큼이나 마음씀씀이도 뛰어났다. 흙탕물에 휩쓸린 녹슨 널빤지를 두고 보지 못하고 자기 부품 한 조각을 붙여 양자로 삼았다.


내 꿈세계에 종말이 옴과 함께 그녀의 야망에도 종말이 왔다. 불완전한 그녀의 몸은 인간이 될 수 없었다. 인간이 되기도 전에 나에게 부품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 작은 친구들은 불완전한 부모 대신에 인간이 되려고 시험을 치고 공부를 했다. 인간어를 공부하고, 인간의 행동양식을 따라 했다. 바늘구멍 같이 좁은 합격문을 대가리 모양도 다양한 것들이 우르르 부딪혔다. 다들 유난이었고, 응시료는 턱없이 비쌌고, 이제는 낡은 양철로봇 혼자서 그 많은 연료를 구해오기는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늘 빈궁했고, 내가 자라면서 점점 고되어갔다.


나는 급조된 존재기에 없는 게 많은 여러모로 투박하고 낡은 존재였다. 심지어 고철로봇의 혀는 내 심장이 되었으니 내가 그에게서 빼앗은 것이 많다. 인간들은 어머니의 혀를 빼앗지 않는다. 인간은 혀에서 혀를, 심장에서 심장을, 갈비뼈에서 갈비뼈를 복제하여 그들 딸과 아들에게 조립해 준다. 


어머니 양철로봇은 혀로써 심장을, 갈비뼈로써 피부를, 관절로써 혈관을 재현해 주었다. 하나씩 잃어감으로써 가엾고 가녀린 내 몸뚱아리를 지탱하게 했다. 처음에 부품 하나만 떼어 나를 건져내었으나 자라면서 많은 부품을 필요로 했으므로 결국에 그는 상당한 부분을 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키워낼 판자를 잘못 골랐다. 최초의 나는 비에 젖어 떠내려 가는 판자였을 뿐인데. 근본부터 썩은지도 모르고. 그마저 젖어들게 되는지도 모르고. 그가 침식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언가? 인간만이 영화로운 썩은 시스템? 우리에게 얹혀사는 썩은 가난? 그가 묻혀오는 썩은 먼지? 아니면… 최초부터 썩어 있던 내가….


사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썩지 않것이 있었다. 나, 어머니, 우리 굴 모두 썩어갔으나 가난만은 제 존재의 위엄을 고고히 누리었다. 어리고 이상한 로봇과 똑똑하기만 한 고철로봇으로는 도저히 내쫓을 수 없는 객식구. 그렇기에,


"비싸다"


 어쩌면 모든 것의 원인이 되었다. 우리가 낡아만 갔던 것도, 인간이 되어야 했던 것도, 심지어 널빤지를 깃대 로봇을 만들 수밖에 없던 것까지.



낡아만 가는 가난한 시야를, 어머니는 가망 없이 불투명한 기약만 가지고서 버텨내고 있었다. 나는 그 기약을 훔쳐 달아났다. 그러자 그가 심장의 연료를 채우지 못해서 초췌해졌다.


훔쳐놓곤 숨기지도 못하고 내가 지은 대서사시를 기약 위에 쌓아서 돌려줬다. 허황된 미래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기만 했다. 그러다 터져서 집안을 적시면 좋으련만 빈껍데기가 터져봤자 영 무쓸모였다. 부서진 기대가 조각조각 나뉘어 아프게 찔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고 어머니는 소실된 기대를 조각조각 모아 기약을 쌓았다. 그러면 그걸 다시 훔쳐서 튀었고, 하릴없이 서성거리다가, 인간 따라 서사시를 짓다가 도로 돌려주길 반복했다.


사실 우리 집 천장에는 언제나 우중충한 먹구름이 매달려 있었다. 하늘에 매달면 흐르고 흐르다 저절로 짜여서 없어질 것에 불과했지만 집 천장에서는 기세가 등등했다. 축축한 공기가 방 안을 채우면 건조대를 두어 말렸다. 채 빨리지 못한 마른 습기는 우리의 낡은 몸체에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속부터 망가졌다. 내가 인간이 되면 모조리 울어 없애버릴 텐데. 인간들은 먹구름을 빌려 울었다. 우리는 눈물샘이 없었다. 녹슨 눈가로 제대로 흐르지 못한 기름이 삐져나왔다. 욕심쟁이 찰거머리 먹구름은 그것까지 빨아들이고 싶어서 늘 안달이었다.


이렇듯 비는 우리를 녹슬게 했으므로 천적이었다. 눈치채기 어렵게 천천히 녹였다. 나는 비 오면 내 몸에서 나는 빗방울 소리가 좋아서 가만 서있곤 했지만 어머니 양철로봇은 버선발로 뛰쳐나와 우산을 건네주었다. 신나서 방방 뛰어다니다가 고꾸라지거나, 폭우가 닥쳐서 무너지거나, 빙그르르 돌리다가 손잡이를 끊어먹거나, 딱딱한 주먹으로 구멍을 내버리거나, 하여간에 뿔라먹기 일쑤였다. 철사가 비틀리고 헝겊으로 기운 천이 뒤집어졌다. 처참한 우산을 들고 고장 난 몰골로 들어오면 꼭 새 우산을 구해다 준다고 하셨다. 아니요, 제가 망가뜨린 거예요. 망치는 것밖에 할 줄 몰라요. 또 부술 거예요. 고장 내는 존재한테 낭비하지 마세요. 이런 거 하나 못해주겠니. 반드시 강권하셨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어서 아예 고장 난 우산을 냅다 들고 튀었다. 빗물장군이 침을 바른 축축한 입구에는 새 우산이 마냥 대기하고 있었다.


장마철이 지나 고장 난 채로 돌아온 나를 양철로봇이 꾸중하며 당연한 듯 수리해 줬다. 내 부품을 깁는 그녀는 나보다 더 낡았다. 고철덩어리 위에 널빤지가 여러 겹 덧대어져 있었다. 천장에 달라붙어있던 먹구름이 지나간 세월만큼 굽어서 바닥에 떨어지려고 했다. 어머니 양철로봇이 열심히 바닥의 구름 잔해를 치웠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래도 곳곳을 쏘다녀서 부품 몇 개는 성하게 유지했으나 어머니 고철로봇은 전신이 눅진하게 너덜거렸다. 


그래, 이제 방황은 이 정도면 되었어. 정신 차리고 다시 수험 공부를 해야지. 하지만 집 안의 습기가 가뜩이나 뇌 없는 회로를 눅눅하게 했다. 나는 또 정신을 빼먹고 못된 생각을 했다. 



나는 왜 무식하고 운도 나쁠까요? 그렇게 한탄하면 어머니 양철로봇이나 인간이신 원어민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도 노력하지 않았겠니? 세상 모든 일은 쉽지가 않단다. 


그럼, 그렇겠지. 어른들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 남들은 한탄할 시간도 아껴서 정진하려고 한다. 나는 인정하기 싫어서 변명으로 탑을 쌓았다.


우리 집은 하루치 연료 구하기도 힘이 들고 광산에서 날 것의 부품 모아다가 몸을 깁으니까 지원을 못 받잖아. ⋯비열하게 낳아준 분을 탓하다니? 그러니까 더욱 열심히 해야지.


내 딱딱한 피부를 다들 싫어해서 의욕이 안나. ⋯비열하게 낳아준 분을 욕되게 하다니? 인간과 거리가 멀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지 말자.


원어민 선생님도 내가 싫대. ⋯관절을 움직일 때 생기는 톱니바퀴 소리를 잘 숨겼으면 좋았을걸. 인간은 몸에서 잡음이 나지 않아.


모두가 인간이 되는 건 불가능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낙방해야 해. ⋯무능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낙방할 뿐, 누군가는 반드시 급제해.


시험에 서사시 짓는 과목이 있다면 나는 만점을 받을 거야. ⋯세상에 원래 유리한 일 잘 없어.


내가 인간이 된다면 사리사욕보다 공주님을 구하러 갈 텐데, 왜 나를 합격시켜주지 않는 거야? ⋯시험에도 투쟁하지 않는 놈이 용이랑 투쟁할 거라니 무슨 모순이야?


나는 뇌도 없고, 혀도 없는데, 둘 다 가진 놈은 많아. ⋯어떤 친구는 부리가 있고 어떤 친구는 다 가졌지만 영웅은 다리 한쪽이 날아가도 용을 잡기 위해 사투해.


명예로운 인간은 가난하고 다리가 없고 모지라고 실패해도 반드시 극복해서 예쁜 아내를 얻고 왕의 신임을 받는다. 하찮은 양철로봇은 가난하고 혀가 없고 모지라고 실패해서 반드시 비참하고 썩은 가난을 유지하고 때늦은 미련을 갖는다.


그 진리 앞에 모든 변명은 허물도 없이 무너져 녹아내린다.


모두 노력이 모자란 내 탓이오, 현실에 주저앉은 한심함 탓이다.



어머니 양철로봇과 함께 하는 것은 안심되고 슬픈 일이었다. 나랑 놀아주던 플라타너스, 함께 숨던 암귀, 그토록 쫓았던 난쟁이는 그들이 내 이름을 불러준 만큼 그리워했다. 다른 존재를 흉내 내다보면 배가 아프고 장기가 틀어지기도 했는데 양철로봇으로 가만히 있으면 별 문제는 없었다. 집에서는 양철 로봇이든 말든 내 존재는 여전했다. 그러나 늘 도망치고 싶었다. 어머니한테서? 아니 나에게서, 정확히는, 몹쓸 젊은 영혼에게서. 나를 나조차 다잡지 못하였으니. 모든 원인은 다잡지 못한 나약함에 있었으니 핑계도 해명도 쥐어짜내지 못했다. 


다들 몰랐다. 내 어머니가 옛날의 그인지. 그리고 그가 순간의 동정심으로 나를 빚어서, 철이 다 낡을 때마다 판자로 기어 나무로봇이 다 된 지금까지 보필하는지를 모른다. 그 사실은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어머니 양철로봇은 그녀의 갈비뼈만 준 게 아니다. 내가 모르는 낯선 시간과 내가 느껴온 시간, 나만 알고 그녀는 모르는 시간까지도 내게 주었다. 그래서 그 모든 과거와 현재는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그깟 인간 따위 안 되면 안 되나. 똑똑한 음유시인이 짓는 서사시를 앞열에 앉아서 관람하기. 땜빵 맞은 대가리와 삐뚤빼뚤하게 접합된 관절의 유일한 재주인 빗방울 연주 듣기. 물렁물렁한 인간 살집을 구경하다가 가늘고 연약한 꽃잎 만져보기. 그런 헛짓만 해도 행복했지만 결국 아니 될 일이다. 존재를 이어 붙이는 건 힘이 들고 오늘의 생명을 내일로 전달하는 것도 자원이 필요하고, 던져진 삶을 책임지는 건 오롯이 어머니 몫이다. 나는 자라고 있고 책임져야 할 때가 온다.


집안을 가득 채우는 노쇠한 어머니의 너절한 부품. 먼지와 검댕이 정복한 집구석. 움직인 만큼 빠르게 녹이 스는 손 끝, 발 끝. 천정에 눌어붙은 거머리 먹구름.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서 더욱더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긴 시간을 꾸역꾸역 버티고 언젠가 찾아올 광명을 기다리면서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 다른 이들도 그런진 모르겠으나 나한테는 어쨌건 처절한 장기전이었고 나는 무력한 병사였다. 그럼에도 배우고 있는 나는 어차피 우리 집의 희망이었다. 나만 보면서 삶을 버티는 존재가 계신다. 인간놈들, 보은과 효은이 최고의 덕목이라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그게 멋진 거고,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노쇠한 관절을 짊어졌으므로 반드시 급제하는 쪽에 서야 해.




 하지만 그게 못내 견디기 힘겨워 이내 도망쳐버리고 만다.





속죄인생 中 




성적지상주의, 교육열, 개천용 신화, 흙수저, 가난, 학벌, 계급, 경쟁사회, 노력, 능력주의




대학생 때 쓴 소설

지금은 졸업한지 오천년 지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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