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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Feb 08. 2021

너는 너를 너무 믿는다.

당신의 한계,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

미디어 세탁 당하지 않기 위해 애쓰시는 현대인들, 그리고 지난 산업시대의 읽기나 쓰기처럼, 지능정보사회의 필수교육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꼭 필요한 자녀를 둔 현대사회의 부모님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미디어의 구조와 특성을 이해하고 정보를 더욱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것.


재미난 테스트로 이 글을 시작해보자. 유학 당시 가장 애정했던 심리학 수업에서 다루어졌던 '지각이 얼마나 삐뚤어질 수 있는가(지각편향)'를 확인했던 실험이었다. A와 B 중에서 어떤 게 더 진하게 보이는가? (정답은 바로 아래에)

출저: 위키피디아

정답은 믿기 어렵겠지만 둘의 색은 똑같다 이다. 그림자와 패턴을 없애고 나서야 우리는 이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우리 인식의 한계를 숙지하고 이 글을 읽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아, 물론 정답을 맞히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셔도 붙잡...지 않겠습니다)

출저: Coachingleaders


"에이, 그건 카더라 통신이야," 하던 때가 있었다. OECD 국가 중 문맹률이 가장 낮은 우리 국민들은 TV와 신문을 통해 당시에 필요한 정보들을 똑똑하게 습득했고 현명하게 사실을 추구했다. 사실(Fact) 기반의 정보들을 획득하기 위해 개개인이 나름대로 애썼고, 그런 노력들 속에서 카더라 통신 따위는 쉬이 통하지 않았다. 국가 공영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들을 즉각적으로 전달받았고, 매일 새벽 생생하게 전달되는 누런 신문지에 인쇄된 정보들은 우리에게 사실 그 자체였다. 이것들에 물음을 던진다는 것은 애당초 '정신 나간' 짓일 때가 있었다.


그러다 30롤입 두루말이 휴지 묶음의 사이즈였던 초기 컴퓨터가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인 2000년, "ㅎrㅇi, 숙저lㅎHㅆㄱ?" 따위로 한글의 새로운 용도를 발견하며 옆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와 전자메일을 주고받으며 키득거리던 때가 있었다. 금세 세이클럽이나 싸이월드 같은 당시 전국에 유일무이했던 소셜미디어가 대유행했고, 곧이어 페이스북 같이 전 세계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는 글로벌 정보교류의 장이 생겨났다. 우리는 이때만 해도 디지털화가 우리 삶에 드리울 그늘을 알지 못했고 그저 이 모든 시대적인 특혜를 누리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1989년도에 태어난 나를 포함한 나의 동년배들, 나이의 간격이 머지않은 인생 선후배님들은 이 모든 변화를 감지할 새도 없이 살아왔다. 구전(입으로 전해짐)이 사람들 간 손쉽게 정보를 전달하던 미디어/매체이던 시대에 등장한 텔레비전과 신문의 절대적인 존재감에 우리는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어느새 30대가 된 우리에게도 가속에 가속을 더하는 디지털 발전은 익숙해졌고 더딘 인간의 인지력 진화가 디지털 문맹을 불러왔다. 어느덧 도래해 버린 내 눈도 못 믿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의 모습 (출저: Unsplash @Unitednations)
2022년에는 진실이 사라질 것이다. (미국 컨설팅 기업 Gartner, 2017)
[...] 우리가 만들어낸 정보의 호수 속에서 진실을 거짓과 구분하지 못할 것이며, 어떤 확실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정보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은 창의적인 만큼 파괴적이다.

위 인용된 Gartner의 2022년에 인구가 맞이할 탈진실의 시대에 대한 예언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가방끈 긴 삶을 살고 있고, 누구나 모든 정보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지적 환경을 얻었다. 그런데 디지털 미디어 내 허위 왜곡 정보로 인한 피해는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뒷 광고 사태로 온라인 세계가 꽤나 시끌벅적했던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굳게 믿었던 언론도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이른바 카더라 통신에 의한 뉴스 기사를 무책임하게 쏟아 내는 탓에 속출하는 피해도 적지 않았고 이에 따라 당연히 언론에 대한 불신도 커져가고 있다. 실제로 언론의 신뢰가 세계에서 제일 낮은 수준이라는 거듭된 조사 결과도 있었다고 하니 내가 아주 없는 소리를 하고 있지는 않다.


뿐만 아니라 "성인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약할 뿐 아니라 온라인상 허위 정보가 자신보다는 주변 사람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인식하는 제3자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남의 말은커녕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프로세스 해서 받아들이는 나의 인지력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현시대를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해 눈을 돌려 보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 혹은 미디어 문해 교육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미 서구지역에서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부모가 적극 개입하여 국영수가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이 것은 21세기의 문제에 20세기의 무기만을 쥐어주고 있는 국내 교육산업이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으며, 나 역시 남은 지면을 흥미로운 이 교육을 소개드리는데 할애하고자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란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새로운 '읽기 근육'을 키워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교육을 말한다. "정보를 소비할 때 기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보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지, 어떤 증거가 있는지, 다른 출처들은 어떻게 얘기하고 있는지 등을 스스로 사고하고 직접 찾아보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 역시도 '그래서 어쩌라고,'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 밖에 생각이 안 났다. 상부에 종종 링크를 걸어둔 각종 아이디어의 원문이 실린 한국 언론진흥재단의 기사에도 실질적인 해결방안은 없어 샘 와인버그(Sam Wineburg) 스탠퍼드대 역사교육연구소 교수의 글로벌 미디어 리터러시 서밋(Global Media Literacy Summit) 영상을 직접 보기로 했고 예상치 못한 아주 쓸만한 팁을 얻게 되었다.




샘은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기기를 원어민처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세대)'에 대해 설명하며 강조했다: 젊은 사람들은 디지털 기기를 아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지만 그들의 정보 평가력은 아예 다른 문제다. 그가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진행한 실험에서 82%의 14-15살 아이들은 광고와 뉴스를 아예 구분하지 못했고, 엘리트 고등학생들에게 변이가 일어난 데이지 꽃이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결과라 주장하는 사이트를 보여주며 '이게 원전사고의 결과라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나?'라 물었을 때 80%는 이 사진이 일본에서 찍힌 것인지, 혹은 이런 변이가 데이지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인지와 같은 그 어떠한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변이를 일으킨 데이지꽃 (출저: 내셔널 지오그래픽)

명문대 학생들도 별다를 바 없었다. 가짜 고용정책기관 사이트를 보여줬을 때 대부분이 합법적인 사이트라고 믿었는데,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 친구들이 어떤 방식으로 웹사이트를 검토하는가를 살펴보았다.


1. 사이트 주소가 .org로 끝난다

2. About (소개) 페이지에 공용 정책 연구를 위한 비영리단체라고 그럴듯하게 적혀 있다

3. 광고 배너나 클릭 유도용 링크 같은 게 없다

4. 홈페이지가 한눈에 봐도 있어 보인다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런 식으로 사이트를 확인하는 이유는?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렇게 하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우리는 단 10년 전과도 아주 다른 시기를 살고 있다. 근대 제도 교육은 산업사회와 시민 사회 노동자와 시민에게 요구되는 읽기, 쓰기, 셈하기 능력 배양에 초점을 맞췄지만 지능정보사회로 불리는 디지털 세상은 우리에게 산업시대와 다른 종류의 능력을 요구한다. 어디에나 정보가 널려 있고, 유용한 정보와 왜곡 정보가 뒤섞인 정보 더미의 세상에서 중고등학생이나 취준생이나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라 생각된다. 지금 해외영업 업무를 하는 내 입장에도, 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검색이고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이미 일의 역량이 되어버렸지 않은가. 자, 그럼 '전문가'들이 어떻게 하는지 팁을 공유하겠다.

거미줄(Web) 타듯 이동해가며 분석하라 (출저: Unsplash)

메인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세로 읽기를 버리고 측면 읽기를 시작해라.

세로 읽기는 우리가 흔히들 저지르는 시대적인 실수이다. 우리는 해당 웹사이트에 머문상태로 스크롤을 내려가며 위에 나열한 것들을 체크한다. 그리고 '똑똑한'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 사이트의 신뢰성을 판단한다 ㅡ 사이트 내를 맴돌면서 About 페이지를 읽고 심지어 이미지 해상도나 폰트를 참고하며 우리의 판단과 느낌을 믿는다. 그래서 당신은 더 '똑똑할수록' 더 많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측면 읽기는 어떻게 하는가?

0. 먼저 당신의 인지 능력과 판단 능력을 믿지 마라

1. 그리고 분석하고자 하는 그 웹사이트를 나.가.라.

2. 검색어를 입력해 조회되는 것들 중에서 믿을 만한 사이트들을 거미줄 타듯 이동해가며 첫 사이트의 보이지 않았던 측면들을 검토하라 (저자, 출, 동일한 주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글 등)

3. 여러 서치 엔진에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과연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어떤 것들을 상단에 노출되고 다른 것들은 아닌지에 대한 검색엔진 최적화(SEO)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면 더욱 좋다


실제로 나는 샘의 강의를 보고 나서 해외 시장 조사를 해야 할 때 한 사이트에 머물지 않고 구글링 결과창에서 믿을만한 사이트들을 여러 겹 펼쳐놓고 정보를 크로스 체크하기 시작했다. 이는 절대 작지 않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팩트 체크에 있어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바로 당신 스스로에 대한 신뢰다. 위에 나열된 팁을 이용해서 나와 우리 독자분들이 정보 과부하의 시대에서 미디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편향되고 한계적인 내부 절차만을 통해 정보에 좌지우지되는 유저가 아닌, 미디어와 우리 인지 능력의 메커니즘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적어도 우리의 한계를 인지한 채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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