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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Apr 13. 2021

[곱창집이야기2화] MENU의 경쟁력

식당 메뉴는 어떻게 자리잡을까?

사실 엄마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긴 시간 엄마 옆을 지켜온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던 탓일까? 모든 역사를 면밀히 알고 있는 나로선 크고 작은 희로애락을 너무나도 극명하게 느껴왔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많이 조심스러웠었다.


작년 연말 즈음 새로이 사귄 친구들의 추천과 응원을 받아 '엄마가 곱창집을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었다. 많은 망설임 끝에 가족들 단톡방에 글 링크를 올렸고, 그로 인해 엄마도 당신의 이야기가 적힌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누가 썼는 줄 모르고 읽었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나 보네?'하고 읽으셨단다. 점차 읽어내려가다 나온 사진을 보고 당신의 이야기인 줄 아셨다고.


나의 의도(코로나로 인해 외식업계가 맞은 상황에 대해 불특정 다수가 가질 궁금증 해소와 희망 제안)와는 다르게, 엄마의 14년을 요약해 놓은 듯한 연대기적 글에 깊이 감명받은듯했다. 엄마는 옛 직장 동료들, 동창, 가족 친지분들을 포함해 저장된 글 링크를 보내기 시작했다. "크게 자랑할 거리 없는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감동을 주네요."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 써 내려갈 내용과 엄마의 기쁨이 어떤 관련이 있을진 모르겠으나, 엄마의 이야기를 쓴다는 커밍아웃을 하고 나니 나머지는 비교적 쉬워졌다. 하여 그간 있었던 에피소드 또는 주제를 정해 써보도록 하겠다. 그중 첫 번째로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 해당할 수 있는 '메뉴 경쟁력'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필자의 엄마는 14년째 서울에서 곱창집을 운영 중이다. 지금은 제법 자리를 잡아 단골도 많이 생겼고, 목이 나쁘지 않은 탓에 소위 뜨내기라 칭하는 손님들의 유입 또한 용이한 편이다. 때문에 따로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블로그 리뷰를 가장한 광고는 아는 사람은 다 알아보기 때문에 신뢰도에 문제를 줄 수 있다 판단하여 하지 않았고, 파워링크 등 가게를 검색 페이지 상위에 노출시켜준다는 상업성 전화가 꽤 많이 왔었지만 그 또한 비용적인 면을 고려해 고사했었다. 시그니처 메뉴를 만들고 현상 유지하기까지 좋고 나쁜 리뷰들이 다양하게 올라왔었다.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지만, 초보자의 무식과 용감함이 덕이 되어 모든 리뷰들을 수용하고자 하였고, 그 탓에 바꾸려는 자와 유지하려는 자들 간의 다툼도 잦았지만(엄마와 나), 가게의 번영을 위해 적정선에서 지킬건 지키고 반영할 건 반영하며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식당의 메뉴들이 시행착오를 거쳐 자리를 잡는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손님의 피드백'이기 때문이다. 다른 가게들은 어떻게 해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가게의 새로 생겨나 지금까지 자리 잡아온 메뉴는 모두 손님들이 알려주었다. 대개의 초보들이 그러하듯 모르면 질문했고, 계속해서 개발했고 그 반응에 귀 기울였다. 맛의 조화를 이루는 구성을 찾음과 동시에 주방과 홀의 동선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메뉴를 꾸준히 연구했고, 지금도 조금씩 발전에 노력을 기하고 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기본 상차림 구성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터무니없었다. 여기저기 배우러 다니고, 시장조사를 열심히 해서 나름 꾸렸지만 그 상차림은 다음과 같았다.

선지해장국, 생 간, 천엽, 지라, 부추무침, 당근, 마늘쫑, 기름소금장, 간장고추소스, 마늘, 쌈장


위의 기본 찬이 "뭐가 문제지?" 할 수 있지만, 보통 생 당근이라던가 마늘종 같은 핑거푸드 종류는 우리가 흔히 포장마차에서 볼 수 있는 안주거리이다. 개업을 한지 얼마 안 지나 손님들의 피드백은 혹독했다. 심지어 누가 곱창집에서 이런 걸 내놓냐며 호통을 치는 손님도 있었다. 물론, 모든 손님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건 아니다. 한 가지 종류의 음식을 빼거나 더할 때는 여러 명의 의견을 묻고 듣는다. 고민에 고민을 더해 고민이 끝이 나면 바꿔보고, 바뀐 내용의 반응은 어떤지 살핀다.


개업 초기엔 정말 많은 손님들이 우리 가게에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때만 해도 소 곱창을 파는 식당은 흔치 않았던 터라, 우리 동네에 곱창집이 새로 생겼다는 건 꽤나 큰 관심거리였다. 그렇게 방문해서 약간은 신이 난 듯이 "내가 가본 곱창집은 미역국이 나오더라" 혹은 "내가 교대 곱창 10년 단골인데~" 하면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실제로 우리도 여름엔 시원한 냉국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여 미역냉국을 내놓았던 경험이 있다. 그 해 여름, 손님들은 더워도 좋으니 팔팔 끓여먹는 선짓국을 찾으셨다고.)


생각해 보라. 손님 입장에서는 좋은 취지를 갖고 우리 가게가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일 다른 가게와 비교당하고 지적을 당한다는 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더군다나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어야 좋다고 하는데, 하루에도 서너 번씩 충고를 듣는다는 게 때로는 피로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경쟁력

먼저 경쟁력을 갖춰야 했다. 그래야 손님들에게도 당당해질 수 있고, 매번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리라. 엄마가 선택한 경쟁력은 '국내산'만을 취급하는 것이었다. 모든 재료가 국산임을 밝혀 음식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가시적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반박 불가한 무기였다. 국산 재료를 사용했기에 음식의 신선도 또한 높았고, 모든 메뉴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국내산만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강조!

두 번째 경쟁력으로 우리는 김치를 직접 담그기로 했다. 식당에 가서 유심히 보거나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김치가 주된 반찬이 되는 칼국숫집 같은 식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국산 김치가 상에 올라온다는 걸 알 것이다. 그렇듯 비용과 노동력을 고려했을 때 일반음식점에서 김치까지 손수 담근다는 건 상당히 힘에 부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했다. 내가 먹는 음식이라 생각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고는 손님상에 나가지 않게 했다. 맛을 내는 데 있어 정통한 요리사가 아니었기에 정성으로 승부를 보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탓이었지만, 그 마음 덕에 지금까지 잘 이어져오고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진심은 통할거라 생각하며, 주기적으로 손수 김치를 담근다.

세 번째 경쟁력은 바로 "가격"이다. 곱창 수급을 받기 위해 따로 거래처를 뚫어야 했다면, 애초에 곱창집을 시작할 엄두조차 못했을 정도로 장벽이 높았다. 장벽이 높다고 표현한 까닭에 대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를 도축하는 이유는 고기를 위함이지 곱창을 얻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에, 여름에는 비교적 소고기의 수요가 떨어진다. 아무래도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불판을 앞에 두고 땀을 흘려가며 고기를 굽는다는 게 불편하다 느껴지는 탓이리라. 소고기의 수요 하락에 따라 소 도축량이 하락하고, 그에 비례하여 곱창의 공급량도 줄어들기 때문에 여름에는 곱창을 구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렇다면 도매처의 곱창 물량은 한정적인데 과연 어떻게 거래처에 물량을 배치할까?


위의 경우와는 반대로 곱창의 물량이 너무 많아 도매처에서도 양이 감당이 안 되는 시기도 존재한다. 보관이 용이하지 않아 도축한지 하루가 지난 곱창은 선도가 많이 떨어져 곱창의 곱이 다 흘러가버린다. 하루에 팔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무작정 많이 받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양이 많아도 문제고, 적어도 문제가 되니 도매처 입장에서는 여간 난감한 게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매업자들은 일정량 꾸준히 매출이 오르는 가게와 거래하기를 선호한다. 양이 많아 어려운 시기에 많이 받아 팔아준 거래처들에게 고마움을 느껴, 곱창 수급이 어려운 시기엔 우선적으로 공급을 해주는 편이다. 이런 식으로 상호 간의 거래에 덕을 겹겹이 쌓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뜨내기장사꾼이 와서 곱창을 달라 한다고 한들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곱창집을 해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던 건 외할머니 덕이 컸다. 외할머니께선 당시에 마장동에서 축산도매업을 하고 계셨다. 그 덕에 시작은 쉬울 수 있었다. 개업 후 2년이 지난 후에 할머니께서 편찮아지셔서 거래처를 옮겨야 했지만, 꾸준한 매출이 나와주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도매처와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도 상생해 오고 있다.


곱창 가격이 오르고 내림에 따라 함께 가격을 낮추었다. 한번 낮춘 가격을 다시 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웬만큼 오른 곱창 가격에는 쉽사리 따라 올리지 않고 버텨보자 했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외벌이가 많았고, 그 탓에 외식 한번 하는 게 제법 큰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늘 부족하다 느껴지던 생활비 내에서 가족들과 외식을 한다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으리라. 그런 마음에서였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얘기해도 뚝심 있게 버텨내곤 했었다.


불가피하게 두 배에 가까운 가격이 올랐던 적이 있다. 손해를 각오하고서라도 가격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장사를 할수록 마이너스가 찍히는 날들이 늘어감에 따라 가격 인상을 결정하게 되었다.


자주 오던 식당에서 갑자기 고깃값을 올려 받는다면 소비자 입장에선 미리 공지해 주길 바랄 것이다. 예상 결제금액을 생각하고 식당에 들어왔을 텐데, 계산서를 받아보고 터무니없는 가격에 당황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끝에 장문의 글을 수기로 작성해 여러 장을 대자보처럼 붙여보기도 하고, 곱창 원가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을 설명하여 프린트하여 곳곳에 붙였다.


이러한 노력을 손님들이 알아준 걸까? 가격 인상에도 많은 손님들이 찾아주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표출하였지만, 늘 잘 먹고 간다고 인사를 붙여주던 사람들이었다. 어려울 때 찾아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손님들은 지금도 많이 반갑다. 10년이 넘도록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이지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

글을 마무리하기 앞서, 위의 기본 상차림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https://blog.naver.com/super_hj/222118040901 참고

가짓수가 많다고 다 좋은 차림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대로 남겨져 오는 음식들을 버리던 매 순간을 지나, 지금의 상차림이 완성되었다. 선짓국 하나만 있어도 소주 한 병은 거뜬하다고 말하는 손님들도 있다. 매일 땀 흘려가며 뜨거운 불앞에서 한우사골을 우려내, 우거지를 잔뜩 넣어 선짓국을 끓이는 이유다.


이렇게 차려져 나가고 곱창이 다 구워져 나와 바로 먹으면 된다. 가장 완벽한 구성이라고 확신이 드는 순간은 어느 것 하나 한 점 남김 없는 빈 그릇으로 돌아올 때이다. 가끔 초장을 찾거나, 맨 소금, 찍어 먹는 청양고추 등을 찾을 때는 필요에 따라 내가면 된다. 없는 건 없지만 있을 건 다 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


아주 오래된 가게에 비한다면 그다지 거창하지도, 견줄만한 세월도 아닌 이야기를 해보았다. 어디 내놓기엔 부끄러운 얘기일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같은 엄마가 자랑스럽고, 그 곁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매출과 병원비는 비례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원에 가지 않고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남아있으면 좋겠다.


이상으로 이번 글은 마치려고 한다. 과거와는 달리 많은 것이 변해감에 따라 우리 식당의 메뉴도 많이 변했다. 계절에 따라 어떤 메뉴가 추가되었고, 왜 그 음식이어야 했는지, "모둠"이라는 메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 써 내려가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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