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로부터 받는 가성비가 뛰어난 위로.
우리의 일상은 쉬이 중독에 노출되어 있다. 흔히들 말하는 '마약김밥'부터 시작해, 한번 맛을 들이면 주기적으로 한 번씩은 꼭 수혈하듯이 먹어줘야 하는 '마라탕'은 우리가 중독되는 음식들 중 단연 상위권을 장악한다. 그뿐만 아니라, 쉽게 중독되는 음식들에는 저마다의 최애 음식들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국가가 허락한 마약'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특정 메뉴에 대한 나의 중독을 정당화시킨다.
새로운 해를 거듭할수록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그에 따른 식문화의 변화로 가장 큰 지각변동을 일으킨 건 '1인분 배달'이라는 타이틀이 생긴 것이다. 대게 배달음식의 특성상 일정 가격 이상의 음식을 시켜야 배달이 되기 때문에, 늘 자신의 양 보다 많이 시켜야 했다. 대부분의 1인 가구는 부모와 함께 사는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회사를 다녀야 하는 회사원 혹은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다. 이들의 습성은 바쁘디바쁜 현대사회를 살아내기 위해 집에서 요리를 하는 대신, 원하는 음식을 큰 노력 없이 현관문을 열어 맞이할 수 있는 배달음식에 의존적이리라.
사회에서의 잔뼈가 제법 자란 선배로서 사회 초년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 중, "퇴근하고 집에 와서 치킨 시키지 마라" 라고 말하는 문구가 유행을 했었다. 이유는 집에 도착해서 주문하면 늦었기 때문. 집에 도착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진정 "퇴근길에 치킨을 시켜라" 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네 일상에 치킨은 아주 굵게 자리 잡았다. 어릴 적 아버지의 월급날에 들려온 통닭 봉투부터 시작해, 청년들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저렴한 가격에 해소시켜주었더랬다. (물론 지금은 몸값이 매우 올랐지만)
치킨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겠지만, 지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소비는 치킨이었을 것이다. 치킨은 우리에게 위로이자 보상이었다.
꼭 치킨이 아니어도된다. 그날그날 당기는 음식은 다르다. 세상은 넓고 음식은 많다. 궁합이 좋은 메뉴를 함께 먹으면 유튜브에 나오는 대식가들의 먹방을 재현해내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딱히 당기는 음식이 없는날엔 '먹방'을 검색한다. 자극이 오는 메뉴를 골라 배달을 시킨다. 지난날 남긴 음식과 콜라보를 이뤄보기도 하지만, 어제의 그맛이 아니다. 남긴 음식은 음식물쓰레기봉투에 담겨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인다. 더불어 나의 뱃살도 보이지않지만 차오르고 있었다.
자취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패턴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혼자 배달음식을 시켜놓고 TV를 보며 식사를 하는데 이러한 행동 패턴은 폭식을 유발한다. 식사의 시작은 음식이 도착함에 따라 갑자기 시작되고, 식사의 말미엔 과식으로 인한 더부룩함을 느낀다. 이때 느끼는 불쾌감이 채 사라지기 전에 피로감이 찾아온다. 소화를 도와주는 약간의 움직임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힘들었던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로 인해 운동량이 감소하고, 소화력도 약해지지만 음식에 대한 갈망은 날마다 새롭다. 이러한 일상의 반복은 어느새 습관이 되어 건강의 중심축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한번 생겨버린 습관은 바꾸기가 쉽지 않고, 안되는 걸 알면서도 어제와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우리는 음식에 중독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스스로가 음식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오늘엔 음식을 필요 이상으로 챙겨 먹어야만 했던 수많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음식중독'이라는 현상이 나에게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다.
아래의 표를 바탕으로 자가 진단을 내려보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손가락을 접어가며 위 항목을 읽어가다 보면 의외로 3가지를 훌쩍 넘긴다. 그렇다면 나는 '음식중독'에 걸린 걸까?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 사실 음식중독이란 용어는 아직 정신장애 진단 통계 매뉴얼에 포함될만한 합당한 근거가 부족하다. 하지만 굳이 '중독'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도 얘기해 볼 수 있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행동으로 인해 강박이 생긴 경우 본인의 상황을 인지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건 '진단'을 내리는 일이다. 심각성을 느끼고 자신의 상황을 바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자, 이제 첫걸음을 내디뎠다면 좀 더 구체적인 해결책들을 들여다보자. 우선, 아래 표에 해결책으로 몇 가지 제안을 제시해보겠다.
이상은 자료조사를 통해 정리해본 해결방안이다. 규칙적인 식습관을 갖기 어려운 일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배가 고프지 않다고 끼니를 거르고, 허기진다는 이유로 과식을 하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기 때문에 다소 불규칙적이라 할지라도 나만의 규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작년 9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다. 집에서 엄마가 해주던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신혼생활을 풍요로운 요리들로 채우게 했다. 평소에도 엄마를 도와 식당에서 요리를 자주 하긴 했지만, 집에서 먹는 음식은 특유의 밑반찬들이 있지 않은가. 살림에 대한 관심은 요리로 집중되어 정말 많은 음식들을 해먹었었다. 신혼 초반엔 특히 반찬 가짓수들이 너무 많았다. 그땐 그게 '살림꾼'소리를 듣는 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니었다. 2인 가족인 우리는 많은 반찬들을 다 먹어내지 못했다. 냉장고로 한번 들어가 버린 음식은 마법의 시간(냉장고에 넣으면 하루 이틀 지난 것 같지만 일주일씩 지나있는 마법)을 이기지 못하고 상해버렸고, 또다시 새로운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에 다시 식탁에 올라올 이유조차 없었다.
음식에게 미안했다. 요리하는 기쁨보다 버려지는 음식을 보며 좌절했다. 음식을 버리는 게 아까워 평소 양보다 많이 먹어야 했다. 과식으로 인해 속이 불편해지는 나날이 늘어갈 즈음, 차츰 반찬 가짓수를 줄여나갔다. 우리의 식탁문화는 대게 한두 가지의 밥상을 대표하는 음식을 중심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반찬 한두 가지 정도로 식사를 한다. 이로써 음식의 낭비도 줄이고, 과식도 줄였다.
굶주림과 싸워야 했던 과거와 달리 풍요로운 식자재와 편리해진 음식 수급으로 인해 허기짐을 채우기보단, 음식에 보상과 위로와 같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 요즘이다. 그렇게 때문에 '밥 한 끼'의 의미도 매우 특별해졌으리라. 그렇지만 이젠 진짜 줄여야 할 때이다.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기엔 아직 멀었다고 느껴질지 모르나, 그때가 오지 않았다고 해서 아예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미 부여'와 '위로'도 좋지만, 음식이 아닌 다른 행위로 나를 위로해보는건 어떨까? 창밖을 보자. 봄이 오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