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이례 Dec 12. 2020

Intro. 아이러니한 디지털 삶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의 은밀한 삼각관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삶으로의 이행을 경험한 세대로서 나는 진한 ‘Bittersweet’ 의 감정을 느껴왔다.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이 복잡한 마음을 대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씁쓸하면서도 한켠으로 느껴지는 안도감 정도의 것이라고 해보자.


'어른'이 되고 나서 1990년대의 풋풋했던 아날로그풍 삶을 살았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많이 느끼곤 했다. 이게 그렇다고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 고향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 들어가면 안주처럼 펼쳐지는 이야기의 서두는 늘상 '아, 옛날엔 참 좋았는데...' 였으니 말이다. 우리들이 이제와서 지독할 정도로 '감성'과 '아날로그'를 운운하는 것에 대한 해설이 존재하는데 디지털로 가득한 세상에서 이제 더 이상 디지털은 새롭지 않다는 것과 무한세계의 디지털에서 유한세계의 아날로그가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 아날로그가 지닌 인간의 관계와 우연성이 사실 우리의 존재에 필수적인 요소라는게 또 다른 설이다. 요즘 이용자의 클릭 패턴을 귀신처럼 읽어 '관련 영상'들을 사정없이 추천해주는 너튜브에 질려봤다면 잘 이해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씁쓸함을 견디고 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제 디지털 미디어가 없이는 하루도 '정상적'으로 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런 삶의 방식은 선택이 아닌 우리 삶 자체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 문화를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브런치만 봐도 가치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이 되어 많은 작가와 독자들의 각광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뿐인가, 듣도 보도 못한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같은 시골뜨기가 디지털 미디어가 없었다면 어떻게 우리나라 너머의 세상에 '눈'을 딛고 우리 앞세대 사람들은 그 존재도 몰랐던 다양한 기회들을 누렸을 것인가.




그래도 어쩌겠는가.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삶의 결이 그리운 것을. 오백원씩 받던 용돈으로 문방구에 가서 친구들과 뽑기하고 백원짜리 불량식품을 하나씩 사들고 신나게 뛰어놀던 시절. 그럼에도 실컫 더 놀지 못한 분이 풀리지 않아 저녁 내내 꼬불꼬불한 전화기 선의 반경을 맴돌며 수화기를 붙들고 서너시간을 얘기하다 할머니방 전화기 너머로 꾸중듣던 시절(전화기가 두 대 있으면 다른 쪽 수화기를 들어 건넛방 통화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ㅡ 번외: 이 문제는 연인들이 밤중에 공중전화를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도 내 학창시절의 화룡점정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버스를 타고 마산 시내로 나가 특별 용돈으로 받은 만원으로 친구들에게 전달할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는 것이었다.

 

반면 오늘날의 아이들은 우리 어렸을 적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산다. 굳이 집을 나서지 않아도 친구들과 단체로 모여 이야기하고 놀 수 있는 매우 디지털화된 수단들이 생겼다. 먹고싶은 것이 생기면 근처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편의점에서 스마트폰으로 결제하고 크리스마스 카드나 생일 선물 전달 따위의 것은 화려한 스크린 픽셀들로 대체된 지 오래다.



이러한 디지털 네이티브를 포함한 모든 현대인들은 기록적인 속도로 발전을 더해가는 미디어 문화 속에서 매일 새로운 오늘을 살고 있다. 인류에게 이런 발전의 시대는 처음이고 그 누구도 이런 변화를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런 변화의 파도가 우리를 집어삼키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은 아주 어렵겠지만 이 현상을 파악하고 자체 통제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인류에 의해 개발된 미디어에 의해 주객전도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디지털 문화를 지혜롭게 받아들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우리 삶에 의도적인 디지털 닻을 설치해 삶의 잔잔한 균형을 맞추어 나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건강하게 디지털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을 해보고자 한다. 앞으로 1년간 [미디어 왜이래] 작품으로 12편의 글을 연재해갈 예정인데 현재까지 계획된 바로는 미디어의 발전과 삶의 질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 나아가 우리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의 개념을 다루어 보고 싶다. 더불어 요즘 많은 이들의 화두가 된 앞광고/뒷광고와 연관있는 소셜미디어, 언론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참이다. 기회가 된다면 교육과 미디어, 특히 스마트폰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볼 예정이다. [미디어 왜이래]에 연재될 글들이 무심코 미디어를 소비했던 독자분들과 이미 디지털 문화에 주의깊은 관심을 보이는 독자분들 모두의 감정 센서를 살며시 건드려 우리 모두가 디지털 미디어와 균형잡힌 연애를 지속할 수 있다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