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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May 06. 2021

내 몸 편하면서, 돈 많이 버는 장사는 없다.

국수 전문점보다 더 자주 육수를 만들어 끓이는 것 같은 엄마의 장사 비결

뜨거운 햇살이 얼굴을 비추어 따가운  찡그린  자전거 핸들을 꺾어 골목으로 들어간다.  타고  자전거를 주방 쪽문 앞에 세운  자물쇠를 건다. 정문으로 길게 돌아가면 나오는 굳게 닫힌 식당 문을 따고 들어가 주방 불을 켠다. 도시가스를 열고, 보일러를 켜면 잠겼던 밸브 열리는 소리가 나지막이 고요한 공간을 채운다. 주방이 일을 시작할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세척기에 쓰일 뜨거운 물이 받아지게끔 급수 버튼을 누른 , 물이 받기는 동안 사골육수가 담긴 냄비를 올려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가게 안에서의 일상을 시작한다. 이런 과정을 이제는  감고도   있을 정도로 습관이 되었다. 이렇게 엄마의 일상이 시작된  벌써 십수 년이 지나간다.


내가 3n 년 살아보니 알 것 같은 것 중 하나는, 내가 생각했을 때 제일 베스트 인 행동 패턴들이 몸에 배어 습관으로 남는다. 이처럼 위에서 서술한 엄마의 습관도 그중 가장 최고의 조합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주방 문을 열면 길고 쨍하게 햇빛이 들어온다. 겨울에는 따뜻해 고마운 햇빛이지만, 여름에는 너무 뜨거워 문 위로 달아놓은 대나무발을 길게 늘어뜨린다. 햇볕에 대한건 내가 엄마를 따라 가게를 오픈할 때 느낀 것들 중 하나인데, 그 후로 시간이 흘러 나 혼자 아무도 없는 가게에 들어와 문을 열 때면 알게 모르게 나는 엄마를 경험했다. 허나, 추측건대 엄마는 이런 햇살을 느낄 여유는 아마 없었을 것 같다.


그랬다. 엄마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저 습관이 된 루틴을 반복할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가게가 발전할까? 어떻게 해야 모든 손님이 맛있게 드실 수 있을까? 어려움이 닥칠 땐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지? 가격을 조금이라도 더 낮춰야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텐데, 원재료비를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어떤 메뉴가 곱창과 더 잘 어울려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까? 등등의 고민들이 엄마 머릿속을 차지해 빈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으리라.


엄마는 가능한 동네의 모든 식자재마트를 뒤졌다. 메뉴를 연구해야 했다. 장사가 늘 10년 이상 된 가게처럼 기복 없이 잘 유지된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오기까지는 매일매일이 고비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겼다가 사라지는 가게들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한번 왔던 손님이 또 방문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메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밤낮으로 고민을 하던 어느 겨울, 뜨끈한 국수를 찾던 손님으로 인해 잔치국수를 떠올리게 되었다.


육수부터 고명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커다란 냄비에 멸치, 디포리, 황태, 다시마, 건새우 등을 약불에 살살 볶다가 물을 넣어 끓였다. 곱창의 느끼함을 내려주기 위해 칼칼한 맛을 내기 위한 건고추까지 넣고 끓여주면 육수는 완성이 된다. 국수 면을 삶고 육수를 붓는다. 그 위에 올릴 고명들도 매일 손수 만들어 정성스레 올려준다. 손이 여간 많이 가는 일이 아니지만, "웬만한 멸치국수전문점보다 맛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 손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귀찮은 과정들도 쉬이 생략할 수 없다. 정성을 알아준 것일까? 다행히도 매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개시하는 잔치국수를 많은 손님들이 좋아해 주신다. 4,000원이라는 낮은 가격 책정도 한몫했겠지만(최근에 물가 상승으로 인해 3천 원에서 4천 원으로 올렸다), 별 기대 없이 시킨 국수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면 얼마 안 있어 추가 주문이 들어온다. 이 정도면 성공한 계절메뉴이지 않은가?


정갈하게 준비해두는 잔치국수 고명

하지만 무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국수를 후후 불어가며 먹는 걸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운 날의 계절메뉴도 생각해 내야 했다. 몇몇 손님들은 후식 냉면을 찾았지만,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메뉴이면서 다른 집과는 좀 색다른 경쟁력을 둬야 했다. 여름의 시원한 메뉴를 고민하던 차에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싱싱한 열무와 얼갈이배추를 발견했다. 늦은 봄이 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열무가 나오는 철에는 가격도 저렴하고 싱싱해서 원재료로 적합하다 생각되었다. 엄마는 열무와 얼갈이를 사다가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김치 국물을 따로 덜어 국수용 육수를 만들어 살얼음이 얼게 얼렸다.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시장에 나온 열무와 얼갈이를 사다가 김치를 담가놓고, 김치가 맛있게 익을 때쯤 '열무국수 개시!'라고 써 붙인다. 그러면 추운 겨울에도 열무김치를 찾던 손님들이 반가움을 표하며 시켜드신다. 김치 특유의 시원함과, 새콤달콤한 맛이 계속 당기는 맛이라고 한다.


살얼음이 잔뜩 올라간 직접담가 만든 열무국수 (여름메뉴)


우리가 어느 정도 성공의 기쁨을 맛보고 나면, 그 기쁨을 누리고자 요행을 바라게 된다. 잠시 간의 여유쯤이야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마음이 들곤 할 때가 있다. 식당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피드백은 너무나도 빠르고 분명하게 온다. 또한, 무탈하게 지속되는 일상이 그리 길지 않다. 작은 이슈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해이해지기란 쉽지가 않다. 곱창 가격이 많이 올라, 손님의 발길이 줄었던 때가 있다. 손님이 없어 한가할 때면, 우리는 또 고민한다. 뭘 더 잘해볼까? 하던 중 엄마가 즐겨보던 TV프로그램에서 방영해 준 대파 김치를 담가보기로 했다.


대파의 매운맛을 잡아줄 물엿을 넣고 만든 대파 김치는, 하루 이틀 푹 익혀서 냉장고에 넣는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어 꼬부라져야 맛이 있다고 한다. 새콤달콤한 감칠맛이 돌아야 곱창과 함께 먹었을 때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단다.

곱창의 느끼함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새콤달콤 대파김치

일이 없어 일을 만들고 보니, 손님이 다시 많아졌고 일도 두 배가 되었다. 때문에 일을 할 때도 요령이 필요하다. 다량의 김치를 담그는 방법에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고, 손도 빨라졌다. 미리미리 양념을 만들어두어, 대파를 언제 사 와서 다듬어도 부담되지 않을 수 있게 해두었다. 손님들은 예전엔 없던 게 생겼다며, 두세 그릇씩 추가해 드신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구워 먹으면 달큰한 맛이 난다. 먹는 입장에선 맛이 다채로워져 더욱 즐거워졌다.

부추가 너무 비싸 볶음밥에 넣는 용도로 무쳐두었던 콩나물을 함께 서빙했는데 대박

매년 겨울이 되면 따듯한 곳에서 자라야 잘 자라는 부추가 매우 귀해진다. 하우스에서 농사짓는 부추들만 유통이 되는데, 따라서 그 값이 매우 올라간다. 한날은 부추 한단에 5천 원을 훌쩍 넘어가던 겨울이었다. 한 테이블당 평균 부추무침을 2~3 접시는 드시는데, 부추가 비싸 돈을 더 내라고 할 수도 없고 안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듯 발만 동동 굴렀는데, 당시같이 일하시던 이모님께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하셨다. 바로, 볶음밥에 넣는 용도로 무쳐두었던 콩나물을 부추와 함께 담아 테이블에 올려보자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도 콩나물을 함께 구워 먹으면 식감이 더 좋지 않냐는 것이었는데, 이는 맞는 말이었다. 무시무시하게 비싼 부추 값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던 차에, 그 말을 듣고 바로 실행하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곱창보다 부추와 콩나물을 더 많이 찾으시는 분들도 계실만큼 궁합이 좋았고, 그 덕에 우리도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말이 새삼 피부로 느껴졌었다.


손님의 요구로 잔치 국수가 탄생하고, 시장에 나온 푸릇푸릇 한 열무를 보고 엄마가 열무국수를 메뉴에 추가시키고, 비싼 부추 값에 콩나물 반찬이 메뉴에 추가되었다. 이렇듯 별거인 듯 별게 아닌 듯 가게의 역사를 채우는 음식들이 생겨났다. 엄청 고민을 많이 한끝에 탄생한 메뉴도 있지만, 번갯불에 콩 볶듯이 생겨난 메뉴도 있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웃음이 나는 일화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일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사랑받는 가게임에는 분명하다.


엄마는 오늘도 모두가 잠든 새벽, 해야 할 일이 모두 끝나고 난 후에야 도시가스를 잠그고 보일러를 끄는 것으로 가게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가스밸브 잠기는 소리가 낮게 퍼지면,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쉰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이 났구나'.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일상을 이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떠한 것도 확신할 수는 없으나, 지금을 살아가는 엄마의 일상은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매일이 새롭다. 힘들기만 하다 느낄 수도 있을 텐데, 생기 넘치는 일상을 살아주고 있는 엄마에게 감사하다. 일을 일처럼 생각하지 않고, 즐거이 그리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우고 있다. 그런 것들이 결국 내 삶이 즐거워지게 만드는 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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