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오션 Jun 09. 2023

내가 좋아하는 인간상

#1. 사랑에 대한 글쓰기 - 이상형

사랑에 대한 글쓰기 클럽에 가입했다. 사랑에 대한 글이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사랑에 대한 글을 7편 정도 시리즈로 써야겠다고 구상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프롤로그밖에 써내지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는 인간은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기껏 써봐야 나올 글 상태는 뻔했다. 사랑이 어떻니 하면서 비현실적으로 낭만화하는 글. 아니면 나 자신의 인간성과 감성을 부정한 채로 효율적으로 사랑하려면 이렇게 하는 게 낫다며 훈수 두는 글. 


은은하고 잔잔하게 미련이 남았다. 대충이라도 써놓았다면, 초고라도 썼으면 어땠을까. 글쓰기 상담실 선생님이 그 정도 분량이면 작은 책 한 권은 출판할 수 있다고 말하셨다. 쓰기라도 했다면 책 한 권 출판해 본 경험이 있었을 텐데, 하면서. 


무슨 글을 쓰려고 했더라. 각 7편의 주제를 무엇으로 설정했었지. 아마 하나는 이별은 왜 슬픈가라는 주제였다. 고등학생 때 이별은 왜 슬픈지 문득 궁금해져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질문했었다. 아이들은 내가 당연한 질문을 하는 것에 의아해했다. 어렸던 나는 지금보다도 말재주가 짧아 표현해내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궁금했던 것은 '이별은 꼭 슬퍼야만 하는가'였다. 


이별이 슬픈 이유는 잘 느끼고 있다. 어릴 때 한 번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상상을 하여 바로 눈물을 터트린 적 있었고, 20대 초중반 시절에는 부모님의 노화가 두려웠던 마음이 글에 녹아 나왔었고, 지금도 멀어지는 것들에 은은한 수준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나는 아직 이런 이별에 대하여 마음을 완전히 담담하게 굳히지 못했다. 


그러니 더욱 궁금한 것이다. 안 그래도 살면서 무수히 이별해야 하는데 인간끼리라도 사이좋게 멀어지면 안 되는 건지. 그렇게만 된다면 사랑을 오롯이 긍정적인 경험으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쓰다 보니 '잘 이별하는 법'에 대한 생각을 전개하는 게 자연스러운 서론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번 글 주제는 이상형이기 때문에 급회전해서 글 주제를 바꾸겠다. 



                                                                          




솔직히 이상형에 대해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생각하기 어려웠다. 후보들 중에서 내가 선택한 주제였지만 말이다. 

이번 글 주제로 이상형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탐구해서 정리하는 것이 베스트였겠지만 그러지 못했다(언젠가 하면 되지 뭐). 그러므로 그냥, 글 주제로는 가치가 떨어지지만, 난 내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므로 이상형을 구구절절 풀겠다. 이상형으로 가치관이 드러날 테니 나름 의미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근데 이 이상형은 꼭 에로스 상대방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 왜냐면 내 가치관으로는 연인이란 친구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실존은 힘에 부치며 외로운 일이기에 삶에는 타자의 호의가 필요하다. 

관계란 기본적으로 개인과 개인 간의 호의적인 결합이다. 

친구는 여러 번 호의를 주고받았으며 서로 친구가 되기로 동의한 관계다. 

지인은 내게 호의를 베풀어줄 가능성이 있는 예비 친구들이다. 서로가 지나치게 꺼려지지 않아서 적당히 알아두는 사람들이다. 

연인은 강력한 열정을 도구로 높은 수준의 호의를 주고받기로 계약한 관계다. 친구보다 강한 계약이다. 


외적 조건은 제외해서 서술할 것이므로 아래에 적힌 이상형은 내가 좋아하는 인간상에 가깝다. 사귀고 싶은 상대보다 확장한 개념이다. 당신이 이런 사람이라면 내게 삐삐를 쳐달라. 그렇담 내심 당신을 흡족하게 여기며, 지인으로라도 알아두고 싶어 주변에서 서성이겠다. 


편의 상 상대방을 당신이라는 표현으로 적었는데 내가 왜 당신의 당신이냐고 심기가 불편해져도 양해 바란다. 



인성


✔ 밥을 남기지 않는다. 분리수거 방법을 잘 알고 철저히 한다. 

소식하는데다가 밥을 거리낌 없이 남기는 사람이랑 같이 밥 먹으면 내가 꾸역꾸역 먹게 되어서 불편하다. 같이 꾸역꾸역 먹어주면 좋겠다. 



✔ 먹을 거 많이 준다. 

자고로 먹는 거 챙겨주는 사람이 진국이라 하였다. 틀리지 않은 옛날 말씀+1



✔ 유흥, 포르노, 담배, 마약, 술을 멀리 한다. 

저 중에서 순서를 꼽아보면 유흥 > 포르노 > 마약 > 담배 > 술 순서다. 유흥은 성매매를 말한다. 포르노는 무슨 장르를 보느냐에 따라 다른데 내 기준 역겨운 걸 보는 이에겐 혐오감이 든다. 성욕에 돌아서 도리를 잃지 말고 인간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마약은 지 혼자 뽕빠는 거라 언뜻 안전해 보이지만 호기심에 물들거나 범죄에 연루될 위험성이 있으니 순위가 높다. 간접흡연할까 봐 걱정되긴 해도, 흡연자와 우정 정도야 가뿐히 나눌 수 있다. 술은 중독자 수준만 아니면 상관없다. 다만 최저선일뿐 술 담배는 멀리 할수록 좋다. 

술담배를 즐기는 사람을 멸시하진 않는다. 다만 끊으라고 귀에 폭격 때려서 오히려 상대방이 괴로울 것이다. 나 스스로는 모범적으로 굴지 않으면서 친분과 신분을 막론한 아무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권고하는 면이 있다. 생각해서 옳은 말 해주는데 뭐가 문제냐고 진심으로 생각해서 그렇다. 일찍일찍 좀 자라고 잔소리하다가 중학생 아이에게 꼰대라고 욕먹은 적 있다. ㅋㅋㅋ! 



✔ 욕하지 않고 예쁘게 말한다. 

나한테 거칠게 말하지 않더라도 같이 다니다 보면 욕이 옮을 수도 있다. tpo 안 가리고 실수로 욕할까 봐 염려된다.



✔ 만인에게 친절하다. 특히 약자에게. 

다정함은 교양이다. 이기심과 미움은 매우 쉽고 원초적이나 이타성과 친절은 비교적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난 타고난 본성이 착해서 너무나도 쉽게 이타적이고 친절하다ㅋㅋ! 

그런 있잖은가. 나한테만 친절한 사람vs만인한테 친절한 사람 고르기. 생각해 보면 나는 약자에게 친절하기만 하다면 사실 둘 다 좋다. 심지어 나한테 불친절해도 괜찮다. 



✔ 좋아해 주면 고마운 줄 안다. 계속해서 고마워한다. 

'이렇게 하면 내 친구들은 좋아하던데' 싶은 일이 안 먹히는 사람을 겪은 적이 있다. 성향이 달라서 그런가, 그자는 호의를 호의로조차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내 표현방식을 귀하게 여겨주는 코드가 맞아야 좋은 거 같다. 다르게 표현해서 사랑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서로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인터넷에 5가지 사랑의 언어 테스트를 검색하면 대략 알 수 있다. 함께 하는 시간, 헌신, 인정하는 말, 선물, 육체적 접촉이 있다. 이 개념을 토대로 예를 들어보겠다. 내 친구 U의 남친은 U에게 함께하는 시간을 바라고 헌신적으로 대한다. 내 친구는 상대방이 자신을 돌봐주고 챙겨주는 것에서 사랑을 느끼고 남친이 원하는 대로 자주 함께 해준다. 

이 구분에서 나는 인정하는 말로 사람들에게 호의를 표현하는 편이다. 칭찬 전문가 자격증도 갖고 있다. 누구만의 특징과 장점이 무엇인지 날카롭게 파악하고 그걸 직접 그 사람에게 전달해 준다. 앞서 말한 상극인 놈은, 나의 칭찬을 진심 같지 않다고 매도하였다. 나한테는 당연한 건데 굳이 왜 칭찬하느냐, 별로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원인이 뭐냐면 나는 최대한 다양한 영역(성향)을 알아둬서 이를 비교하려는 면이 있지만, 상극이는 자기 영역만 깊게 파는 차이 때문에 그렇다. 상극이한테는 자기 타고난 성향이 딱히 대단한 것이 아니고 매우 당연한 일상적 모습이라, 고유한 장점이라고 일러줘도 동의하질 못했다. 사회적 본능과 자기보존본능의 차이라고 할까.(애니어그램 본능적 변형 이론으로밖에 설명 못하겠다. 전자는 SO, 후자는 SP다.) 이 친구는 다른 일도 비슷하게 굴었다. 

그 친구와 내가 성향이 달라서 그런 거라고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괘씸했다. 본인이 자존감이 낮은 거면서 왜 내 진실성을 못 믿고 '아니야 진심이야 넌 정말 대단해'라고 반복해서 칭찬하게 만드느냐고. 칭찬도 도가 지나치면 찬양이 되고, 찬양하는 사람과 찬양받는 사람 간에 서열이 나뉘게 된다. 정직함이 내 주된 자아상 중 하나라 변호하게 된단 말이다. 

솔직히 이런 사람한테 잘해주려는 노력을 투자하는 건 손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나 아닌 다른 이가 호의를 베풀어주는 게 맞다. 나 같은 사람은 재차 호의를 투자할 시간에 다른 사람을 찾아 호의를 베푸는 게 낫다. 상대가 기뻐한다면, 고마워한다면,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고 받아들일 사람이라면 손해가 아니다. 

그러니까 잘해주려고 내 딴에 노력하면 우쭐해하지 말고 못 믿지도 말고 감동받아주면 좋겠다. 가끔 떠올리면서 고마워해주면 더 좋고. 




성향


✔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것을 함께 해준다. 

밥 먹고 영화 보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것도 좋지만 카페나 도서관 가서 각자 할 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실제로 친구들한테 도서관 가자거나 디스코드로 화면 공유하면서 각자 할 일 하자고(일명 디스코드 공부방) 자주 꼬신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 투어 같이 해줄 친구를 찾고 있다. 차가 있고 추진력 있으면 좋겠다. 친구 데리고 가봤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멀리 있는 곳을 거르다 보니 가는 곳이 거기서 거기가 되었다. 

그리고 강연 이런 거 있는데 같이 들을 거냐고 묻거나 운동 이런 거 배워보지 않겠냐고 자꾸 권유해 주면 고맙다. 어려워하면 인내심 있게 가르쳐도 주고. 다만 도중에 관두어도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의외로 테니스(T.E.N.N.I.S) 유망주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어쩌면 실력이 영 안 늘고 재미마저 못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뭘 제안하면 너무 거절만 하지 말고 40% 정도는 최소한 들어주면 좋겠다. 다 들어달란 뜻은 아니고 제안 대 거절 비율이 3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게 주의해 달라 이런 말이다. 아 일단 해보고 거절하라고! 



✔ 나의 어떤 점이 도움 되었으면 좋겠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런 조건을 붙인 게 아니다. 나의 노력으로 도움을 받았다면 분명 기쁘지만, 빚지고 싶지 않은 이유가 크다. 당신에게 도움만 받아도 사실 난 좋은데, 그렇게 되면 환생하고 나서 당신에게 도움만 주는 관계로 엮이게 된다. 이번 생에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면 다음 생에선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게 된다는 게 내가 믿고 있는 불교의 환생 규칙이다(자세히는 모름). 웬만하면 받고 싶지 주기만 하고 싶지는 않기에 어쩔 수 없이 당신에게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그러니 나의 장점이나 특기, 개성 같은 것으로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내가 잘하는 분야를 잘 못한다거나, 내 멋드러진 칭찬으로 자존감을 높이게 되거나, 하여간 나와 인연의 농도가 깊은 시기에 무언가 성장하면 좋겠다. 남는 게 있으면 좋은 추억으로 남기 쉽지 않을까. '그래도 이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 어떤 지식을 얻고 어떤 취미가 생기고 어떤 걸 배웠으니 됐어, 돌이켜보니 좋은 친구였고 재밌었다'고 기억해주길



✔ 칭찬을 많이, 고급지게 잘해준다. 

칭찬할 거리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주면 좋겠다.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폭풍 칭찬을 받겠다는 목표로 살아가고 있는데 만약 누군가가 그만큼의 스케일로 칭찬을 해준다면 여한이 약간 없어질 거 같다.  



✔ 자기 정보를 숨기지 않는다. 

나는 대화방식이 들어주고 질문하는 거라서 자기에 대해 안 숨기는 사람이 편하다. 

그리고 우호성과 개방성이 높은 나는 사람의 겉면과 내면이 모두 궁금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일상이 어떤지, 주변인들과 관계는 어떤지부터 본질적인 성향이 어떤지, 어떤 성장배경을 거쳐서 그렇게 형성되었고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그리는지까지 전체적인 구성이 궁금하다. 

하지만 보통은 이 정도까지 궁금해하면 께름칙하게 여기기에 궁금함 보따리를 닫고 지낸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하고 나의 질문에 선뜻 답변한다면, 당신을 내가 알아도 되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예의주시할 것이다. 근데 말이 이렇지 그렇게까지 질문 안 할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에 불과해서 물음표로 누군가를 죽일 능력은 없다. 과장해도 물음표 죽빵머신밖에 안 된다. 

변명하자면, 당신을 뒤에서 어떻게 하려고 물어보는 게 아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스파이나 간첩, 수상한 신상 도둑꾼쯤으로 취급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향한 관심 활성화 버튼을 끌 것이다. 알아서 뭐 할 거냐면 머릿속에서 따로 파일링해두고 다른 케이스와 비교할 때 꺼내서 보는 것 정도를 할 생각이다. 아 민지는 이런 애구나~ 민주랑 비슷하면서 다르네~ 세상에는 이런 성향의 사람도 은근히 많구나! 이 정도로 생각할 거다 이 말이다. 혹은 민지도 이거 좋아하던데 말 걸어볼까… 같은 고민을 하기도 한다. 나를 특이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같은 고민은 안 해도 된다. 내 눈에는 어차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희한하다. 

물론 신상조사를 하지 않고도 친해지는 과정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개인교습 해주실 분??



✔ 내가 잘 맞춰줄 수 있도록 너 사용법을 꼼꼼히 알려준다. 

싫어하는 말, 좋아하는 말, 어떨 때 서운한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생일 선물은 뭐 갖고 싶은지, 너랑 친해지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면 좋겠다. 나를 배려한답시고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아 놓고 속으로 시험 치는 사람을 어려워한다. 난 배려 많고 조심스러운 사람이긴 하지만, 사실 너의 안중 따위 신경 안 쓰고 마음 편히 있고 싶다. 이게 왜냐면 비언어적인 단서를 읽는 스킬을 패시브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킬 사용에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레벨이 높은 것도 아니라, 내가 너의 심기를 거슬렸는지 비위를 잘 맞춰주었는지를 확신하지 못한 채로 계속 고민해야 한다. 그러니 아예 규칙처럼 새겨주는 게 편하다. 약간 그런 거지, 보스를 잡는데 컨트롤만 필요하면 너무 어려운데 공략법이 있다면 훨씬 쉬워지잖은가, 그런 느낌이다. 



✔ 개성, 말투, 성향 등을 맞추려 하지 말고 그대로 수용해 준다. 

나는 사람들에게 맞춰주려는 의향이 많지만 그건 대처 매뉴얼 수준이지 나 자체를 바꾸려는 게 아니다. 외국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그 언어를 잘하는 직원을 프런트에 보내고 음식 맛을 조절하는 정도의 이벤트를 하는 것은 흔쾌히 가능하지만 그를 위해 우리 호텔의 인테리어나 식당 메뉴를 모조리 바꾸는 건 싫다는 뜻이다. 

성향 차이를 잘 알고 맞춰주기만 하면 모든 이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한정적인 인간 개개인한테는 몹시 어려운 일이더라고. 적어도 나한테는 말이다. 사적인 관계를 맺을 때 내 어디가 모나 보이는지 재빨리 눈치채고 감추는 걸 여태 잘 못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의 진면목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하여 대체로 '약간 특이하지만 솔직하고 착한 사람' 내지는 '나랑 안 맞을 거 같은 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타인은 내게 호의를 던졌는데 내가 은연중에 흥미 없어하거나 못 받아준 걸지도 모른다. 내가 인싸가 아닌데는 이유가 있다.)


이 예시는 우정의 영역에서 그런 거지 사회적인 관계에서는 모난 구석 없이 예의 바르고 정중하며 우호적인 사람으로 비치니 집단에 적응 못할 거 같다고 혹여나 걱정하지 마시길 바란다. 이래 뵈어도 공동체나 커뮤니티에 관심의 방향이 쏠리는 유형이라 활발히 참여하는 편이다. 



✔ 말이 많다. 

나랑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자기표현을 좋아하지만 먼저 말을 꺼내기에는 어떤 주제가 적절한지 몰라 고민하다가 가끔 아무도 안 궁금한 이야기를 잘못 꺼내기도 하므로 얘기를 많이 시작해 주면 고맙겠다. 들어주는 것에 일가견이 있으니 나의 놀라운 경청 솜씨로 당신을 황홀하게 해 주겠다. 



✔ 잘 들어준다. 

내가 수준급 경청 실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독서모임을 참여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내 생각을 온전하게 말할 수 있어서도 있다. 생각을 표현하는 성격이라 댓글(주로 선플)도 많이 달고 할 말은 하고 살았다. 진심으로 재미없는 TMI만 뽑아내어도 집중해서 들어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재미를 추구하는 친구 관계에서는 쉬이 보여주기 힘든 호의의 형태다. 의리나 헌신 같은 또 다른 기저 감정이 필요하다. 



✔ 우리의 추억, 대화, 심지어 나한테만 관련된 정보까지 대신 기록해 준다. 

과거는 기록되어야 한다는 게 내 신조입니다. 

교환일기나 우정 다이어리, 커플 다이어리, 커플 메모앱 같은 걸 해준다고 하면 무진장 좋아할 것이다. 

블로그나 일기장, sns 같은 곳에 우리의 경험을 정리해 준다면 추억 회상에 도움이 된다. 메모장에 내 개인적인 정보나 일대기까지 적어도 좋다. 공유만 해준다면 오히려 고맙지. 

 


✔ 옆에서 이상한 행동을 해도 관심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나는 평소에 근엄하고 진지하게 있다가 가끔 정신을 빼고 이상한 짓을 하는 편이다. 정확히는 이상한 짓까지는 아니고 흥이 나서 가볍게 춤추고 떠드는 것에 가깝다. 노래 부르고, 아무 말하고, 춤추는 것은 생각을 덜고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입에 거미줄 치는 걸 방지할 수 있으니 나 자신의 이러한 행동 패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체로는 집에서 가족 앞에서만 하는 행동이지만 편한 상황에서는 튀어나오기도 한다. 평소에 엄숙한 모습만 알고 있다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걸 보면(그리 특이한 행동이 아니어도) 사람에 따라서는 당혹스러울 수 있다. 만약 꺼림칙하게 여긴다면 의기소침해질 것이다. 그리고 억울해지겠지. 뭐 그리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너무 편해지면 또 그럴 수 있으니 당신 앞에서는 은은하게 긴장하게 된다. 

그러니 대충 자연스럽게 넘겨줬으면 좋겠다. 쟤 또 저러네 정도로, 가끔 받아주면서 놀아주면 더 좋고. 



✔ 잘 챙겨준다. 매너는 기본! 컨디션 파악까지!!

잘 챙겨주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사랑의 방식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수 있도록 아침엔 깨워주고 밤에는 자라고 갈궈주고 오늘 무슨 달이 뜨니까 밖을 내다보라고 알려주고 내일까지 뭐뭐를 신청하라고 일러주고 집에만 있지 말고 산책 나오라고 불러대고 밥 잘 챙겨 먹으라고 건강식 싸다 주고 냉장고에 반찬 왜 이렇게 없냐고 등짝 때리면서 자기가 해온 반찬 내가 좋아하는 것과 영양균형을 위해 먹어야 하는 것 분류해 가지고 넣어주고 저 반찬들을 가지고 어떻게 해 먹어야 하는지 레시피를 적어다가 냉장고에 붙여주고 벌레랑 동침하지는 않나 살펴보러 와서 이불빨래도 해주고 너는 계절이 바뀌었는데 옷장 정리 아직이냐고 타박하면서 대신해주고 거들려고 곁에 오는 나한테 방해되니까 저기서 놀고 있으라고 쫓아내고 특이한 레시피 링크를 보내면 귀찮다고 한숨 쉬면서 요리해 주고 밥 챙기기 귀찮다고 굶지만 말고 이거라도 먹으라면서 취미로 만든 간식거리 챙겨주고 주름진 옷을 입고 다니면 어떡하냐며 이번 주에 입고 나갈 옷을 다림질해주고 늦잠 자면 어떡하냐며 차 태워서 보내주고 언제 도서관 갈지 어느 일부터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으면 딱 정해주고 배고픔에 겨워 누워있으면 내가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랜덤으로 골라 배달시켜 주고 커튼 설치해 주고 전등 갈아주고 음식물 쓰레기통 비워주고 무슨무슨 쓰레기는 어떻게 분리수거해야 된다고 알려주고 오늘 플라스틱 내다 놓는 날이 아니냐고 나가는 길에 내다 놓으라고 일깨워주고 막 이렇게 해주길 바란다.(우리 어머니가 이걸 전부 해준다는 말은 아니고 그냥 내 이상향을 나열한 것이다.) 

애도 아니고 그걸 왜 인간한테 바라냐고?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최대한 친환경적이고, 매우 청결하고, 집안일 필요 없이 자동화된 집에서 개인 맞춤형 ai 비서를 데리고 살 수 있기를 꿈꾸고 있다. 과학 기술 파이퉹!!!!!!!!!!!!!!!!  


이상형 = 엄마 같은 사람 


근데 사실 나의 어떤 결함을 인간이 해결해줄 거라 믿는 건 별로 좋지 못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떡하려고? 나타난다 하더라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타난다면 그동안은 문제를 겪고만 있을 건가? 우연히 만난다 해도 인연이 금방 멀어질 수도 있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평생 돌봐주겠다고 맹세해도 그 사람의 평생이 나의 평생보다 길 거라는 보장은 없다. 누가 챙겨주고 돌봐주면 좋겠지. 편하겠지. 그러나 그 뒤에 남겨지면 사람 꼴로 못 살게 된다. 그렇다고 죽을 순 없으니 기본적인 생활은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 옳다. 그런 의미에서 발전된 과학기술이 저렴하게 대중에게 보급되면 좋겠다. 과학 기술 파이튀이잉~~~~~~~~!!!!!!




갈등 대처 


✔ 담아두지 않는다. 

속상한 게 있다면 말해줬으면 좋겠다. 웬만한 건 사과하고 맞춰가면 되는 일이지 굳이 담아둘 필요는 없다. 나는 속상해하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니까 두려움 없이 말해도 된다. 물론 당신에게 반드시 사과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화나고 상처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잘못한 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차이에서 비롯되었거나, 오히려 본인이 성장해야 하는 안건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점도 이해한다. 사람이라는 게 상대방의 잘못이 아닌데도 꽁해지고 그럴 수 있지. 누가 서운해한다고 해서 생각 없이 사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또 있다. 자기도 모르게 서운함을 무기로 갑질하고 통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무던한 사람이 손해 보는 구조다. 서운한 사람이 일부러 그렇지 않아도, 성향 차이나 경험에 의해서 한쪽은 죄인이고 한쪽은 피해자가 되는 구조가 굳어질 수도 있다. 가끔 상처받은 건 나니까 상대방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미성숙한 의견이 발견되는데, 좀 더 신중하게 따져보길 권장드린다.    

그리고 난 싸우고 화해하면 더 친해졌다고 보는 사람이니까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 싸운 횟수가 누적될수록, 아 이 사람하고는 더럽게 안 맞네 싶어서 마음의 문을 서서히 닫는 사람을 겪어본 적 있는데 공감이 되지 않았다. 한 번도 부딪히지 않을 정도로 딱 맞는 사람을 찾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내 경우는 말이다. 갈등과 토라짐은 깊이 교류할수록 발생하기 쉬워진다. 싸울 순 있으니 어떻게 풀어가는지가 중요한 거다. 

서로가 소중하지 않아서 부서지고 흩어지는 관계보다 어떻게든 이어가는 관계가 더 '진짜' 아닌가? 하지만 세상에는 다른 의견도 있었다. 일단 상황을 좋게 무마하기 위해서 속에 남은 게 있어도 서둘러 화해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멀어질 미래를 갈등상황보다 더 두려워하지만 누군가는 갈등하는 상황 자체가 더 스트레스라서 차라리 내치는 걸 선택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화해하고 넘어가도 뒤에 가서 생각해 보니 상처가 마저 아물지 않았다면 말해주길 바란다.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 

그렇다면?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감정을 부딪히더라도 깔끔하게 사과하고 훌훌 털어내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 평범한 사람인 나에게는 버려지는 경험이 불유쾌할 각이다. 그래요 회피형이 두렵습니다. 담아두시지 말라고요.

게다가 이게, 관계와 차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반영되어 있다. 나의 경우는 적과 아군의 구분이 비교적 불투명한 편이고(사람을 쉬이 싫어하지 않고, 누구를 열렬히 미워하지 않음) 차이를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인간은 각기 다른 성향을 배정받고 이 자리에 놓인 어리석은 중생에 불과하다. 



✔ 뭐든지 말로 솔직하게 설명해 준다. 

내가 진짜 어려워하는 게 뭐냐면 화났으면서 "아니야, 나 화 안 났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화나고 찝찝하면서 말로는 괜찮은 척하고 속으로는 조용히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들을 어려워한다. 절교당하고 싶지 않기에 정말로 화가 났는지 안 났는지 노심초사하게 된다. 눈치 보게 만든 상황이 한 번이라도 생기면, 앞으로 내 앞에서 피곤해하기만 해도, 속이 더부룩해서 한숨 쉬어도, 혹시 나 때문인가 걱정하고 있어서 당신을 오히려 귀찮게 할 것이다. 만약 삐진 게 맞는데 화내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 이유도 설명해 주면 좋겠다. 이 정도 일로 화내기는 미안해서거나 나도 왜 화났는지 모르겠어서 생각해 봐야겠다고 이야기해 주었으면 한다. 안심시켜주지 않고 방치한다면 나는 은근슬쩍 불안을 느끼고 있겠다. 

갈등 상황 말고도 말로 해줘야 하는 이유는 있다. 비언어적 단서를 비교적 못 읽는 편이다. 대화할 때 말 그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라 어떤 대화를 했고 어떻게 상호작용을 했는지는 기억해도 말투나 표정은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그런지 말을 그 자체로 받아들인 적도 많았고, 의아했던 상대 반응을 뒤늦게 이해한 적도 많았다. 나는 의식적으로 캐치 못했던 단서를 다른 이가 짚어준 거 보고 놀랐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날 보고 있었구나, 이거 꼽 먹은 거구나, 날 신경 써줬던 거구나 하고 깨닫는다. 

이런 적이 있었다. 왜 그런 거야? 알려주기 싫댄다. 왜 알려주기 싫냐고 캐물었다. 그냥 갑자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절대 바뀌지 않으며, 억지로 바꾸려고 하는 태도를 싫어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럴 수야 있겠지만 저 정도까지 얘기가 진행되면 나는 일시적 광기 상태에 걸리게 된다. 궁금해 미친다는 말이다. 트라우마와 관련된 거라 얘기하기 힘들다거나, 더 친해지면 알려주겠다거나, 잘 모르겠으니 생각해 보겠다는 말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갑자기 싫을 수가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때때로 상대를 오해하게 만드는 일이 있던 것도 같다. 아마 리액션이 적절치 않아 내 진심이나 의도를 잘못 전달시킨 게 아닌가 싶다. 쟤는 저런 걸 원하는구나 저런 심정이구나 하고 짐작만 하지 말고 나한테도 말해주면 좋겠다. 그럼 내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냐고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잘 이별해 줌. 

한때 호의를 주고받았는데 왜 인연이 다했다고 적으로 돌아서야 하는가? 사람들이 이별하는 방식은 대체로 무례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랑은 예의 바르게, 천천히 멀어져 주면 좋겠다. 그럼 나는 그럴 거면 우리의 인연을 좀 더 노력해서 이어가면 안 되냐고 징징거리겠지. 그래도 당신은 인내심 있게 견디면서 예의를 다해야 한다. 나였어도 당신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관계의 농도를 낮출 것이다. 그게 옳으니까. 





당신이 여기에 많이 속하는 사람이면 나에게 기별을 주어도 좋다. 

부담스럽게 굳이 어떤 관계를 맺어달라고는 안 한다. 멀리서 주시하면서 은은하게 사모해 주겠다. 사랑해줄 사람이 한 명 추가되면 이득이니 잘 생각하시길. 


그리고 당신이 이런 사람이 아니어도, 나와 의리 있게 지내준다고 결심만 해준다면 나는 당신을 좋아할 것이며,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장 내는 존재에게 낭비하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