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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Apr 05. 2021

디지털 시대, 적이냐 아군이냐?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회사를 그만 두기로 하자 나의 초점(focus)이 풀리고 주변시(peripheral vision)가 작동했다.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내 옆에 초고속 제트기를 타고 지나가던 디지털 시대를 넘어선 AI 시대라는 녀석이 잠시 내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연재해 온 글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디지털 비관론자에 가까웠다. 아날로그적인 삶의 방식이 사람다운 거라며 불과 20년 전의, 지금과는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장밋빛 시절이 내 눈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것을 바라보며 매일 애가 타던 사람이었다.


퇴사를 한 달 앞둔 내게 평소 가까웠던 상사께서 책을 선물로 주셨다. 매 순간 과거를 회상하며 사는 내게 디지털 통신시대의 선두주자인 MIT 미디어랩의 전 소장 조이 이토가 쓴 '나인 (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원칙)'이라는 책은 크게 상관이 없어보였다. 원칙주의자도 아니거니와, 안그래도 인간미 없어지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에 대해 혀를 차고 있던 나였기에 이 책은 내게 읽힐 리가 없었다.


미래의 생존원칙? 당장 '쌔빠지게' 이직 준비를 해야하는 내게 이런 쇠냄새나는 원칙이라는게 가당키나 한가 싶어 시커먼 책 표지의 날개에 적힌 글쓴이의 이력이나 훑어볼 참이었다. '세계적인 미디어융합 연구소 (전)소장, 대학 중퇴에 심지어 집중을 안해서 유치원에서도 퇴원을 당했다'니, 별난 사람이 다 있네 싶어 첫 장을 넘긴게 큰 변화의 시작이었다. 나는 결국 이 책을 세 번 완독하고 나서야 책을 놓을 수 있었다.


네트워크 시대의 핵심인 무어의 법칙(디지털로 된 것은 무엇이든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더 빨라지고, 저렴해지고, 작아진다)과 인터넷의 혁신에 따라 우리가 외면하고 있을 때 미래는 이미 우리 가까이 당도해 있었다. 소수는 이런 혁신의 생산자가 되어있고 다수는 소비자로만 살아갈 뿐이다.

미래는 이미 여기 와 있다. 다만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윌리엄 깁슨)

MIT 미디어 랩에 따르면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미래를 예측하는 대왕문어나 랜덤 뽑기가 미래학자들의 모든 예언보다 정확한 결과를 내왔으니 말이다. 더군나나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사실들이 거부당하듯 작은 스타트업과 개인들이 우리가 살고 있던 세계의 생태계를 뒤집어 놓는 것을 지난 5년간 수도 없이 봐 왔다.

더 이상 강한 자가 반드시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리스크라고 해서 모두 다 완화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큰 기업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크다고 큰 것이 아니고, 더 이상 비용이 이득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구글, 애플, 아마존, 네이버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들은 인공지능, 로보틱스, 디지털 헬스 등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이제 디지털 시대는 이미 우리 삶을 깊숙히 침투했고, 네트워크로 인해 전세계와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 현상황에서 디지털을 아군으로 둘 것인지, 적으로 둘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눈 앞의 디지털 시대, 그리고 머지 않은 AI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원칙을 이 연구소는 무엇이라 정의했을까? 알아보자. 결정은 여러분의 몫이다.


Whiplash는 이 책의 또 다른 이름이다.

권위보다 창발 (Emergence over Authority)

예전에는 큰 것들이 작은 것을 컨트롤했다. 정부나 대기업이 내리는 결정이 우리의 삶을 결정했고 권위는 큰 것들이, 윗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전문가들을 모아 야심차게 준비한 엔카르타 백과사전은 실패하고 책벌레들의 커뮤니티가 만들어낸 위키피디아가 완승을 거둔 것도 한 예이다. 

창발이란 작은 것들이 다수가 되면서 개별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어떤 속성을 드러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이디어도, 결정도 모두 전문가와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내리는 것이었다. 그때는 느리고 겹겹이 둘러싸인 보고체계로도 세상이 돌아갔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사라졌다는 것을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큰 기업들도 알아야 한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푸시보다 풀 전략 (Pull over Push)

위의 원칙과도 관계가 있다. 중심부에서 외부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혁신은 끝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원도 마찬가지이다. 재고로 가득 차고에 쌓아두고 사무실에 사람들을 잔뜩 채용해 두는 것이 아닌 필요할 때 끌어와 기민하게 사용하는 크라우드펀딩이나 크라우드소싱 같은 것이 부상한 이유가 바로 그 것이다. 


지도보다 나침반 (Compasses over Maps)

변화가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오늘날, 정확한 목적지와 길을 알려주는 지도가 아니라 우리는 나침반을 이용해야 한다. 계속해서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고 대처하게 해 주는 것은 자세한 정보와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는 지도가 아니라, 유연하고 이용자가 창의성과 자율성을 발휘해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나침반인 것이다.

우리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다.

오늘과 내일이 급격히 달라지는 말도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갈 곳을 정해놓고 지도만 보고 나아가기 보다는, 장애물을 만나도 돌아갈 수 있고 바뀌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나침반이 필요한 것이다.


안전보다 리스크 (Risk over Safety)

이제 혁신에 드는 비용이 적어졌다. 옛날에는 시연 샘플을 하나 만들려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투자자를 구하는 등 일련의 프로세스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지만 이제는 일주일 만에 소량의 샘플을 훨씬 낮은 비용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허가를 받고 계획하는 것보다 일단 기꺼이 실패하고 그 실패를 통한 경험과 학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죽어 간다. 전에 했던 것을 거의 그대로 하면서 약간의 변화만 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패하지 않을 것을 아는 일에 힘쓰고 싶은 게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하지만 점진적 발전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 시대에 뒤처진 폐물이 된다. 특히 기술 쪽이라면 변화가 점진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구글 공동 설립자 Larry Page)

순종보다 불복종 (Disobedience over Compliance)

글쓴이도 이 원칙은 누구보다 창의적인 MIT 미디어 랩에서도 100% 환영을 받지는 못한다고 할 만큼 우리는 지시받은 대로 행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 것은 대량생산 사회에나 맞는 것이지 지금같이 모두에게 창의성이 요구되는 환경에서는 맞지 않다.

시키는 대로 해서 노벨상을 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옳은 답을 찾는 것이나 내게 요구되는 것을 하려고 하는 것, 혹은 통과하기 위해 명령을 따르는 태도는 버려야 할 때이다. 적어도 스스로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론보다 실제 (Practice over Theory)

안전보다 리스크에서 말했듯 이제는 혁신에 드는 비용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일단 해 보고 대응하는 것이 옳은 세상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이 된 회사들은 실패를 적극 받아들이고 심지어 권장하는 곳이다. 무언가를 '안하기로' 결정하기 위해 조사하고 계획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이제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MIT는 대학의 모토를 ‘정신과 손'을 뜻하는 Mens et Manus로 정할 만큼 실습을 특히 중시하는 학교이다. 미디어랩이 설립되었을 때 미디어 아트와 과학 프로그램은 거의 모든 수업을 없애고 연구 프로젝트가 곧 학생과 교수진이 배우는 방법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도를 통한 학습이 아니라, 창조를 통한 학습이 된 것이다.

능력보다 다양성 (Diversity over Ability)
끊임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의 환경에서는 극도로 장애물을 만날 가능성도 높아지고 이럴 때일수록 다양성이 훌륭한 경영 전략이 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다양성을 위해 능력을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다양성이 필수가 된 시대이다. 

더 많은 사람을 포함하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견고함보다 회복력 (Resilience over Strength)

혁신의 비용이 줄어들면서 더 이상 견고함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 됐다. 혁신의 일부가 된 수많은 실패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그런 회복에서 만들어지는 조직의 건강한 면역 체계와 회복력은 오늘날의 기업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회복력이 반드시 실패를 예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회복력이란 다음에 무엇이 올지 내가 예견할 수 없음을 예견하고, 상황 인식력을 높이는 것이다.

대상보다 시스템 (Systems over Objects)

책임감 있는 혁신에는 속도나 효율성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이 영향을 끼치는 사람과 지역사회, 환경 사이의 모든 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자(기술)는 대상이고 후자(관계)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전에는 혁신이 대체로 개인의 의문이나 기업의 이익에 따라 추진되었다. ‘이게 나한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이걸 이용해서 어떻게 돈을 벌까?’ 그러나 혁신가들이 생태적, 사회적, 네트워크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신제품을 개발하고 기술적으로 개입할 수 있던 시대는 지나갔다. 앞으로 혁신을 추진할 때는 시스템에 미치게 될 잠재적 영향력 역시 깊이 고려해 보아야 한다.

MIT 미디어랩의 한 프로젝트로 불우 마을을 방문할 일이 생겼고 이들은 가로등이 모두 고장나버린 길을 발견했다. 밤이 어둡고 위험했기에 연구원들은 당연히 가로등을 설치해 주려고 했지만 사실상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길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어둠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주변 슈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힐 수 있는 손목밴드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아이들과 부모들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했다고 한다. 바로 이 것이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시스템을 고려한 기술 디자인의 좋은 예이다.


디지털 시대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살아갈지는 내게도 남겨진 숙제이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색을 통해 내가 디지털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 윗 세대들이 컴퓨터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다는 것을 조금은 깨달았다. 


'그거 없이도 잘 살아 왔어.' 


우리가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으면 잔소리부터 하던 어른들, 그거 할 시간에 책이나 한 자 더 읽으라는 어른들, 이제 그만하고 나가서 놀라는 어른들. 그러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화되고 사무실 곳곳에 컴퓨터가 설치되자 허둥지둥 배워보지만 여의치않고, 결국은 아래 세대와 조금은 단절된 듯 살아가는 어른들. 


내가 지금까지 불만해왔던 어른들의 모습을 내가 닮아가고 있지는 않나 질문해본다. 모르겠다,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만으로 3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어떻게 안그럴 수 있으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른들을 닥친 변화보다 우리에게 닥칠 변화는 몇 배, 아니 몇 십 배는 더 빨리 올 것이고 나는 그 변화의 파도 앞에 서 있다.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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