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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오션 Jan 02. 2024

나의 냉정한 면이 두렵다고 했다

스토커의 말처럼, 나는 차가운 사람인 걸까.



작년에 나를 징하게 괴롭힌 스토커가 있었다.


그는 아동학대, 구체적으로는 방임 피해자였다.

자세히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말을 안해줬으니 모른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있지 하면서 첫눈에 내게 반하더니

내 가치관이나 발언이 무섭다고, 본인의 가해자가 생각난다며 금방 ptsd를 호소했다.

정말 눈 뜨고 코 베인 불쾌한 경험이었다.




스토커가 한번은 내가 냉정해서 인간미가 없어보인다고 말했다. 무섭다고 했다.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했냐면, 자살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밝히면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의 처절한 슬픔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극심한 절망에 무너진 사람에게 논리를 들이대는 게 너무한 발언이랜다. 상처 받아서 힘들어하는 사람한테 공감해주지 못하고, 우울한 생각은 옳지 못하니 이겨내야 한다고 강요할 것 같단다.



무슨 맥락인지 더 풀어 쓰겠다.

그는 내게 자살 의제에 대해 얘기를 꺼낸 적 있었다.

나는 가급적 사람들이 자살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근거는 이러하다.

1. 미래는 알 수 없다. 지금의 고통을 보상할만큼 좋을 일이 생길 거라는 가능성도 있다.
2. 인생은 새옹지마다. 힘든 일 지나가면 좋은 일 오고 그렇다.
3. 그 법칙은 이미 숱하게 살아온 사람들 인생사 사례로 알 수 있다.

정확히 기억 안나는데 저렇게 단순하게 말 안하고 대충 그럴듯하게 얘기했던 거 같다.

 

그러자 스토커가 말했다.

성폭행을 당한 것처럼, 진짜 너무 힘들어서 사는 게 사는 것 같지도 않으면? 잊혀지기도 힘든 큰 고통을 겪은 거라면?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려고 시도하는 것은 값지다. 주변 사람들도 그 사람이 아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나는 무서운 사람이 되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중에도 계속 나 혼자서는 역시나...

잘 모르겠다.

그럼 저기서 내가 자살하려는 마음에 공감했어야 하는 건가.

내가 잘못 발언한 건가. 말실수한 건가. 원래 나 같은 말은 사람들이 안하는 건가.



난 정말 그녀의 말대로 타인의 깊은 아픔을 존중할줄 모르는 머저리일까.

반대로 내가 만약 깊은 고통을 겪었는데 사람들이 그걸 공감 못해준다면? 이겨내라고만 한다면....?



그런데 난 그 당시 스토커한테도 얘기했었지만

내가 낙담에 깊숙이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나의 그런 감정을 진솔하게 동조해준 사람이 어차피 별로 없었고

그게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조언해준 많은 사람들이 싫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은 맞는 말을 하고 있고, 이 비관적인 기분은 벗어나야 하는 게 맞고, 벗어나기 위해선 그 맞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단 거다.)

그게 내가 우울한 상태를 벗어난 방법이었다.


나는 파국화 반응과 침투적 사고에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라 내 생각은 현실과 다르며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꼬집어주면 오히려 좋았다. 또 나는 적극적으로 희망의 곡조를 배우고자 했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중에는 현재와의 단절과 미래에의 낙관이 있다.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여전히 나는 특정 사람들에게 무서운 사람인 걸까.


또 누구들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래놓고 이겨내야 한다고 그러겠지.

그걸 들키면 배척당하는 건가?

나는 성녀가 되어야 하는건가?

누구들의 깊고 깊은 절망의 늪을 같이 헤엄쳐주지 못한다는 건 큰 낙오점인가?



그래도 내 생각은 똑같다.

자살할 용기로 살아라.

나는 당신의 인생이 개같이 아작나더라도 그럴 바에 뒤져버리라면서 응원해주진 않을 것이다.

처참하게 좆되어버린 게 나였어도 스스로 자살의지를 비웃으면 비웃었다.





스토커는 나중에 내가 자살 의사가 있다는 식으로 왜곡하면서 비난했다.

내가 제3자인 누구한테 자살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댄다.


내가 평소에 무슨무슨 장애가 있고 정병이 깊고 사회에서 배척만 당해서

자살하려는 마음이 있다며, 가족들이 잘 챙겨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 또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어느 일요일 다짜고짜 경찰서에 갔을 때, 둘이서 이상한 대화를 하다 온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 오해가 왜 지금 와서 억울하고 슬픈가.

아니에요, 이건 부부싸움 같은 게 아니에요.

연인 간의 치정싸움 같은 게 아니에요.

사귄 적도 없어요, 받아준 적도, 어장친 적도, 나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 뒤에도 꿋꿋이 스토킹 증거를 모아 경찰서에 갖다바쳤다. 지금까지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스토커는 보란듯이 본인의 카톡 프로필을 긍정적인 소식으로 꾸며대고 있다.

반드시 처벌이 되리라는 확신이 있다면 몇달이고 기다릴 수 있지만, 확신을 안주셔서 모르겠다.

피해자 상담을 신청했었다. 담당 경찰관과 일정 협의 후 연락 주신다 했는데 답이 없다.



내 기준으로는, 내 생각으로는 처벌이 되어야 하는 일이 맞다.

증거도 빵빵하게 준비했다. 처벌이 안되면 이상한 거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내 생각이다. 만일 담당 경찰이 수사해줄 의지가 없다면 어떡하지?

우리나라 법이 미쳐돌아서 이것조차 처벌이 안되면 어떡하지?



그럼 난 어떡하지?

두가지를 생각했다. 스토커가 사는 곳 다니는 곳에 대자보를 써서 박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적 복수를 금지한다. 오히려 내가 처벌 당할 것이다.

무시무시한 욕 문자를 꾹꾹 눌러 담아서 전송한다. 만약 스토커가 내가 보낸 거라며 공개해버리면? 상황이 안좋게 돌아가서 그걸로 내 평판이 깎이면? 그걸 방지하기 위해 내 입장을 미리 브런치 같은데다 쓰려고 했다. 하지만 욕을 쓰는 것도, 내 입장을 쓰는 것도 시간을 내는 거고 스트레스다. 만약에, 복수한답시고 또 스토킹을 시작해버린다면? 난 인스타를 비활했는데 우리 언니는 비활성화 하지 않았다. 스토커는 우리 언니 계정을 알고 있다. 만약 내가 한 짓을 유서에 쓰고 자살해버리면? 개인적으로는 기쁘겠지만 오히려 그게 법에 걸리면 어떡하지. 나는 또 우울감 때문에 사회생활을 망쳐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떠벌리고 다니지도 못한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일도 겪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것과 엮어서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다. 그래서 난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을, 잊히는 것을 택했다. 물론 티는 냈지만!






스토커 이야기를 가장 열심히 들어준 한 친구는 '내가 자살희망자라는 스토커의 발언'이 본인 이야기를 나한테 투사한 거라고 해석해주었다.

또 어떤 좋은 분이, 이해되지 않는 악의는 구태여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짤방을 위로의 차원에서 전달해주었다. 그외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말했다. 미치광이는 이해하려 들면 안된댄다. 괜히 정신병 있는 게 아니라고. 다음에 그런 사람 만나면 잘 피하라고. 이렇듯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야 누가봐도 스토커가 잘못한 거거든 이 사건은.



하지만 그럼에도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니면 안좋다.

스토커한테 당한 건 난데 바보들은 내 평판을 깎더라.

당한 이유가 있겠지.

손절당한 이유가 있겠지.

평판이 깎인 이유가 있겠지.

니 행동 구실이 그렇겠지!


그러니까 내가 피해를 당한 사실도 함부로 말하면 안돼. 결과는 복불복임...

처음엔 이해해줬다가도 나중에 수틀리면 그걸로 공격한다.

아마 그 스토커는 너의 그런 점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꼈을 거야!

네가 피해를 당한 이유가 있었던 거야!

사람들이 왜 저렇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겠지. 내 말만을 믿을 순 없겠지. 중립이라 쓰고 또 내 탓 하겠지. 내가 감쓰짓을 알고 보니 많이 했을 거라든지 어쨌다면서.


이건 그렇게 보는 사람의 도덕성이 개판인 거지만 솔직히 대다수 사람들의 도덕성을 믿을 수가 없다. 대부분은 '트라우마와 피해 사실을 공격하는데 써서는 안된다. 그것도 고작 내 감정이나 불평 따위의 사소한 이유로'라는 단순한 명제도 못 지킬 거라고 생각한다.  



지인 A에게,

스토커한테 손절 당한 게 내 잘못이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자라서 손절 당한 사람'으로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한테 잘해준 것 그리고 내가 그걸 하나하나 세세하게 기억하는 것과 별개로, 본인의 단점을 모른다는 점은 역겹다고 생각해.



믿었던 친구 B에게,

평소에 징징대는 사람, 감정 쓰레기통인 사람이 싫다고 했었지.

그런 주제에 너는 니 첫사랑과 따먹고 따먹힌 이야기는 주구장창 주구장창 늘어놓았어.

나는 몇년 전에도, 밤에도 낮에도, 잠을 설치면서도, 만나서도 전화로도 그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너는 정작 스토커 얘기를 한번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더라.


상황 안가리고 카페에서 얘기를 꺼내는 사람 취급을 했어.

듣는 본인이 그 미치광이 때문에 화나니까 그만 얘기하라고 했어.

오히려 내가 장소 이동하기 전까지만 얘기하겠다며 눈치를 봤어.


본인이 MBTI T여서 징징거리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얘기를 가장 많이 들어주고 가장 위로해준 친구는 너보다 더 극T야.


사실 그때는 서운하지 않았어. 어차피 다른 친구들이 달래줘서 해결된 일이었거든.

그 얘기를 꺼낸 이유는 너도 알면 좋을 내 소식이니까. 너한텐 말 안했던 일이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특별히 꼭 해야 하는 뭔가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들어주면 안됐던건가.

나였으면 친구가 그랬음 조용한 카페나 내 자취방에 데려가서 얘기를 들어줬을텐데.

난 본인이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우는 거 달래주고 들어주고... 그 실연의 상처보다 내 사건은 별 일도 아닌건가. 내가 들어달라고 강하게 요구하거나 서운해해도 되는 일 아닌가 싶은데... 이깟 일로 내가 그렇게 상황 맥락 안맞추고 징징대는 사람으로 보였어야 하나 싶은데...

너한테 수족관 느리게 둘러본다고 혼난 일 아직도 기억해. 저 스토커랑도 수족관 갔었는데, 오히려 그때가 더 재밌었어.



그날 나는 아침부터 기분이 안좋았어. 평소엔 눌러놓고 사는데 그 날은 유독 처벌 안될까봐 불안했거든. 스토커는 프사를 바꿔가면서 속을 긁어대는데, 보기 싫어도 업데이트된 프로필에 뜨니까 기분이 잡치더라. 그래서 내가 쓰는 모든 장치에 그 설정을 없애버렸어.


내가 스토커 관련해서 약한 모습 보였던 적 있던가.

너한테는 그 날이 처음이었는데.






평소에도 스토커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보통 다른 많은 생각을 하며 산다.

흘러가는 그 많은 생각 속에서, 스토커는 종종 등장한다.

- 그때 이랬었지. 내가 정말 그런가.

- 이땐 이랬었지. 그 말은 내가 봐도 말도 안되는 개소리야.

- 이렇게 계속 생각나지 않도록 적고 털어내야 하는데 각 잡고 적으려니 스트레스네. 언제 쓰지!


그렇다고 나는 B처럼 자신의 업데이트된 감정이나 사건의 근황을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다줄 용기는 없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 스토커는 우리가 숱하게 겪어왔던 미친 빌런, 그 중에서 특히 죄질이 심했던 놈 중에 하나로 남게 되었다.




아마 이 글을 올리면,

나를 아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부정적인 의혹을 심어주게 될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진심으로 공감할 것이다: 정말 이상한 사람한테 당했군!

무의식 중에 이렇게 생각한다: 근데 왜 유독 빌런을 많이 겪지?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그리고 내게서 뭔가 마음에 안드는 점을 발견하거나 나랑 작은 갈등을 겪고 깨닫는다: 저래서였군!



만약 이런 점을 몰랐으면 그냥 나랑 안맞는 부분이 있겠거니 했을텐데 말이다.

나는 그래서 내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 앞에서 더 주의해서 사바사바 해야 될 것 같은 걱정을 한다.

또는 나를 변호할 말을 이것보다 몇겹을 더 둘러서 적어야 할 거 같다.  



확정 지어지기 전에 변명하겠다.

나는 다른 사람이라면 기분 나빠해야 할, 이상하다고 느끼며 멀어져야 할 어떤 촉이 망가져 있다.
모욕이나 가스라이팅을 당해도 그 당시는 모른다. 대체로 뒤돌아보면서 깨닫는다.
스토커 또한 그를 피해야 할 징조가 있었는데 스스로는 눈치를 못챘었다.
'그러려니, 그럴 수 있지, 내가 예민하겠거니, 사람은 서로 다른 게 당연하니까 내가 맞춰주면 되겠지, 어 뭔가 기분이 나쁜 모양이네 뭐 나랑 다르게 그런 포인트에서 상처 받을 수도 있지 달래주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중에 더 심한 짓을 당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아 그게 악의였구나, 그럼 그건 그래서 했던 거구나, 그 말과 그 행동도 나한테 해서는 안되는 짓이었구나'
이렇게 나는 또 나를 보호하지 못하고 만다.

이 글의 소제목이 '유해한 관계에서 나를 보호하기'인 이유가 그런 거다.



물론 나도 나쁜 새끼고 나쁜 짓을 했겠고 누군가한텐 빌런이겠지.

그런데 내 성격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비판하는 것을 잘하니까 아무래도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을 기르는 게 우선인듯 하다.

심지어는 낯을 안가리고, 다양한 관계를 추구하고 하 아무튼 총체적 난국이라고.

10대 때부터 소문난 빌런과 꼭 친해지고 피 본 게 나엿음;;

쎄하다 피해야 된다 그런 거 없다.




사이버 스토킹 당한 썰 #3

: 스토커의 말처럼, 나는 차가운 사람인 걸까.



이 글은 24년 1월 2일에 업로드했다가

부정적이고 암울한 내용이라 발행 취소글로 돌려놨었다.

근데 이왕 스토커 얘기를 시작한 거 6월 2일에 다시 발행글로 돌린다.


<유해한 관계에서 나를 보호하기>라는 소제목으로 쓰려고 했었다.

유해한 관계에서 나를 보호하기유해한 관계에서 나를 보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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