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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Dec 20. 2020

5분 짜리 컨텐츠에 소각시키는 삶

7:48 AM 출근 길


지옥철 속 눈알 굴리기 투쟁 속에서 승리한 나는 자리에 무거운 엉덩이를 붙이기 무섭게 휴대폰을 눈 앞에 갖다 붙인다. 인★그램을 켠다. 스윽 스윽 엄지손가락의 빠른 움직임에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연예인과 패피들이 사정없이 쏟아져 나온다. 내 하루들과는 다른 모습을 한 그들의 일상을 훔쳐보기 위해 지하철보다 빠른 속도로 스캔한다. 또 다시 아침을 맞고야 만 나에게 위로 같은 커피 한 잔 처럼 모든 걸 잊게 해준다.


앗, 벌써 내릴 역이다.


다시 나는 지하철 안에 존재한다. 절반의 넋을 챙겨 인파를 빠져나간다.



회사에서의 하루가 더디게도 지나갔다. 거슬리는 일들과 사람들 때문에 지친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을 하고 '개매운' 떢볶이로 위로해본다. 왜 조용할 날이 하루도 없는 건지. 매트리스 위에 던져진 갈 곳 없는 나의 마음은 다시 스마트폰 세상에 기어 들어간다.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은 그냥 풀지 않는 걸로 한다. 그게 우리들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하는 이유니까.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또 한 달이 지난다.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물음은 너무나 성가시기에, 답하기를 미룬채 일회용 하루를 살아간다.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하루만에 닥치는 대로 써버렸던 나의 한 달 치 일기장이 떠오른다. 매 해 쌓여도 어른이 된 주인마저 거들떠 보지 않는 한여름 방학의 일기장처럼, 우리는 손바닥만한 스크린 위에 하루를 휘갈겨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노트북 앞에 앉은 나는, 오늘 굉장히 불편하고 거슬리는 이 물음을 마침내 던져보기로 한다.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어버린 디지털화는 우리가 양질의 삶을 영위하는데에 필수적인 조건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어느새 이 무서운 녀석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렸다. 현대인들이 함께 눈을 감아 버리기로 한 이 사실 - 문제에 가깝겠지만 - 을 똑바로 마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도구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키우고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 인간의 인지 부조화 같은 나약함을 인지하고 더욱 비판적으로 미디어 매체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더 깊이 있게 다루고 싶은 주제 중에 하나인데, 수많은 테크 및 온라인 광고 회사도 이를 이용하고 있다. 이들은 인간의 편향된 인지 능력과 지각 능력을 상업적인 이득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호갱님이 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 (번외 : [내돈쓰는데왜이래]를 연재하는 나의 동료작가가 이렇게 주체가 사라진 소비 습관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이미 양날의 검과도 같이 스마트폰과 같은 미디어 매체는 우리 삶에 그 양면성을 가지고 깊이 침투해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매일,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노출되는 매체들에 대해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또한 우리가 지향하는 디지털 삶에 따르는 기술의 발전이 늘 어두운 이면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지각하고 미디어의 발전을 좀 더 점진적이고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이 사태가 다음 화에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은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가 매일 몇 시간씩 무의미하게 소비하는 시간의 가치에 대해서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토론토 대학의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은 20~30대 청년에게 1시간의 가치는 적어도 5만원 정도로 계산된다고 충고했다. 많은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 없이 재미 위주의 짧고 가벼운 컨텐츠에 소비하고 있는 시간의 가치는 1년이면 5천만원, 10년이면 5억원이 넘는다*. 연봉을 어떻게 떡상시킬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일상 속에서 우리가 증발시키고 있는 우리의 시간적 연봉이 아닐까 싶다.






*그 시간들이 반대로 개인의 발전을 위해 이상적으로 쓰여졌을 때의 기회비용이 앞으로 1년 뒤, 그리고 10년 뒤까지 축적되었을 때 다른 양상을 하고 있을 삶의 가치를 고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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