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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오션 Jul 05. 2023

바퀴벌레 트라우마

놈을 보고 나면 얼마 간은 머릿속에 역겨운 잔상이 남는다

나는 안타깝게도 벌레를 못잡는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건 아마도 징그러움을 느껴 더러운 병균에 접촉하지 않게 하기 위한 특정 유전자의 작용이겠지만, 그게 나한테 있어서는 안됐다.

오늘도 요만한 놈을 봤다. 내가 벌레를 잘 잡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바퀴벌레 이 놈들 참 대단한 족속이다. 잠깐 나타나고도 섬찟하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덕분에 나는 짧고 굵은 후유증에 시달려왔다. 내가 바퀴벌레를 반이라도 닮았으면 면접관들이 날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머릿속에 내 잔상이 머물렀다면 그렇게 무 자르듯 내팽겨칠 수 없었을텐데.


바퀴벌레와 반도 닮지 않은 나는, 겁주기보단 겁내면서 살았다. 바퀴벌레한테는 언제나 쫄았다. 인간과 집 벌레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눈에 띄지 않기로 합의하고 거주 공간을 공유하는 걸텐데 바퀴벌레 놈들은 내가 만만한지 당당히 그 모습을 보였다. 바퀴벌레가 내뿜는 일방적인 카리스마에 난 늘 얼어붙었다. 안타깝게도 바퀴벌레와의 기싸움에서 져온 것이다.


이 글에서는 내가 본 중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녀석들 피해담을 몇 개 적겠다.







1] 의자 바퀴로 터트리는 상상


몇 개월도 더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은 생활환경이 크게 두 개다. 큰방,작은방. 나는 잠을 잘 때 빼고는 컴퓨터가 있는 작은 방에 주로 머무른다. 컴퓨터는 벽을 등져있다. 컴퓨터를 바라보면 벽이 보인다는 말이다. 그 말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것들이 내 시야각에 일반적으로는 잡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느 날, 한 놈이 내 레이더에 걸렸다. 바퀴벌레의 괴기한 크기와 괴랄한 생김새에 반사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사실 녀석의 생김새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놈의 위치와 이동경로였다. 놈은 의자 발짝 뒤에서 직진으로 걷고 있었다. 조금만 더 이동하면 선풍기 바닥을 스친 후 충전 중이던 내 폰 위를 기어가게 될 것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선풍기 바닥은 발가락으로도 건드리는 부위다. 무심코 건드리다간 바퀴벌레의 발자국을 내 발가락으로 덧씌우게 된다. 내 폰은 심지어 손으로 만지는데 어떡하나? 손에 묻은 바퀴의 족적이 간식을 집는 손가락을 타고 입 안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아무리 폰이 변기만큼 더럽다곤 하지만, 손은 씻어도 폰을 씻길 순 없는 노릇이라서, 대놓고 꺼림찍한 요소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녀석에게 대항하기 위해 방법을 찾으려 했다. 손을 뻗어 폰을 구조하려 한다면 바퀴벌레와 손등이 스칠 수도 있다. 마루로 나가서 해충약을 가져온다면 그 사이 도망갔을 것이다. 덤으로 휴대폰 화면에 6개의 발자국이 찍혀있을 수 있다. PC 카톡으로 가족을 소환할까? 지금이 그럴 수 있는 시간대인가? 바로 확인하고 와줄까? 큰소리를 친다면 동네에 다 들리겠지. 궁지에 몰렸다.


고민이 무색하게 그는 발이 매우 빨랐다. 그 찰나에 콘센트 줄 사이를 지나 캐리어 밑으로 바퀴벌레가 들어갔다. 캐리어는 옷걸이 바로 밑, 책장과 침대의 사이 작은 틈에 놓여 있었다. 짱 박혀있어 어둡고, 잘 보이지 않았다. 바퀴 놈은 그 곳에 숨었다. 아마 녀석들의 기지가 저 곳일지도 모른다. 들춰보고 싶었지만 우르르 몰려나오는 걸 목격하면 며칠 앓아누울까봐 냅둘 수밖에 없었다. 옷장 아래 캐리어 부근이 바퀴벌레 통로라는 가정을 한 뒤로, 옷장 쪽에는 발가락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혹시 닿으면 어떡해. 벽이나 캐리어를 기어오르고 있을지 모르잖아.


이렇게 방바닥을 지나가는 바퀴벌레를 본 날로 며칠 간은 의자를 뒤로 당기는 상상을 자꾸 떠올렸다. 상상 속에서 마침 지나가던 바퀴벌레들이 운 나쁘게 의자 바퀴에 깔려 너덜너덜하게 찢어졌다. 나는 안경을 낀 그대로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 보고는 이 방을 나가지도, 의자를 떠나지도 못한 채 벌벌 떨었다. 시선을 옮기고 눈을 감아도 징그러운 사체가 선명하게 뇌리에 여전하게 있었다. 충전 중이던 휴대폰에 죽은 바퀴벌레의 더듬이가 닿아있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사태로 겁을 집어먹은 나도 나지만, 돌아온 가족들은 무슨 죄로 이 현장을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패닉하고 있는 거대 생명체와 손뼘보다도 훨씬 작은 짓이겨진 시체, 그리고 그것의 부위를 오물거리는 의자 바퀴 휴지로 싼다면 얇은 휴지겹 너머로 바퀴벌레 육체 결이 만져질텐데. 쓰레바퀴로 쓸어서 문 밖까지 내다놓는 방안은 그토록 경악했던 바퀴벌레의 바닥 접촉 면적을 스스로 넓히는 거고. 청소기로 빨아들인다면 크기로 흡입구를 고장낼 수도 있을 거니와 들어간들 반투명한 먼지통으로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아 진짜 어떻게 치우냐고. 나는 할 수 없어요…. 상상이니까 살았다.


일부러라도 이런 상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떠오른다면, 이것은 침투적 사고이다. 평소에는 굴러주지도 않던 상상력이 침투적 사고로 쓸 연속재생 시나리오를 짜는데는 활약한 것이니 괘씸하다. 시각적 상상력 별로 안좋은데 이럴 때만!






2] 세면대에서 본 큰 놈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다. 화장실을 갈 때 안경을 벗는데 그래서 살았다. 아니라면 꿈에서도 고통 받았을 것이다.


어제였다. 1시 3분에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컵을 사용하여 입 안을 헹구고 있는데, 글쎄 컵걸이 쪽에 커다란 놈이 있는 것이다. 허.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연한 갈색 또는 갈색이 섞인 주황색 정도 되는 벌레는 재빠르게 샤샤샥 움직이진 않았던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세면대에서 물을 받아 바퀴를 향해 뿌렸다. 바퀴가 미끄러져 세면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녀석은 자꾸 기어오르려 했다. 이대로 이 놈이 세면대 바깥까지 거슬러오른다면 바로 바닥으로 떨어지든 세면대 바깥 부분을 거꾸로 내려가든 할 것이다. 둘다 끔찍했다. 바로 바닥으로 떨어진다면, 혹시라도 날 수 있는 놈이면, 세면대에서 한두발짝 떨어져있는 내게로 날아들 수도 있다. 거꾸로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니 오한이 돋는다. 세면대 겉 부분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바닥으로 빠르게 내려가서 구석으로 도망치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변기 뒤나, 어떤 구석진 부분… 아니면 바퀴벌레 선착장으로 추정되는 환풍구 구멍으로…. 바닥으로 내려오면 샤워기로 물을 뿌려서 배수구로 내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도 변수가 있다. 녀석이 직진해서 내려오지 않고 미끄러져서 세면대 뒤로 숨는다면? 우리 집 세면대는 뒤가 뚫려있다. 뒤로 내려와서 도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쓰레바퀴로 내려오는 놈을 떨궈낸다면? 나한테 닿거나, 내 근처로 떨어질 수도 있다. 충격적인 전개에 정신을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난 안전하게 세면대에 물을 틀었다. 물 받고 습관적으로 바로 잠구던 것을 그냥 계속 틀어놓았다. 그래서 낮은 수면으로 물이 고였다. 컵을 사용해서 기어오르는 놈을 자꾸 자빠뜨렸다. 하지만 이걸로는 모잘랐다. 자꾸 다른 방향으로 기어올랐다. 나는 기지를 발휘해 옆의 샤워기를 서둘러 조작해 세면대에 뿌렸다. 물이 보다 높은 수면으로 출렁거렸다. 바퀴벌레가 무력하게 둥둥 떠다니는 걸로 보였다.


놈을 무력화시켰으니 일단 내가 기세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된다. 이대로 계속 양측으로 물대포를 쏘면 결국 물이 넘치게 될 것이다. 수면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바퀴벌레 또한 떠오르고 있다. 세면대 굴곡이 잡히는 부분에 수영하고 있던 놈이 닿게 된다면 극적으로 탈출을 성공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물이 넘쳐서 바퀴벌레가 바닥에 떨어질 수도 있다. 만약 아래로 추락해서 죽는다면 그거야 다행인데, 시체야 고함 좀 지르면서 쓰레바퀴와 샤워기로 배수구로 떨구면 처리되는데, 과연 그렇게 잘될까? 만약 날아서 도망친다면? 떨어지는 위치가 애매모호해서 내 근처로 떨어진다면? 나에게 닿으면? 욕실 배수구 근처여야 처리하기 쉬울텐데, 빨래 대야에라도 풍덩 빠진다면?


그래서 물을 조절했다. 우선 세면대 물을 잠구고 샤워기 물을 조절했다. 직빵으로 쏘다가, 바퀴벌레의 발자국이 남아 찝찝해졌을 부분을 물로 씻겨내리다가, 세면대 벽을 탈 거 같으면 다시 미끄러뜨렸다. 결국 놈은 낮은 수면 밑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세면대 배수구에 꽁무니가 끼였다. 녀석이 버둥거렸다. 놈은 매우 컸기에 고장나서 활짝 열리지도 않는 세면대 배수구 쪽으로 떨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대치했다. 물 속에서도 죽지 않고 도망칠 구석을 찾는 놈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물대포를 쏘는 내가.


이대로면 대치할 뿐이야. 어떡해야 하지? 아버지라면 바로 손으로 잡아서 버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여도 진작에 처리했을 거다. 나는 어떡해야 할까? 작은 크기도 아니고 지랄맞게 큰 괴물이다. 만약 누가 함께 있었다면 해충약을 가져다 달라고 할 수 있었다. 물을 끄고 서둘러 파리약을 뿌리면 녀석은 저항을 멈출 테다. 일단 무력화만 시켜도 처리가 훨씬 쉬워진다. 아니면 고무장갑과 비닐봉지와 휴지를 가져다 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무장갑을 끼고 비닐봉지로 바퀴벌레를 사로잡아 가둘 수도 있었다. 꽁꽁 묶어 가두고 쓰레기통 깊숙히 박아넣으면 되는 거다. 휴지로 겉면을 둘러매는 건 바퀴벌레가 버둥거릴 때의 그 끔찍한 촉감을 무시하기 위한 방책이다. 파리약과 비닐봉지, 이 두 방법을 병행할 수도 있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혼자였다. 자취의 공포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게 굳이 그 안면을 소개하고자 하는 식충이들과 살벌하게 대치할 때, 아군은 나 뿐이다. 나 혼자서 모든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비참함. 어떠한 전략에도 아군을 활용할 수 없다는 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야지. 아니면 아버지한테도 걸어야지. 이걸 어떡해야 하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빨리 집에 와달라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겁쟁이 자식 혼자 패닉하고 있는 걸 알면 예정을 바꿔서 하루라도 일찍 와줄지도. 뭐 이 대치 상황 지나면 잠잠해지겠지만, 이런 집에서는 언제 갑자기 또 게릴라전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거다.


사실 세면대 배수구를 잠궈서 바퀴를 아작내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갈라진 몰골을 봐야 하는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처리해야 하는 한가지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았다.


다행인 건 내가 화장실에 휴대폰을 들고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 휴대폰은 카톡도 전화도 되는 놈이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자다 깨서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내가 변기 위 박스에 넣어둔 폰을 집으려고 한발짝 가서 손을 뻗는 그 사이에 놈은 꽁무니를 감췄다. 어디로 간 거지? 그 큰 놈이 결국 세면대 배수구 밑으로 빨려들어간 건가? 아니면 물대포 에임이 비뚤어진 틈을 타 재빠르게 기어서 나온 건가?


어머니에게 떨린 목소리로 현 상황을 전달했다.  

- 어머니 어떡하죠, 너무 끔찍해요.

- 배수구로 떨어졌든 기어서 숨었든 세면대 뒤에 있을 거다. 약 쏴봐라.

나는 어머니 말씀대로 해충약을 가져와 바닥부터 통로, 그 근처까지 폭격을 가했다. 우리 집 세면대는 통로 뒤가 뻥 뚫려있으니, 그 아래 바닥에 버둥거리고 있거나 시야각 뒤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대체 어딨는 거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더 깊게 뿌려야 하는지 고민했다. 바퀴벌레가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부분은 전부 시야각에 닿지 않는 곳이다. 머리를 들이밀고 꼼꼼히 훑어보거나 안경을 쓰고 삐져나온 더듬이 등의 단서를 찾아야 했다. 만약 안경을 쓰고 실수로 괴물의 전신을 봐버린다면 시각적 충격에 뇌리가 얼얼해질 것이다. 고개를 갖다대고 자세히 뜯어보다가 실수로 눈 앞에 놈을 목격한다 해도 리스크가 크다. 그래서 안보이는데 어떡하냐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놈이 보였다. 세면대 오른쪽 벽에 매달려서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놈의 긴 더듬이와 짧은 다리가 대나무 같은 세면대 벽을 꽉 붙잡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동네 사람들이 들으면 저 집 뭔 일 생긴지 알겠다고, 별 거 아닌 걸로 겁이 너무 많다고 타박을 들었다. 별 거 아니지 않다고요. 적어도 저한테는요. 이 정도 비상사태면 동네 사람들이 이해 좀 해줘야 한다.


나는 다시 약을 뿌렸다. 그런데 또 안보이는 거다. 아마 세면대 안쪽으로 숨어서 목숨을 부지하는 모양인데 곤란했다. 목숨을 잃고 바닥에 떨어져야 쓰레바퀴로 쓸어서 하수구에 떨굴텐데 말이다. 어머니가 뜨거운 물로 세례를 가하라 하셔서 세면대 부분 위주로 압력을 가했다. 세면대 뒤를 확인하려면 머리를 들이밀어야 하는데, 상술했던 단점도 있었고, 화장실 벽이나 세면대에 내 머리가 닿을 가능성도 뭔가 께림칙해서 싫었다.


어머니가 약을 한번 더 많이 뿌리고 기다리라 하셨다. 그럼 나와있을 거라고. 나중에 바닥에서 죽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쓸어서 하수구로 보내면 된다. 그렇게 나는 일단 퇴각했다. 나와서 시간을 보니 20분이 지나있었다.


어제 오후는 종종 화장실에 가서 살펴봤다. 바퀴벌레 바닥에 떨어져있나? 놈은 계속 없었다. 세면대 뒤에 죽어있거나, 결국 도망쳤거나, 내가 못봤을 뿐 하수구로 빨려들어 갔거나.






3] 물을 마시러 가다가 밞을까봐


한 몇 년 되어서 제대로 기억도 안나는데 부엌에서 녀석을 봤다. 한 밤 중에 물을 마시러 정수기까지 걸어가다가 녀석을 본 거다. 아마 봤을 것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계속 조심하고 있다. 부엌 불을 켜거나 조심히 걷고, 바닥을 유심히 살펴본다. 왜냐면 두렵기 때문이다. 불 꺼놔서 잘 안보인다고 무심코 걷다가 밞는다면…? 내 맨 발에 닿을 그 촉감은? 맨 살로 더듬이를 으스러뜨리고, 전신을 동강내는 기분은 어떨까? 혹시라도 녀석이 상당히 커서 압력에 개의치않고 살아남는다면? 치명상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망친다면? 아님 오히려, 접촉면을 공격하거나 버둥거리는 힘으로 밀어낸다면? 내 발에 놈의 다리나 더듬이가 붙었다면? 가시가 박힌 것처럼 파고 들었다면? 한 밤 중이라 고함이라도 쳤다간 여파가 장난 아닐텐데….


아니면 만약에… 녀석이 나를 먼저 발견해서 쏜살같이 도망가는데, 정면돌파를 선택한다면? 간격 조절을 잘못해서 발바닥 테두리를 스친다면? 내 발등을 기어서 지나간다면? 와, 그러면 비명을 안 지를 자신이 없다.








글을 쓰면서도 소름이 돋는다.

바퀴를 목격하면 평소에는 옷이 젖어도 별로 와닿지 않던 감각이 예민해진다. 소스라치는 감각에 순간적으로 벌레가 내 몸을 기어오르는 건가 하고 착각하지만 사실 다리털이 살랑인 것 뿐이었다.

책상 밑에 벌레가 있어서 밞으면 어떡하나 하고 때때로 안짱다리를 풀지 못한다.


벌레를 박멸하는 검색해보려고 하면 혐오스러운 사진이 떠서 제대로 못본다. 세스코 같은 벌레박멸업체를 부르기에는 나의 금전 사정은 언제나 가냘퍼서…. 그치만 언젠가는 주거의 주도권을 되찾아올 것이다. 바퀴벌레 집단한테는 미안하지만(사실 안미안함) 10배 이상 거대한 천적 주제에 진심으로 니들이 소름끼치고 언짢아서 자비를 베풀 여유가 없다. 생명을 모조리 빼앗고 싶다. 세대를 바꾸며 이어갔을 본거지와 그 문명을 재기불능토록 파괴하고 통째로 덜어내고 싶다. 꼬우면 말았어야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집안 곳곳에 괴물들의 기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집지 않고 냅두고 있는 건 휴전하기 위함이다. 어쩌다 맞닥뜨려도 죽기 살기로 덤비지 않고 도망갈 틈을 줘버린 건, 일시적 후퇴였을 뿐이다. 리스크를 줄이고 힘을 모으기 위해 싸움을 의도적으로 피한 거다.


바퀴는 날 못 죽이고 도망가는 게 최대인데 나는 놈들을 학살할 수 있다는, 이 압도적인 지위 상의 불균형을 알고 있다.육체적으로 내가 훨씬 유리하단 거 알다마다. 그러나 첫 눈에 기싸움부터 지고 들어가는 거 뭐 어떡함?


어느 날은 벌레를 목전에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눈물이 터졌고 그런 나약함이 응석 내지는 대책없는 당당함인지 고민했었다. 그동안 부모님이 잡아줬기로서니   벌레가 조금만 커져도 처리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서는 안됐던 거 아닐까? 하지만 놈들은 더럽게 컸는데. 그 정도면 괴물이란 말이다. 인간 크기로 치환한다면 2m 가까이 되는 거구 쯤이지 않을까. 최소 180cm는 넘을 거다.


참고로 내가 어제 본 놈은 크기가 대략 이랬다. 내 손가락 두개 합친 사이즈로 기억한다. 감이 오시는가? 내 손가락은 짧지 않은데다가, 새끼 손가락이나 엄지 손가락도 아니고 검지랑 중지에 견준다. 놀랍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유약한 탓은 아니지 않을까? 누구라도 쉽게 잡을 수 있을까? 겁부터 집어먹는 사람 수두룩할걸?? 왜냐면 저 놈들은 크기만큼 넘치는 카리스마로 자신을 눈치채는 지성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스킬이 있다. 그리고 나는 벌레 타입이 약점이라 그 스킬에 데미지를 입는 것이다.  혹시 풀 타입?또는 에스퍼?


어쩔 수 없는 거다…. 존버 말고 다른 방법은 모른다.




위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바퀴벌레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다 → 언젠가는 집에서 내쫓을테다 → 지금 내쫓지 않는 건 힘을 키우기 위함이다 → 물론 내가 더 쎄겠지. 하지만 무섭다고 → 너무 유약한가 싶어서 고민했었는데 근데 걔네들 엄청 큼 → 심지어 검지+중지 사이즈도 봤는데 이 정도면 누구라도 겁먹을 수준 아님? → 아무튼 지금은 어쩔 수 없지 




바퀴벌레를 못 잡는 내 자신을 과거에 어떻게 자책했는지, 어린 시절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그 날 일기에 적었었다.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공개할 생각이다.



그 외에도 쓸 말이야 많았는데 기억 안나니까 글을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바퀴벌레를 혐오하는 내 진심이 전해졌겠지.




바퀴벌레 없는 집에서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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